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자리 - 페르세포네
▲ 작가 kjpargeter(출처 Freepik)
멀고도 아주 먼 옛날, 신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올림푸스 12신 중 한 명인 데메테르는 땅의 여신이자 농경과 곡물, 수확의 여신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빼어난 미모를 가진 딸, 페르세포네가 있었습니다. 페르세포네의 아버지는 신들의 제왕이자 천하의 바람둥이 제우스였습니다. 페르세포네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들판에서 꽃을 꺾으면서 노는 것도 즐겼습니다.
하늘은 맑고 녹색의 들판에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꽃이 만발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님프들과 들판으로 나간 페르세포네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꽃을 꺾기도 하면서 귀여운 사슴과 뛰어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난생 처음 보는 예쁜 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이 꽃을 백합이라고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온통 하얀 색에 향기 또한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과 향기에 반한 페르세포네가 꽃을 꺾으려는데, 그만 뿌리까지 뽑히고야 말았습니다. 그러자 뿌리가 뽑혀나간 자리에 큰 구멍이 생기더니, 그곳에서 아주 무섭고 푸른 얼굴을 한 남자가 솟아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가 페르세포네를 들쳐 업고 다시 구멍으로 사라져 버리자 구멍 또한 온데간데없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실로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함께 있던 님프들이 어머니 데메테르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데메테르는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페르세포네의 머리핀만 떨어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데메테르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이는 필시 지옥의 왕 하데스가 납치한 것이 틀림없어. 그러나 어찌한다? 지하세계는 죽은 후라야 갈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어찌 할 수 없음에 미칠 듯 슬퍼하던 어머니 데메테르는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식음을 전폐한 채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계절을 관장하는 농사와 곡물의 여신인 데메테르가 모습을 감추자 땅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꽃과 식물은 바짝 말랐고, 나뭇가지는 앙상하게 변했으며, 하늘에서는 연일 폭설이 쏟아졌습니다. 마치 세상은 온통 겨울왕국처럼 변하였습니다. 올림포스에서 이 모습을 내려다보던 신들의 왕 제우스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두었다가는 지상의 인간은 모두가 얼어 죽겠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페르세포네를 구해와야겠군.”
제우스는 하데스에게 심부름꾼을 보냈습니다. 아무리 죽음과 지옥을 관장하는 무서운 하데스라도 신들의 왕 제우스의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그냥 돌려보내기 아까운 마음에 꾀를 냈습니다. 다시 땅위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들떠서 기뻐하는 페르세포네에게 석류열매를 준 것입니다.
“땅위로 돌아가는 도중에 목이 마르게 될 것이오. 그때 이 석류를 먹으면 갈증이 씻은 듯이 사라질 것이오.”
석류를 받아든 페르세포네는 하데스가 준 마차를 타고 어두운 터널을 통해 땅위를 향해 달렸습니다. 얼마를 달렸을까? 그런데 하데스의 말처럼 정말 목이 타는 듯이 말라왔습니다. 하데스의 말을 떠올린 페르세포네가 석류 한 알을 먹었더니 정말로 갈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페르세포네는 하데스가 보기와는 다르게 친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달리자 또 목이 말랐습니다. 페르세포네는 다시 석류 한 알로 갈증을 해소했습니다. 그렇게 세 알을 먹은 끝에야 땅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딸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데메테르가 동굴에서 나와 딸을 맞았습니다. 둘은 반가움에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자 다시 활기를 되찾은 세상에선 풀이 자라고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어머니 데메테르가 딸의 손에 들려진 석류열매를 보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습니다.
“애야, 혹시 오면서 이 석류를 먹지는 않았겠지?”
“아뇨, 어머니. 목이 말라 세 알을 먹었어요.”
그러자 어머니 데메테르의 낯빛이 검어지면서 말했습니다.
“이런 큰일이다. 하데스의 간교한 꾐에 빠지고 말았구나! 이 석류 한 알을 먹으면 지옥에서 한 달 동안 하데스와 지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단다!”
이 말을 들은 페르세포네가 슬픈 얼굴로 되물었습니다.
“어머니, 그러면 제가 석 달을 지하에서 하데스와 지내야 한다는 것이어요?”
“그렇단다. 얘야, 이는 제우스도 어쩌지 못하는 규칙이란다.”
결국 페르세포네는 일 년에 석 달을 지하세계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동안 어머니 데메테르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동굴에 들어갔고, 석 달이 지나 페르세포네가 돌아오면 동굴에서 나왔습니다. 그렇게 페르세포네가 땅위에 있으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지만,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이 꽁꽁 얼고 추운 겨울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동쪽 하늘로 처녀자리가 떠오르는데, 지하세계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페르세포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일 년 사계절이 페르세포네에 의해 생겨났다는 설정입니다. 페르세포네를 기다리는 어머니 마음이 꽃을 피우고, 행복한 시간인 여름에 과실을 여물게 하고, 곧이어 헤어짐을 안타까워하면서 마음이 붉게 타들어가면서 낙엽이 지고, 언 삭풍을 견디는 겨울이 온다는 가설이 결국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라 생각됩니다.
페르세포네는 겨울철에는 저승의 신 하데스의 아내로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마음씨가 온화하고 착한 그녀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다시 이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답니다. 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디케, 정절과 헌신의 상징이자 남편 대신 죽음을 맞이하였던 알케스티스, 프로테실라오스도 그중 한 명입니다. 이들 모두 배우자의 지극한 사랑이 기적을 일으킨 경우라고 할 것입니다.
사랑이 무시무시한 지옥의 신 하데스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아시나요? 사랑합니다! 이 말 뒤에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가 생략되어 있답니다.
"사랑합니다!"
처녀자리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마찬가지로 신과 인간이 함께 살던 시대였습니다. 이때를 황금의 시대라 했습니다. 그러나 농사를 짓고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나면서 땅에서 살던 신들은 인간을 버리고 하늘로 올라가버렸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불러일으킨 불행이었죠.
하지만 타이탄족의 여신 테미스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스트라이아는 정의의 여신으로 인간을 믿고 끝까지 남았습니다. 아스트라이아는 항상 손에 천칭(저울)을 들고 있다가 사람들끼리 싸움이 일어나면 이들을 저울에 올려놓고 잘잘못을 판단해주었습니다.
이 시기를 은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들을 존경하는 영웅의 시대가 도래 하면서 이전보다는 나은 세상이 되었지만, 철의 시대에 이르면서 인간들의 거짓말과 폭력은 더욱 난폭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모형제간에 피를 흘리는 등 혼돈이 심화되자, 실망한 아스트라이아는 결국 인간을 포기하고 하늘로 올라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처녀자리를 아스트라이아라고도 합니다.
신의 무한한 사랑도 폭력 앞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옵니다. 피는 피로 씻어 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사랑의 사전적인 의미는 "배타적 약속"이라죠? 너와 나 사이에 부모나 친구나 과거나 그 어떤 무엇도 방해받아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고맙습니다!
까르페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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