다시 살아 돌아가지 않으리 ②
우리글을 사랑한 충과 효
동자는 입을 삐죽거리며 돌아섰다. 그리곤 얼마 후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말하더니 이내 밖으로 사라졌다. 서포는 급하게 따랐으나 어디로 갔는지 동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 참 기이한 일이라고 되뇌었으나, 분명 자신을 위해서 누가 보낸 것이라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서포는 몇 날이고 자신이 준비했던 소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소설의 힘을 믿었다. 정서와 언어가 만나 형상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곧 흥미의 원천이 되는 것이니 그림을 그리듯 소설을 써내려가게 된 이유였다. 그는 현실의 질서를 파괴하는, 출구 없는 욕망을 제어할 수 없는 현실제도 자체를 비판하고자 하였다. 이유는 제도 자체의 변화로만 가능하리란 보수적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서포는 가장 보수적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증조부 사계 김장생이 우암 송시열의 스승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버지 죽음에 대한 정서가 노론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필연적 원인이 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불교에 관해서 관대한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삶의 실존적 무게를 ‘욕망’에 빗대어 고민했던 것이었다. 어쩌면 그가 불교에 호의를 가졌다는 것은 그의 어머니 윤씨 부인의 영향도 무시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머니 윤씨가 불교를 믿었다는 특별한 기록은 없다. 그렇지만 평생 수절하며 살았던 외롭고 고단한 심신을 불교에 기대었을 것이며, 비명에 죽은 남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면서 두 아들의 안녕을 빌었을 것이다. 남해에서 유배생활도중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한 인물들도 바로 승려들이었다. 그가 지은 <구운몽>도 결국 불교적 무상관과 궁극적 깨달음의 세계로 이끈 주체가 승려였으니 말이다.
어느 듯 가을이 지나고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마지막 남은 마른 잎이 가는 계절을 아쉬워하듯 파르르 떨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힘겨운 유배인의 가슴에 슬프게 착상되어 얼어붙었다. 그동안 안간힘을 쓰며 힘겨운 시간을 글로써 쏟아 부었으니, 소설은 조금씩 마무리가 되어밨다.
그저께 섬 주민이 가져다준 삭힌 생선과 해초와 보리죽으로 저녁을 때우고, 먼데 가을바다를 바라보며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멀리 굽어진 길에서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는 백의동자 모습이 보였다. 동자의 얼굴은 석양을 받아 붉게 물들어 있었고, 멀리 서포를 보자 환하게 웃는 웃음이 유난히 반가워 보였다. 그것은 자신이 쓰기 시작했던 소설<사씨남정기>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었으며, 마무리 전에 꼭 동자에게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서포는 반갑게 동자를 맞았다.
“하~ 오늘은 석양과 함께 나타나시는 구려!”
“예 할배, 한동안 적조했습니다. 지난 중양절(重陽節)에 뵙고 처음이니 참 많이 그리웠습니다. 집필하시는 글은 잘되어 가시는지요?”
늘 그랬듯 모습과 달리 어른스러운 동자의 눈에서는 환한 빛이 선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글의 마무리를 동자께 보여드린 후 탈고를 하려했는데 이리 찾아오시니 참 반가우이다! 어서 좌정을 하시지요.”
“저는 여기가 편합니다.”
동자는 작은 쪽마루에 걸터앉아 턱을 괴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 서포는 자신이 쓴 글을 방안에서 몰래 꺼내와 동자에게 건넸으나 동자는 그것을 받아들고 장 하나도 넘기지 않았다.
“책 읽기가 싫어지신 겝니까? 너무 어려운 글인가? 허허!! 공자께서도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다 알았던 것은 아니니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하게 배워서 알아낸 것을 어찌 허물이라 탓하리요! 서책 또한 마찬가지니, 지금 품에 안고 있는 글이나 읽어 보시지 않으시려오??”
“이미 세 번이나 읽었는걸요.”
“뭣이라? 아직 탈고하지 않은 글을 세 번씩이나 읽어보았단 말이냐?”
“…….”
“참으로 알 수 없는 아이로구나! 그래 읽어보았단 내용은 어떠하더냐?”
“예, 유배오신 분들의 일반적 글 내용은 송강 정철 선생이 그랬듯 온갖 미사여구를 섞어 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에 대한 하소연, 언제고 임께서 불러주기를 갈망하는 글들 이온데, 할배의 글은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상소문을 쓴 것이니 그것이 후대에 가치로 작용할 것이고, 유배가사를 넘어서 유배 소설을 존재시켰습니다. 그것이 할배의 매력이 아닐는지요!”
“그렇다고 내가 한글소설만 쓴 것이 아니지 않느냐. 한시와 유배가사 등을 포함해서 산문 또한 많이 쓴 것인데 어찌 그것만으로 나를 평하느냐?”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러나 워낙 지금 쓰고 계신 소설이 유명해 다른 것들이 묻혀 버린 게지요! 그러나 너무 염려 마십시오. 아시는 분들은 다들 알고계시니 그리 섭섭해 하실 것도 아닌 줄 압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래, 그것이 전부이더냐?”
“할배는 당대 유학을 기본으로 하시는 최고의 지식인이신데 <구운몽>도 그렇고, 지금 마무리 하시는<사씨남정기>도 그렇고, 어찌 불교사상을 소재로 하여 충과 효를 교묘하게 접목시켜 놓았습니까? 특히 남쪽으로 간 사씨가 마지막에 관음의 도움을 받도록 설정하신 그 연유는 무엇인지요?”
“하~ 동자께서 내 글을 난도질 하시는구랴! 그러나 일반 백성들이 읽혀야 하는 내용에 주자니 뭐니 하다간 큰 낭패가 아니더냐. 비록 숭유억불이라 하지만 임진년 난 이후, 기존 유교적 통념의 질서가 어느 정도 무너지기 시작하지 않았느냐. 또한 당시 승군들의 활약이 나라님보다 못하지 않았으며, 가장 중요한 백성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는 것이 양반입네 하는 자들의 성리학일 수 없으니 당연히 불교에 의존하며 한 많은 세월을 쓰다듬었을 것 아니더냐!”
서포 김만중 영정
“그래서 유교적 삶의 덕목에 금강경과 화엄사상까지 변용시켜 아주 교묘히 섞어 다듬어 놓으셨습니다.”
“허~ 동자께서 금강경 화엄경을 알고 계십니다! 하여튼 잘 보았습니다. 나 스스로 지금까지 그래왔듯 인성의 최대의 덕목은 충과 효이며, 권선징악인데 지금 임금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백성들이 어쩔 수 없이 젖어드는 악에 대한 유혹을 다듬어가고자 한다면 당연히 유·불이 적당히 접목되어야 하지 않겠나? 또한 현실은 어떠하던가? 세상 질서를 파괴하는 출구 없는 욕망의 폭력성을 제어할 수 없게 만드는 제도 자체가 문제가 아니더냐. 그렇기 때문에 사씨를 남쪽으로 보내서 성찰의 시간을 드러내게 했던 것이지.”
“그러하셨군요! 유가적인 권선징악과 불가의 관음보살의 고난구제를 연계시켜 놓았는데, 그런데 악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유가적인 징벌을 받게 설정하셨습니다.”
“하하~~ 자세히도 읽었구나! 그러나 일상의 가정사를 그렸지만 정치풍자로 우리의 권력사회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불가보다 유가의 징벌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기실 사대부라 해서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닐진대, 나 자신이 지금껏 살면서 깨달은 인생의 진실을 글 속에 나타내고 싶어 다소 욕심을 부린 것이기도 하지.”
“그러하셨군요! 이제 책 속의 궁금증은 다소 해소가 되었습니다만, 그럼 다른 문제로 넘어가 볼까합니다. 할배는 송강 정철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으신 것으로 아는데 그 연유가 무엇입니까? 혹여 같은 당색이라 팔이 안으로 굽는다. 뭐 그런 연유시라면 적이 실망이지만 ……”
“책 얘기를 하더니 내 마음까지 알려고 하는구나! 그래 이왕 물은 것이니 답을 하마. 당색이라, 내 그럴 리가 있느냐. 송강선생은 <사미인곡> 등을 지어 노래함으로서 우리글의 아름다움을 한층 상승 시키신 분이 아니더냐! 우리글의 우수성은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배웠다는 식자들이 앞장서서 언문이네 뭐네 하면서 우리글을 핍박하니, 사대부가 그런 언문의 글로써 아름다운 시를 읊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겠느냐?”
“그렇다 해도 저는 낮 간지러워서 ……”
“보아하니 동자의 까칠한 심성으로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그저 자신이 이렇게 임금을 사모하는데 빨리 불러주기를 노래하는 그 속내도 그러하지만,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아무 관련도 없는 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인간됨됨은 어찌 평하시겠습니까? 아무리 촌철살인의 명문장을 구사하며, 임금에 대한 충성심이 깊다하나 무릇 사람이란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 그 평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있어 글이란 ‘자신의 이기적 삶에 느끼한 양념을 치는 양심의 핑계’였다는 생각입니다.”
동자는 어느새 그렇게 심하게 하던 딸꾹질이 멈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상기된 얼굴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너무 흥분 마시게. 그러나 동자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네, 하긴 정여립과 단지 친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많은 인명을 죽음으로 몰아갔으니 심한 처사였지. 더욱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까지 그 피바람을 비껴가지 못했으니 말일세. 그러나 문학적 가치만 따지자면 내 생각은 변함이 없네.”
“덕분에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게 된 동기가 되었다지요? 그러나 지난 역사에 비난을 가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서 비판을 하자는 이야깁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자는 이야깁지요!”
“어린 선비께서 참 많이도 알고계십니다! 그렇지, 역사란 유일하게 되돌아서 보는 미래인 것을.”
“그런데 할배는 글을 쓰시고 이렇게 꼭 남에게 보여주고 난 뒤, 할배의 글로 완성 하셨습니까?”
“그 물음은 무엇을 뜻하는지?”
(계속)
노도. 사씨남정기원 / 유씨를 유혹하는 교씨
* 평안하고 행복한 설날명정 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