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탐욕, 역사의 시작
서구 문명에서 소외된 채 오스만트루크제국 지배를 받아오던 세르비아인들은 무슬림 생활양식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동화되어 갔다. 일부이긴 하나 초창기 에니체리 모집의 방식에서 벗어난 무작위 선발로 인한 초심이 사라지자 에니체리를 이용해 신분상승을 꿈꾸는 청춘들은 주체할 수 없는 폭력의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승승장구한 예도 생겼다.
그리고 정교회로부터도 민족정신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세르비아정교회에 스테판 듀산을 비롯해 성인의 반열에 든 18명의 왕족들은 대 트루크제국에 항쟁의 의기로 작용하면서 더욱 탄탄하게 결속해가고 있었다.
대부분 무슬림으로 개종을 택하기보다 세금과 신분 등 약간의 차별을 참아내면서 자신들이 오랫동안 믿어온 세르비아정교의 기로에서 굳건하게 자신들의 믿음을 지켜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대부분 종교지도자는 현실안주에 만족하면서 스스로 무슬림과 자민족사이에 방패가 되어 무슬림 대변자역할도 당당하게 해내는 인물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향교 조직의 타락과 불교, 기독교 등 친일행각을 당당하게 해내던 종교인, 스스로 일본인인 양 행동한 조선인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믿음과는 다르게 종교지도자 타락은 정신적 타락을 부추겼고, 이는 하층민끼리 응집하는 쏘시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들(주로 농민이었지만) 스스로 밀알이 되어 뭉치기 시작하면서 슬금슬금 항쟁의 기운이 싹트고 있었다. 크네세스라는 농민자치조직이 생겼고, 이들 중 크네즈라 부르는 지도자가 등장하면서 종교지도자 파워를 능가하게 된다.
19세기 세르비아가 통일을 맞이하게 된 사연은 100% 스스로 노력이 아니었다. 물론 농민항쟁으로 촉발된 에니체리와 대결에서 파생된 일련의 사건들이 오스만터키제국으로서는 골치만 아픈 땅일 뿐이었다. 서유럽이 신대륙 개척에 열을 올리고, 르네상스를 거치고, 산업혁명으로 나날이 성장을 거듭하던 때였다. 오스만터키제국은 비엔나 공략 두 번의 실패 이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와 일정 국경만 놓고 이어가는 불편한 평화의 시대에 만족하면서 고인 물이 썩어가듯 지방호족들의 부패가 몰락을 앞당기고 있었다. 민중의 고혈을 짜냈고, 이는 곧바로 민중항쟁, 즉 두 차례에 걸쳐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제국이 넓어질수록 술탄은 늘 지방호족의 반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통일신라 말기 강력한 지방호족 등장에서 보듯 제국 말기로 갈수록 지방분권형 권력이 강성해지면서 중앙정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독자적인 권력이 등장한다. 지방에 파견된 총독 파샤 아래 오스만 용병 시파히(Sipahi)라는 900여 명의 군인 계급이 존재했다. 주로 전쟁에 승리하면 재물보다 땅을 하사받는 중세봉건기사와 성격이 비슷했다. 시파히 아래 소작농민들은 일정 세금만 내면 대를 이어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시파히 역시 농토를 후손에게 대물림하기 위해 소작농 고혈을 짜내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이들 시파히와 에니체리 갈등이었다. 발칸반도 지배자 무라트 1세(코소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는 툭 하면 반란을 일으키는 귀족출신 친위대 대신 오로지 술탄, 즉 자신만을 위한 맹목적 충성과 술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술탄 외에는 그 어떤 명령도 듣지 않는 용감하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막강 부대를 창설했다. 이들이 바로 누구의 표현대로 가혹하고도 슬픈 피해자 에니체리다. 이들은 그리스와 세르비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등지에서 천애고아를 만든 후 어릴 때부터 맞춤교육을 시켜 조직했다.
◀ 무라트 1세. 코소보 전투에서 목숨을 잃는다. 그는 툭 하면 반란을 일으키는 귀족출신 친위대 대신 오로지 술탄, 즉 자신만을 위한 맹목적 충성과 술탄을 위해 존재하는, 술탄 외에는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는 용감하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막강 부대를 창설했다. 이들이 에니체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제국의 기운이 소멸되기 시작한 것도 이들 에니체리로부터였다. 시파히보다 더 막강 권력을 가졌던 에니체리들이 시파히 땅을 우격다짐으로 빼앗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이 감당해야 했다. 더구나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제국과 오스만제국이 세계의 패자를 놓고 박 터지게 싸움을 이어가던 시기였다.
드디어 18세기 말로 접어들면서 에니체리에 대한 불만이 농민항쟁으로 촉발된다. 제1차 혁명은 기사계급 시파히와 농민지도자 크네세스를 중심으로 세르비아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부터다. 분노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결국 막강 에니체리들은 난을 피해 베오그라드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때 오스만제국은 에니체리에 대항하다 잡혀온 농민들을 사면하면서 에니체리의 분노를 샀다.
도망친 에니체리들은 그동안 누렸던 권력의 달콤함 맛을 잊지 못했다. 결국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어 베오그라드를 재점령하고, 지방정부 파샤를 뒤엎은데 성공하면서 1801년 베오그라드에는 무인정권 시대가 도래 했다. 이들이 내건 슬로건 역시 개혁이었다. 가해자가 마치 피해자인 양 코스프레 행위는 훨씬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고려무신정권처럼 폭력을 앞세운 압제 더 이상도 아니었다. 베오그라드 사바강과 도나우강 두물머리의 칼레 메그단 성채 앞 육각형 네보이샤탑 학살도 이때부터 자행되었다.
이들 에니체리, 즉 세르비아 무신정권은 스스로 최고위급 지도부인 네 명의 다이스(Dayis)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한 번 일어난 농민항쟁은 아무리 옥죈다고 해도 반등하기 마련, 완전히 꺾어버려야 했다. 이를 염려한 다이스들은 기세를 꺾기 위해 죄 없는 세르비아농민 지도자를 체포해 처형하기에 이른다. 선참후계先斬後啓, 즉 1866년(고종3) 권력을 쥔 대원군이 천주교 금압령禁壓令을 내려 병인박해丙寅迫害를 시작으로 6년간 1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처럼, 다이스들 역시 먼저 처벌하고 나중에 보고하도록 하면서 반체제인사는 체포와 동시에 죽여 버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세르비아인 최초 공식적인 피의 학살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을 모은 후 농민지도자 크네즈 목을 잘라 본보기로 삼고자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정교회 성직자들까지도 참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터키제국은 에니체리 서슬에 눌려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오히려 농민들 분노만 증폭시키고 말았다.
▲ 세르비아 왕족으로 등극하는 블랙조지. 세르비아어로 페트로비치 카라조르지예(Petrovic Karadjordje)다. 그는 세르비아의 새로운 권력자 밀로쉬에 의해 목이 잘려 술탄에게 보내졌다
역사는 위기 때 영웅을 탄생시킨다. 이제는 단순항쟁이 아니라 반란으로 확장이었다. 하우두크(Hauduk), 즉 터키에 조직적으로 대항하는 반란군을 뜻하는 용어가 생겼다. 에니체리에 대항하는 첫 조직이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를 봤던 크네즈를 비롯해 성직자들까지도 농민들을 다독이는데 동참했다. 더 큰 희생을 막자는 의미였지만, 그러나 농민들 생각은 달랐다.
굶어서 죽으나 맞서 싸우다 죽으나 매양 한가지였다. 분노는 예상보다 강했다. 농민들은 그야말로 농기구를 들고 대항했다. 일찌감치 최정예 전투력으로 무장한 에니체리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의분에 찬 농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면서 과거 전투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라면 대번에 지도자로 뽑아 그를 중심으로 뭉쳤다.
농민들은 1804년 2월 블랙조지, 세르비아어로 페트로비치 카라조르지예(Petrovic Karadjordje)를 지도자로 뽑았다. 졸지에 블랙조지가 급부상하면서 농민군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블랙조지는 오스트리아군 소속으로 터키와 맞서 싸운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산발적인 대항에 불과했던 세르비아 농민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더 많은 자금력을 동원할 수 있었고, 무기 조달과 풍부한 전쟁경험은 단순 민간봉기에서 오스만터키제국에 대한 항쟁으로 확산하는 데 성공한다.
세르비아 무신정권이 시작된 지 4년 째, 블랙조지를 중심으로 한 농민군은 곳곳에서 에니체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 시작했다. 36세 블랙조지는 일약 스타로 떠오르면서 에니체리의 지도자 다이스 네 명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이들은 목숨을 부지하기에 급급했다. 결국 처량한 도망자 신세가 된 다이스를 끝까지 추적한 블랙조지의 오른팔 밀렌코 스토이코비치가 섬에 숨어 있던 에니체리 지휘관 다이스 목을 베는 데 성공하면서 마침내 승리에 종지부를 찍는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블랙조지는 농민군 지도자로 우뚝 서며 술탄을 향해 에니체리 해체를 요구했다. 술탄으로서는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이었다. 술탄은 분노했지만, 그로서도 별 도리가 없었다. 술탄으로서는 세르비아의 지리적 이점은 매우 다양했다. 발칸반도 중앙에 위치한 터라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해 도이칠란트 등 서구열강들을 견제 할 수 있는 전략적,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반대로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세르비아 땅은 매우 단순했다. 무주공산, 재빨리 발을 담그면 자신들 차지가 될 것처럼 보였을 법했다. 서구 제국주의가 경쟁적으로 학대일로를 걷고 있었던 까닭에 이처럼 좋은 먹이는 없었다. 영국과 러시아가 군침 삼키며 발칸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신세가 된 터키제국으로선 도무지 믿기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러시아가 터키제국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게 된 시점이라고 보면 거의 정확할 것이다.
블랙조지가 외교적으로 안정을 꾀하기 위해 프랑스 나폴레옹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정복전쟁을 펼치는 나폴레옹으로서도 오스만제국과 동맹을 깨는 것이 꺼림직 했다. 오스트리아 역시 나폴레옹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라 자신들의 코가 석자였다. 대안을 찾던 블랙조지는 러시아로 눈을 돌렸다. 때마침 오스만터키가 나폴레옹과의 외교적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가 내민 손을 뿌리치고 외교관계를 거절해버린다. 러시아로서도 방법은 단 하나, 세르비아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것뿐이었다. 발칸에 입김을 확대하고자 노력하던 러시아 차르 알렉산더 1세로서는 닭 대신 꿩인 셈이다.
알렉산더 1세는 가장 먼저 농민군 지도자 블랙조지를 자신 편으로 만들었다. 1811년 러시아는 세르비아 농민군을 지원하면서 의회를 설립하고, 블랙조지를 의장으로 선출한다. 이처럼 러시아가 통치기술까지 전수하면서 농민군은 목표의 궤도를 크게 수정했다. 조국독립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때 러시아와 영국의 뒷배를 믿은 블랙조지는 오스만제국과 전쟁에서 꾸준히 승리를 거두며 중부도시 니쉬를 손에 넣는다.
하지만 나폴레옹 정복전쟁에 위협을 느끼던 러시아는 1812년 본국으로 철군해버렸다. 영국 역시 러시아가 돌아서자 터키를 제압하려던 초심은 간곳없이 슬그머니 발을 빼면서 터키와 휴전을 맺으며 관망자세로 돌아섰다. 국제사회 냉혹함을 몸소 경험해야 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 된 블랙조지를 비롯한 세르비아농민군은 사면초가에 빠지고 말았다.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잔존 에니체리는 오스만제국의 힘을 뒷배로 몸을 돌려 재차 반격해오기 시작했다. 블랙조지는 독립은커녕 당장 목숨을 부지하기조차 힘에 겨웠다. 에니체리들은 일시에 도나우강을 건너 베오그라드를 점령해버렸다. 두 번째 입성이었다. 다시 권력을 잡은 무슬림과 에니체리의 악정은 이전보다 더욱 심했으며, 농민을 향한 폭력이 기승을 부렸다.
에니체리의 보복은 처절했다. 반란군을 뿌리 뽑겠다며 15세 이상 세르비아 남자들을 잔인하게 도륙한다. 여자와 어린이는 노예로 삼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혁명군 지도자 블랙조지와 수많은 세르비아인이 베오그라드 도나우강 서쪽 제먼이나 노비사드 인근지역으로 몸을 피해야했다.
그러나 세르비아 농민들도 그냥 있지는 않았다. 1815년 짠, 하고 등장한 인물이 세르비아 우쥐째 출신의 밀로쉬 오브레노비치였다. 그는 비록 농민출신이었으나 전쟁보다 뛰어난 언변으로 타협에 능한, 외교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그 역시 농민항쟁에 몸을 담았던 경력이 있었지만, 재력과 세치 혀로 오스만제국에 충성을 맹세해 처형을 면한 인물이다. 더불어 오스만으로부터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면서 세르비아 귀족 지지까지 이끌어 낸다. 민족의 미래보다 쥐꼬리 권력이 더 중요했던 까닭이다. (계속)
▲밀로쉬 오브레노비치. 가난과 핍박 등 혼란한 정국 속, 이전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세르비아농민들의 불만은 증폭되어 갔다. 그러나 왕권을 유지하려는 밀로시는 농민을 달래기는커녕 약간의 불만이라도 표출하는 사람이 있으면 잡아가두곤 했다. 이전의 에니체리의 집권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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