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그루 매화나무가 살아난 까닭 ②
두 번에 걸친 남해의 귀양살이- 소재 이이명
이때 소재 이이명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서포 선생이 즐겨했던 매화나무 두 그루가 마당 귀퉁이 탱자나무 가시덤불 앞에 당당히 버티고 섰는데, 어떤 힘겨움에서도 잃지 않는 꿋꿋한 선생의 절개를 보는 듯하였다.
그러나 한계가 분명하였다. 주인 잃은 매화나무는 생명을 다한 듯 죽어가고 있었다. 소재는 매화나무를 어루만지며 한창 꽃을 피우고 있어야 할 매화가 시들어 있음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시름시름 앓아가고 있는 중이라 생각했다. 분명 장인이 직접 심은 것이라,
매화와 함께 고요한 가운데 그윽하고 여유로운 기품에 빠져들어 마음을 닦았으리라.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슬픔에 메마른 매화가 더 반가운 사연이다. 그리고 소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맑고 깨끗하며 뛰어나 보통과는 다르고 또한 선어(禪語)도 능히 훤하더니 불행히도 여로에 오른 널이 이미 섬을 나갔구나!”
라며 안타까워했다. 평소에도 그는 모든 만물은 다 지각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무릇 효자가 죽은 부모를 그리워하며 곡을 하면 무덤의 소나무가 죽고, 형제가 반목하면 잣나무가 메말라 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장인이 심은 매화 두 그루도 장인 사후 황폐해진 뜰에 자신을 아끼던 주인의 죽음을 알고 슬픔에 젖어 시름시름 앓고 있는 중이라 생각하니 매화나무에서 장인의 숨결을 느꼈다.
그때 소재의 행동과는 아랑곳없이 땅에 앉아 뭣인가 끌쩍이고 있던 아이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타박타박 걸어 낡은 마루에 걸터앉아 턱을 괴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저 나무를 참 애지중지 하셨지요. 할배가 돌아가시고 찬 육신마저 서울로 가버리자 저리 시름시름 마르기 시작했는데, 섬사람들 모두 할배의 사랑과 정을 받던 나무가 저렇게 변해버리자 참 이상한 일이라며 모두들 놀라워했었지요. 그러나 나는 놀랍기보다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무엇이 당연하다는 것이냐?”
시름에 젖어있던 소재는 아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물었다.
“한낱 식물도 정을 주면 싱싱하게 웃어 보이고, 관심이 멀어지면 힘겹게 시들어 가는 것이 나와 네가 함께 마음을 나눈다는 ‘공감’이라는 이치인데, 그렇게 정을 주던 할배가 떠나가셨는데 매화인들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그 할배를 기리는 선비님이 들어서자 매화나무 가지가 하늘거리며 흔들리는 것을 보셨는지요?”
“이 매화가 나를 보고 가지를 흔들더냐?”
“예, 분명 그러하였습니다!”
“어찌 나는 보지 못하였던 것이냐?”
“망연자실해 계시는 선비님의 눈에 어찌 그것이 보일런지요. 아마 눈앞에 이슬이 맺혀 아무리 크게 반가워한들 그것이 어찌 보였겠으며, 가슴에 멍이 들어있어 그 힘겨움으로 보이지 않았을 수 있었겠지요!”
소년의 말을 듣고 매화를 바라보자 매화나무 작은 가지가 미풍에 간지럼을 타는 듯하였다. 가까이 다가가 매화를 어루만지자 가슴 속의 응어리가 씻어져 가는 신기를 느꼈다. 소재는 이 매화를 자신의 적소에 옮겨 심고, 마음을 달래고 자신을 닦으리라 심지를 굳히게 된다.
그때 다시 청아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아하니 선비님께서 이곳과는 인연이 남달라 보입니다. 아마도 막강한 권력을 누리게 되나 죽은 망혼이 깃들어 유배길이 또다시 이어질 것이고, 부귀와 권력을 되찾게 되나 그 총명함이 도를 넘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되지만, 하늘과 너무 가까운 자리에 있음으로 화가 미치니 어찌하겠습니까? 이것이 다 하늘의 뜻이라면 하늘도 야속하실 겝니다!”
삼십대 초반의 젊은 소재는 소년이 중얼거리듯 하는 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금방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그것은 분명 자신을 두고 한 말이란 것을 직감하고 되물었다.
“지금 나를 보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라 했느냐? 당치않은 소리하지 말거라, 누가 들을까 두렵구나! 만약 누가 그런 소리를 입 밖에 내는 자가 있다면 능지처참을 면치 못할 것임을.......”
“그것이 운명인데 어찌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릴 수 있으리까? 안타깝고 안타깝습니다! 만인지상과 독대를 자주한 터라 그것이 빌미가 되어 이곳을 다시 찾을 듯합니다. 그 안타까움에 하늘이 울고 땅이 진동하겠습니다만, 패거리 정치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누굴 탓하겠습니까? 그리니 그만 한 많은 역사에서 슬픔일랑 묻어 두시지요!”
소재는 아이가 예사롭지 않음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나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불안한 자신의 처지에 미래까지 읊조리니, 처량한 유배의 객이 된 지금 자신의 가슴에 실낱같은 희망이 싹트고 있음을 알고 피식 웃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곳 남해와 두 번의 인연과 만인지상과의 독대, 그리고 패거리정치 등 분명 한 많은 사연이 쌓여있을 것이라는 희비가 엇갈리는 말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만인지상’이란 상감마마를 일컫는 뜻이고, ‘일인지상 만인지하’라면 영의정을 일컫는 말이니 소재는 그 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만약 네 말처럼 기적이 일어나 해배가 되고나면 내 너를 잊지 않으마. 그리고 네가 방금 내게 해 준 말을 꼭 가슴에 새기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겠다.”
농담처럼 반신반의 하며 대충 던진 말을 듣자 소년은 먼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조각배 한 점을 바라보며 또다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짐을 했다한들 어찌 지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리까! 그만 시간이 없으니 어서 저기 기다리고 있는 매화 두 그루를 옮겨 가시지요.”
소재는 답을 이어가고 싶었으나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고, 바다는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어 갔다. 지금 자신이 바라보던 바다가 매일 그렇게 한과 눈물로 선생이 바라보던 바다였으며, 올려다보는 하늘이 선생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던 하늘이었다고 생각하자 또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냥 그렇게 시각을 지체할 수 없었다. 소년의 도움으로 정성스럽게 매화 두 그루를 파내어 낡은 가마니에 흙과 함께 소중히 감싸 안고, 한이 가득한 초옥과 작별을 고한 뒤 내려오기 시작했다.
백련마을에서 본 노도(김만중 유배지)
소년의 도움으로 유배의 섬 노도를 떠나 다시 벽련마을에 도착하니 소년은 공손히 절을 올린다.
“선비님 지금 가져가신 매화를 ‘묵고 노자할배’인양 소중히 하십시오! 아마도 두 분 기운이 비슷하여 할배로 착각하여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꽃이 열리거든 할배를 기억하고, 또 추억하시며, 언젠가 돌아가게 되시면 선정을 베풀어 불쌍한 민초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또 헤아려 역사에 남을 재상이 되시길 간곡히 기원하겠습니다. 언제 다시 이곳 남해를 찾게 되면 다시 저를 만날 것입니다. 굳이 저를 찾겠다고 성급히 서두르지 마십시오! 그날이 오면 제가 선비님께 나타나 벗이 되어 드릴 터이니 그동안 그리워하지도 마시고, 저를 알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자연 그리하면 선비님께서 자연의 이치와 생의 끝자락에서 보는 절망이 깨달음으로 변화되는 신기를 맛볼 것입니다!”
하고는 소년은 조각배 위에 오르더니 그림처럼 소재의 곁에서 멀리 사라져갔다. 소재는 지금까지 진정 꿈을 꾼 것 같았으나 너무나 생생한 이미지와 청량한 말소리가 귀에 울림 되어 남아있고, 소년의 얼굴이 잔상처럼 눈앞을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소재의 발아래에는 두 그루의 매화나무가 묵직하게 놓여있었다.
소년과 작별을 한 뒤 돌아와 적소의 뜰에 정성스럽게 매화를 심었다. 또 그렇게 한 많은 귀양살이가 계속되고, 아침저녁으로 글을 읽으며, 집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을 열어 밖을 보니 산비둘기 한 쌍이 나무에 앉았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척에 놀라 날아간다. 소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제까지 자신의 지고지순한 정성에도 살아날 기운이 없었던 매화나무에 군데군데 꽃망울이 망울져 있었던 것이다.
소재는 하루하루 매화를 보는 낙으로 유배의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햇살 가득한 날에 피곤에 젖어 힘겹던 머릿속으로 맑은 향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소재는 향기의 진원지를 따라 쫓기듯 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적소의 뜰은 꽃향기로 덮여있었다. 그것은 두 그루의 매화나무에서 서로 다투듯 매화꽃이 활짝 피어나 온 뜰을 메우고, 하늘하늘 춤을 추듯 매화꽃 세상이 되어있었다. 매화 향은 그렇게 바람을 타고 가슴에 들어와 내려앉았다.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의 굳은 절개를 상징하듯, 유배객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매화였다. 고격하고 기품 있는 군자의 그윽한 자태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 하지 않았던가! ‘한평생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구절을 떠올리자 유난히 서포가 그리운 까닭이다. 소재는 망설이지 않았다. 감성이 사라지기 전에 붓을 들어 거침없이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재 이이명
<매부梅賦>
만물이 있음에 생기가 있는 인물로서
성품과 정서 지각을 모두 가지고 있고
효자로서 묘에서 곡을 하니 잣나무가 죽었다.
쇠잔한 형제들도 유배로 각각 떨어져 있으나
감응의 이치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서포공의 유배 유허에
매화나무 두 그루가 있어
매년 개화하여 종자의 결실을 맺었다.
스스로 동쪽 변에 있는 섬에서 생활하던 중
죽어서 관이 북으로 돌아갔다.
매화나무는 황폐한 마당에서 홀로 있었는데
초췌하여 죽어가고 있었다.
적소에서 나무를 어루만지며 가련한 나무를
나의 적소에 옮겨 심으니
그때와 같이 무성하였고
많은 풀들도 자랐다.
매화는 맑고 밝고 곧은 자취를 나타내니
좋아하였다.
서로 상통하니
살고 죽는 것은 오직 어울림에 있다.
선비로서 참을 깨달아
아내가 남편을 위하듯이
흡족하면서 슬픔이 있어
부를 지어 노래한다.
- 소재 이이명.
이이명이 장인 서포 김만중을 그리며 쓴 <매부>이다. 글쓰기를 마치자 문득 서포선생의 말벗이 되어주었다던 소년 안부가 궁금해졌다. 소재는 서둘러 백련마을을 찾았다. 그러나 소년은 꿈을 꾸었던 것처럼 어디에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어렵게 노도엘 다시 찾았으나 그곳에서 만난 초로 입에서는 그런 소년은 애초부터 섬에 살지 않았다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어지간이 작다는 사투리 앵강만이 물결을 찰랑이며 비웃고 있었다.
소재는 하늘을 쳐다보다 머리를 때리는 것이 있었다. 내가 생의 끝자락에서 있을 때, 어김없이 나타나줄 것이라는 소년의 마지막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소재는 먼 하늘과 올망졸망 놓여 있는 섬들을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
이이명은 남해로 이배 된지 이 년, 1694년 갑술옥사(숙종20)가 일어나 해배되어 정계에 복귀한다. 그 후 형 이사명의 죄를 변호하다가 다시 공주로 유배되지만 곧 풀려나 1701년에 예조판서 대사헌 한성판윤을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내고 소년의 말처럼 일인지하 만인지상 영의정에 오른다.
그동안 숙종과 후계문제로 여러 차례 비밀독대를 하였으며, 숙종이 승하하자 경종대에 연잉군(훗날 영조)의 대리청정 주청하다 실현시키기도 하였으나 소론의 반대로 철회되고, 노론의 4대신 김창집 이건명 조태채 등과 함께 관작을 삭탈 당한다.
이이명은 또다시 한 많은 남해로 유배의 길에 올랐다. 그러나 일 년 뒤(경종2), 김일경의 사주를 받은 목호룡이 지난날 이이명이 왕으로 추대 받았었다는 ‘목호룡의 고변’(신임옥사/1722)으로 서울로 압송 도중 한강진에서 사사되니, 4대신 모두 참변을 면치 못하게 된다.
무리수를 두어가면서 세제 연잉군 대리청정을 실현시키려 했던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숙종과의 수차례 비밀 독대가 그 원인의 뿌리가 되었을 것이며, 결국 그것이 정적들에 의해 공격의 빌미로 작용하였다.
노론들은 연잉군의 대권 승계를 당연시 여겼다. 그렇지만 숙종과의 비밀독대로 세자(경종)가 대리청정을 하게함으로서 그의 실정을 유도하여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한 다음, 연잉군(훗날 영조)으로 하여금 왕통을 이어가게끔 하기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세자는 매사 신중한 처신으로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결국 숙종이 승하하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소론의 공격목표가 되어 한 많은 역사에서 질곡을 겪었던 정객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물론 경종이 일찍 의문사 함에 따라 영조가 보위에 오른 그해 4대신은 사후 신원되었다.
이것은 세자시절부터 경종을 지지했던 소론보다, 차후 자신들의 권력을 반석에 올려놓기 위해 세제(영조)를 옹립하고자 했던 노론측이 무리수를 둔 것은 틀림이 없었다. 신임옥사는 노론이 정권을 잡은 이후 최대의 참변으로 기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