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르비아주의와 유고슬라비즘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by 박필우입니다

* 달마티아 스플리트 항



한 발의 총성으로 시작된 1차 세계대전은 세르비아를 사면초가몰았고, 알렉산다르는 외국에 망명정부를 세워야 했다. 오스트리아 지배에 들어 있던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와 세르비아간, 본격적인 대결구도가 형성된 것도 1차 세계대전으로부터다.


대세르비아주의 핵심에는 대세르비아주의 창시자격인 니콜라스 파시치가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대세르비아주의에 동조하지는 않았다. 민족주의란 말조차도 18세기 말까지 없었던 단어이니 역사에서 늘 외침과 피지배자에 억눌려야 했던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는 스스로 민족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서로 간에 교류도 거의 없었으며, 겨우 우리 조선시대처럼 보부상이나 수사들 몇 명만 오갔을 뿐이다.


한편 대세르비아주의가 한창 열 올리고 있을 때 발칸반도 북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에서 남슬라브, 즉 유고슬라비즘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 두 지지세력 간에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종교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로마 가톨릭과 세르비아 동방정교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었고, 더구나 보스니아에는 느슨한 종교였던 까닭에 이슬람으로 개종이 늘어 어떻게 봉합해야 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18세기 후반, 유고슬라비즘 주장이 있기까지 슬라브민족 처음으로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일이 있었다. 슬라브민족에 대해 학자들과 수사들에 의해 연구가 되면서 세르비아어로 쓰여 진 《슬라브 민족사》라는 책이 1794년 세르비아정교회 수사였던 라이치에 의해 발간된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자 세르비아는 물론 크로아티아인 등 슬라브민족 베스트셀러로 등극한다.


그러자 세르비아 정치인이 중심이 되어 움직였던 대세르비아주의는 졸지에 유고슬라비즘에 묻혀갔다. 이때 세르비아 카라지치와 가라샤닌에 대를 이어 대세르비아주의를 주입시키는 데 성공한 니콜라스 파시치 총리는 유고슬라비즘을 역이용해서라도 꿈을 실현하고자 했다.


한편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부터 독립이 우선인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인들은 세르비아가 제1차 발칸전쟁에서 터키제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자, 슬라브민족의 대통합 기운이 절정에 달했다. 반대로 세르비아 젊은이들은 세르비아만이 유고슬라비즘 통일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굳힌다. 결국 유고슬라비즘과 대세르비아주의의 양자 간 대결로 치달았다.


1차 발칸전쟁

1913년 1차 발칸전쟁에서 승리한 세르비아는 터키 손아귀에서 완전하게 벗어남을 뜻했지만,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로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로부터 해방이 지상과제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유고슬라비즘은 이루지 못할 꿈일 뿐이었다. 세르비아 역시 발칸 북부 이 두 나라를 빠트리고서 대세르비아주의는 의미가 없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저격 후 1차 세계대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스트리아뿐만이 아니라 발칸반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독일로서도 결코 수수방관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후발제국이었던 도이칠란트로서는 발칸에 깃발을 꽂아야 완성된다는 생각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자신들이 세르비아를 침략하면 러시아가 그냥 있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때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의중을 물었고, 독일은 흔쾌히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편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런 후에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페타르 카라조르지예(페타르 1세)와 그의 아들 통일왕 알렉산다르 1세




이에 대항해 가장 먼저 움직인 군대는 러시아였다. 슬라브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발칸을 노리던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도와 맞섰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독일의 발칸 지배는 영국과 프랑스로서도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세계 대전으로 확전된 것이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개창자 반열에 든 파시치 총리는 아드리아해 진출을 목표로 세르비아 주도하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물론, 몬테네그로까지 병합하는 계획을 세웠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식민지였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자의든 타의든 러시아 적이 되어 싸워야 했다. 러시아 역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독립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세르비아 중심의 단일 슬라브민족 국가 건설에 힘이 실린다.


이처럼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도무지 어떻게 풀어야할지 아무도 몰랐다. 더구나 연합군이 세르비아 파시치 총리에게 불가리아가 연합국으로 돌아서게끔 세르비아가 점령하고 있는 옛날 마케도니아 땅 상당부분을 불가리아에 넘겨주자고 제안했다. 파시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만 얻을 수 있다면 찬성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만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사활을 걸었다.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오스트리아는 패전국의 멍에를 뒤집어 써야 했다. 어차피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쓸 거라면 크로아티아에게 아드리아 함대를 통째로 주며 자치권을 넘긴다. 연합국에 함대를 넘기지 않으려는 생각에서다.


권력의 맛에 길들어진 크로아티아 민족정치인들은 “황송하옵니다!” 하며 자치권에 만족하면서 감복한다. 용꼬리보다 닭대가리를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거시적 안목보다 권력과 대를 이은 부를 위해 미시적 선택을 한 사람들은 서로가 결속해야 한다는 진리를 잊지 않았다. 기득권층 지배담론이 은밀하게 강화되면서 확산을 거듭한다. 계층 간 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데도 권력의 단맛에 취한 이들은 민족은커녕 지금으로선 이 방법이 최선, 혹은 대세라는 언변이 통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결속을 과시했다. 1917년 5월 말, 유고슬라비아 대표 33인(우연히도 우리나라 3‧1독립운동 대표 33인과 같은 수이다)이 모여 신속하고도 거창하게 변죽까지 울려가면서 ‘유고슬라브 코커스(Yugoslav caucus)’라는 정치단체를 결성한다. 미국의 선거인단을 뜻하는 코커스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제국에 충성하는 인간들이 모여 충성맹세 식을 시끌벅적하게 벌였다. 이들도 대표자가 있어야 했다. 가장 이완용다운 인물을 앞세워 “합스부르크 왕가 지도하에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그리고 세르비아인이 살아가는 터전에 자치적인 체제가 이루어질 때까지 노력한다.”며 선언한다.


그러자 유고위원회는 물론 세르비아정부 조차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은 만나야 했다. 이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뭉쳐야 했다. 그리고 만났다. 두 달여에 걸쳐 얼굴을 맞댄 후 ‘코르푸선언’을 한다. 핵심 내용인 즉, ‘유고슬라비아인의 왕국은 하나의 영토와 하나의 시민권만이 인정되며, 자유롭고도 이상이 넘치는 왕국이 될 것이로다.’ 비장미 넘치는 선언이었지만, 언감생심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내용이란 사실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저들도 알았다.


세르비아 카라조르지예 왕조를 정점으로 뭉치고, 민주적인 왕정체제하에 세르비아는 물론,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인의 왕으로 부르고, 모든 민족이 동등하게 취급당하며, 종교 역시 이슬람 포함 니들 마음대로 자유롭게 믿어도 된다. 국경은 북으로는 슬로베니아로부터 남쪽과 서쪽으로는 몬테네그로와 아드리아해를 포함한다. 지금 지도를 펼쳐놓고 보아도 제법 영토가 광대하다. 하지만 실상은 세르비아 파시치 총리 계략에 유고위원회가 휘둘린 사건이었다.


이들 동상이몽은 계속된다. 위에서 언급한 각각의 세 권력 대표단이 1918년 11월 초 제네바에서 얼굴을 맞댔다. 모두가 예상하듯 회의가 난항을 거듭했다. 난마처럼 얽힌 각 이해관계는 쉬이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때 프랑스 대통령 레이몽이 점잖게 나섰다. “유고슬라비아인의 분열 없는 공동전선 수립을 지지한다”며 의미 없는 중재국 체면만 세웠다.


그리고 합의 안이 나왔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인의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한다”였다.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가만있던 몬테네그로만 얻어터지고 만다. “유고슬라비아 전 민족은 동일하며 인종적으로 하나다.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일부로 간주된다.” 무슨 이런 황당한 일이….


그런데도 세르비아 국민은 만족하지 못했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에 각각 합법적 정부가 들어서서는 대세르비아주의 실현은 물 건너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르비아인 반발이 도를 넘자 영원할 것만 같았던 파시치 총리가 일선에서 물러난다. 사실 국민 뒤에는 그를 견제하려는 왕 알렉산다르가 있었다.


알렉산다르는 막강 블랙핸드를 자신의 손으로 숙청했던 주도면밀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에서 군총사령관을 맡아 전쟁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그런 만큼 군부 역시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대세르비아주의가 본격적인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절대군주의 야심이 발톱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르비아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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