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다음에는 내차례다
3주차 기적이 있었다. 물론 내가 아닌 처제에게 일어났지만 ㅜㅜ...
그렇게 또 일주일이 흘렀다. 금요일 저녁 간단하게 칵테일 한 잔하고, 남은 커피 아깝다고 홀짝 털어 넣은 뒤에 잠자리에 누웠다. 그래선지 평소보다 맑은 머리에서 이런저런 사연을 붙잡아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러길 한 시간, 몇 번을 뒤척이다 깜박 졸았다. 작은 냥이 호두 놈이 울어서 일어나니 새벽 두 시다. 물을 마시고 재차 잠자리에 들었지만, 불면의 영혼은 나를 끈질기게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컴컴한 거실이 무서웠던 것인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인간의 침묵이 불안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호두 놈이 아들아이 방문을 긁으며 울기 시작한다. 거실로 나오자, 종종걸음으로 반갑게 맞는다.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안심한 듯 제자리에 앉아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고 침대에 들었지만,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다.
동물도 저러할진데, 인간이 어찌 늙어가며 외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신앙심이 깊어 신을 의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南無, 귀의)’를 입에 달고 사는 이기적인 인간이 그분을 따르며 그분처럼 살겠다는 엄청난 약속을 읊조리며 미천한 기복신앙에만 매달리는 나는 뭘까.
말이 좋아 고독이지, 고독도 아무나 즐기는 것은 아니다. 외로움에 몸서리치면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이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더 외롭다. 이불 속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천장에 별자리 조명이라도 설치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동심의 꿈이 아롱지게 드러나 용기를 북돋워 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에 어둠을 휘젓고 다니며, 애먼 쿠션만 끌어안은 채 몸부림치던 중이다. 나와는 달리 세상이 심연에 잠긴 시간, 작게 열린 안방 문 사이로 아내의 코골이가 들린다. 그야말로 새 아침을 비상하기 위한 충전 과정의 작동 소리가 은밀하게, 혹은 힘차게 박동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다 잠잠해지는가 하면, 마치 어둠에 점령당하지 않겠다는 듯 재차 시동을 켜며 공간을 지배한다.
깜박 졸았다. 새벽 4시 반이 되자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비몽사몽 불 켜진 거실로 나왔다. 아내는 이미 도시락을 챙긴 후 양치까지 끝냈다. 서두르라는 암묵적인 눈총을 날린다. 대충 양치 후 눈곱만 떨어냈다. 그렇게나마 눈이 떠진다.
토요일 새벽 도심의 도로는 한산하지 않다. 모두들 마치 경주하는 듯 내달린다. 경적도 마다치 않는다. 구급차 소리까지 화음에 동참하면서 오늘 하루도 여느 때처럼 펼쳐질 것으로 생각하였다.
산길로 접어들면서 조금은 한산해졌다. 3주 연속으로 팔공산 관봉 갓바위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가는 길이다. 가로수 은행나무가 처음과 다르게 눈에 띄게 앙상해지고 있다. 내 마음도 저처럼 계절과 함께 낡아 갈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이상했다. 첫날처럼 힘에 겹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면서 계단을 올랐다. 아내는 10여m 앞서서 힘차게 오른다. 역시 몸을 함부로 굴린 효과는 이럴 때 드러난다. 무위도식하듯 무턱대고 살아온 나날들, 술과 불면에 지친 정신머리마저 흐릿하다.
아내가 뒤를 돌아다보며 무기력한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모르긴 해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하나 없다는 표정이었을 법하다. 힘을 짜냈다. 지친 모습을 보여준다니 그럴 수 없다. 비장한 심정이 되어 가슴에 자가발전 하듯 용기를 북돋웠다.
그때다. 저 앞에 꼬부랑 할머니가 바위 같은 걸망에 짓눌리듯 지고 산을 오른다. 코가 앞 계단에 닿을 듯하다. 하지만 느리게 그리고 지친 기색도 없이, 일정한 발걸음으로 돌계단을 오른다. 지난주에 올라가다 만난 할머니라고 확신했다.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듯하다. 아내가 느릿느릿 인사를 건넸다.
“안녕 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생각과 다르게 목소리가 힘차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그 할머니가 아니다. 아내가 대화를 시작한다.
“지난주 토요일 새벽에 뵙던 할머니인 줄 알았는데 다른 분이네요.”
할머니가 반갑다는 투로 말을 받는다.
“아, 그 할머니 울산서 오시는 분이세요. 일주일에 한 번씩”
오가며 서로 인사를 나누며 면을 텄다는 의미다. 내가 물었다.
“이 시간에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어도 괜찮아요.”
짐작은 했지만, 대화의 물꼬가 트인 이때부터 중간에 말을 끊고 앞지르기까지 그간 할머니 사연을 오롯이 들어야 했다.
사연인즉, 50대 중반에 무릎에 물이 차 아파 죽을 것 같았는데, 의사를 속여가면서 갓바위에 올라 치성을 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섯 시간이 걸려 올랐고, 겨우 삼배 정도 할 수 있었다. 아들이 사법고시 시험 준비 중이었는데, 어머니가 되어서 이렇게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할머니 정성이 통했는지, 아들이 뜻을 이루었고, 며느리 손주들까지 승승장구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 82세가 될 때까지 특별한 기상이변이 없으면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리고 고통뿐이던 무릎이 기적을 일으켰다. 갓바위 부처 앞에서 백팔배가 아니라 삼천 배를 하고 오후가 되어서야 내려온다니 말문이 막혔다. 무엇이 할머니로 하여금 기적처럼 행동하게 하였을까. 무릇 부모란 그런 것이다.
나를 대입했다. 할머니 정성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그러니 소원도 깊이와 크기가 차이 나기 마련이다. 이제는 그간의 은혜에 감사드리고자, 부처님을 위해 치성을 드린다니 의미와 방식이나, 순서가 통한다는 생각이다.
이런저런 자랑으로 우리를 잡고 놓아줄 생각이 없는 할머니가 부러웠다. 그의 정성은 물론, 치성을 드려 얻은 결과까지 우러러보였다. 그렇다고 따라 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내치기에는 기도발이 너무나 선명했다.
가정이 똑바로 서려면 새롭게 가족 구성원에 합류하는 사람의 인성도 중요하다. 며느리 사위들이 하나 같이 예쁘고 착한, 인성이 곱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니 부처님 은덕을 제대로 입은 할머니다.
건강하시란 말에 소원 성취하란 답사를 나눠주신다. 나는 마음의 고통을 대신 안아 거두는 약사여래불을 찾아 오르면서 현생의 필연적인 도움을 주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찾고 있었다.
관봉 정상은 입시철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흐린 날, 일출의 장엄함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갓바위 부처님은 여전히 중생을 굽어보며 가녀린 표정을 나눠주고 있다. 정상 입구에서 구매한 양초에 불을 붙여 세워놓았다. 치성이 꺼질까, 불 꺼진 다른 양초에 불을 붙이는 오지랖까지 떨고, 집에서 준비해 간 공양미를 부처님 앞에 열었다. 대가를 바라듯 고개를 들자, 고통에 찡그린 모습이다. 마치 뭐 하러 또 왔느냐고 묻는 듯하다. 막무가내로 살아온 미천하기 짝이 없는 놈이 뭘 기대하느냐고 질타하는 표정이다. 저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땀이 식자 찬바람이 타래송곳처럼 명치끝을 파고든다. 웃옷을 껴입고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아내가 나를 위해 두 겹의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정성스레 백팔 배를 하란 명령 같았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다. 다른 때와 달리 더 많이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이 더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만큼 산만했다는 의미였다.
백팔 배를 끝내고 부처님과 면담을 위해 정좌했다. 그때 중간에 만났던 할머니께서 정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햇살이 비켜 비춘 얼굴이 불보살을 닮았다. 오로지 인자한, 남에게 모진 말 조차해 본적 없는 지고지순한 모습이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했다.
산에서 내려왔다. 뱃속이 무릎만큼 힘에 겨워한다. 차 속에서 준비해 간 따뜻한 당근주스와 토르티야를 맛나게 먹었다. 뭔가 하나를 이뤄낸 듯한 뿌듯함이 가슴에 차올랐다. 산등성을 넘어온 햇살이 엇비슷이 비춘다. 오롯이 햇살을 받고 앉아 있는 아내를 돌아다봤다. 입가에 소스가 묻은 채 마지막 조각을 입에 구겨 넣고 있다. 참 아름다운 광경이다.
허황되고 현실적이지 못한 희망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나는 오늘 부처님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내 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악마를 제어할 힘을 달라고 졸랐다. 그래야 죄를 고백하는 와중에도 또 다른 죄를 짓지 않을 것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 이 나이 되도록 목숨을 단죄하지 않고 지난한 삶이라도 이어가게 해준 것에 감사드렸다. 하나 더 있다면, 꽃에도 향기가 있듯 사람에게도 품격이 있다. 그러나 잡초보다 썩은 백합의 냄새가 고약한 법이다. 막다른 골목 구석에 뒹구는 낙엽 같은 삶이라도 정신만은 앗아가지 말아 달라 졸랐다.
집으로 돌아와 오전 나절 내내 잠에 빠졌다. 모처럼 꿈을 꾸지 않고 달게 잔 잠이었다. 오늘 부처님께서 내게 단잠을 선물하신게다.
가뿐한 몸으로 일어나자, 지난주에 함께 관봉에 오른 처제 소식이 들렸다. 내 스케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의 큰 일거리가 들어왔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처제 소식에 확신에 찬 아내가 마음을 재정비해서 이번 주 토요일 새벽에 또 가야 한다며 명령을 하달한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듯 다녀와 김장해야 한다며 남편의 일정을 묶어버린다.
‘나무관세음보살!’
= 덧붙이면, 내 자신이 나약한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철저하게 투쟁하며 이겨가는 과정이 인생이고 자유다. 정해진 수순대로 정치가나 언론이 따블거리는데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또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이란 말이 있다. '백성은 가난보다도 불공정에 분노하니, 정치에선 가난보다 불공정을 더 걱정하라'는 말이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거는 참지 못한다. 공정과 상식이 내마음데로라면 그정부는 이미 망해가는 중이다.
작금의 사회적 상황을 보면서 불안한 생각을 거둘 수 없다. 무지가 신념에 차면 무서운 게 없어지는 법이다. 나라 경제도, 시장경제도, 국격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그러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는 있다. 대한민국 국민을 우습게 보지 말라. 산전수전 다 겪은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