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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Oct 19. 2023


여름하늘 별자리 여행 7

우정의 이름 시그너스 -백조자리

* 작가 Allexxandar / 출처 Freepik / <a href="https://kr.freepik.com/free-photo/coma-berenices-star-constellation-night-sky-cluster-of-stars-deep-space-berenice-hair_24149865.htm#from_view=detail_alsolike">


 



백조라고 하면, 우선은 잔잔한 호수 위를 여유롭고 우아하게 떠다니는 모습에서 고귀함을 느끼게 됩니다. 발레 ‘백조의 호수’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배우들의 몸짓과 화려한 무대, 그리고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떠오르면서 감동으로 요동치는 가슴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밤하늘에도 백조가 있습니다. 별자리 백조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부터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까지 관찰할 수 있는 별자리입니다. 앞서 칠월칠석 전설이 담긴 독수리자리의 견우별(일등성 알타이르)과 거문고자리의 직녀별(일등성 베가) 사이에 은하수 강이 흐르고 있다고 ‘견우직녀 편’에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바로 그 은하수를 마치 자유롭게 유영하듯 걸쳐 있는 별자리가 백조자리입니다. 특히 동양에서는 은하수의 나루터를 뜻하는 천진天津 별을 백조의 날개부분이라고 여겼습니다.     


백조자리에는 시그너스(Cygnus)라는 소년의 우정이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태양의 신 아폴론과 요정 클리메네(Clymene. 그리스 신화에는 같은 이름의 여인이 많이 등장합니다) 사이에 난 아들 파에톤은 자신이 아폴론의 아들이란 사실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친구들은 파에톤이 아폴론의 아들이라 자랑하는 것을 비웃으며 놀리곤 했습니다. 파이톤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 친구들의 반응을 참을 수 없었던 파에톤은 어머니 클리메네에게 달려가 자신이 정말로 아폴론의 아들이냐고 물었습니다. 클리메네는 아들의 이러한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마치 아폴론에게 말하듯 대답했습니다.


“그래, 너는 정말로 태양신 아폴론님의 아들이 분명하단다.
당장 하늘에 맹세할 수도 있다.”

어머니의 모습에 만족한 파에톤은 집을 나와 아폴론이 살고 있는 궁전을 찾아갔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높은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역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궁전 꼭대기에 아버지 아폴론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주위로는 년年의 신, 월月(달)의 신, 그리고 일日(날)의 신이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시간의 신들이 서 있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신들 역시 각각의 모습으로 멋지게 장식 한 채 앉아 있었습니다. 아폴론은 멀리서 찾아온 아들을 반갑게 맞아 대견하다면서 품에 안아주었습니다. 파이톤이 감격해 말했습니다.



“태양신께서 저의 아버지가 분명하군요! 하지만 제가 아버지 아들이란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아버지의 아들임을 확인시켜 주소서!”

이 말을 들은 아폴론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너는 나의 아들이니라. 소원이 있다면 말해보아라.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 너의 의혹을 풀어주겠다. 저 저승 앞으로 흐르는 스튁스 강에 맹세할 수 있다.”

파에톤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예, 아버지. 저의 소원은 아버지께서 매일 몰고 세상을 도는 태양마차를 단 하루만 몰아보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폴론은 ‘아차!’ 싶었습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태양마차는 태양의 신인 자신도 다루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물며 어린 아이가 몰기에는 너무나 큰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었습니다. 하지만 스튁스 강에 맹세한 이상, 천하의 아폴론도 이를 뒤집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린 아들에게 태양마차를 몰게 한다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네가 태양마차를?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 네 마리의 말은 함부로 다둘 수 없는 말들이다. 그러니 다른 소원을 말해보아라.”


그러나 파에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설득하고 달래도 파에톤이 물러서지 않자, 아폴론은 자신의 경솔함을 탓하면서 하는 수 없이 태양마차 모는 법을 파에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특히 그동안 자신이 다녔던 말발굽의 흔적을 따라갈 것을 몇 번이고 주문했습니다. 파에톤은 날아갈 듯 기뻐서 잠조차 이룰 수 없었습니다.     


아침이 밝자 파에톤은 배운 대로 사나운 말 네 마리가 이끄는 태양마차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의 원기를 받기 위해 하늘 높이 오르는 것은 그런대로 어렵지 않았답니다. 기쁨도 잠시, 하늘 높이 오르자 현기증이 일어났습니다. 조금 낮게 날기 시작했습니다. 땅에서 이 광경을 보던 친구들이 멋지다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자신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을 발견한 파에톤은 힘든 것도 잊은 채 신이 났습니다. 태양마차는 우리가 말하는 황도12궁을 다 돌아야 했습니다. 물고기자리는 쉽게 지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갈자리를 지날 때는 독침을 세운 전갈이 달려들었고, 용자리에서는 용이 불을 내품으며 위협해왔습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어서 오라고 포효하는 사자자리는 더욱 무서웠습니다. 


에톤은 어쩌지 못하고 고삐를 늦추고 낮게 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곧 고삐를 잡은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말들이 황도를 벗어나 제멋대로 달리기 시작했고, 땅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태양마차가 지나는 자리마다 불이 붙었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의 땅에서는 얼음이 얼어 마치 겨울왕국처럼 변하고 말았습니다. 성벽과 도시들도 불타기 시작하더니, 만년설로 뒤덮여있던 알프스 산봉우리까지 불이 붙었습니다. 더불어 다른 신들도 위험에 처해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경우에는 메말라 가는 바닷물에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신들이 제우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해보라며 사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태양마차 때문에 다 말라버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번개밖에 없던 제우스가 결국 파에톤을 향해 번개를 날려 마차에서 떨어트렸습니다. 파에톤이 마차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 같았습니다. 에리다노스 강의 신이 불에 붙어 떨어지는 파에톤을 받아들여 불을 꺼 주었으나 파에톤은 이미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강의 요정 나이아스들이 죽은 파에톤의 몸을 찾아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시를 새겨 비석을 세워주었답니다.    


파에톤!

벼락에 맞아 여기에 잠들다.

아버지의 태양마차는 잘 몰지 못했으나

그 용기만은 칭찬할 만하구나.


이때 파에톤의 친구 시그너스가 파에톤을 찾아 나섰습니다. 수영에 자신 있었던 시그너스는 물로 걸어 들어가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 들어냈다 하면서 넓고 긴 강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래도 파에톤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자 이제는 아예 물속에 머리를 넣은 채 숨도 쉬지 않고 파에톤을 찾아다녔습니다.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숨도 쉬지 않고 친구만을 찾아다니는 시그너스를 안타깝게 여겨 백조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백조로 변한 뒤에도 파에톤만을 찾아다니던 시그너스는 결국 제우스의 도움으로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습니다. 호숫가의 백조가 종종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가 드는 모습은 시그너스의 후손이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예상하셨겠지만 또 다른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이 또한 바람둥이 제우스와 관련된 이야기랍니다.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의 미모에 빠져 제우스가 아내 헤라 몰래 레다를 만나기 위해 백조로 변했습니다. 그러고는 마치 독수리에게 쫓기는 것처럼 해서 날아가 레다의 품속에 안겨, 결국에는 레다의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레다는 그 후 남편과 동침해서 낳은 알 두 개와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생긴 알 두 개, 해서 모두 네 개를 낳았습니다. 


레다와 백조로 변한 제우스 / 미켈란젤로의 소실된 그림의 16세기 복원판. 영국 국립미술관

이렇게 태어난 네 명의 아이들이 훗날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이아스’의 무대가 되는 트로이전쟁에서 원인을 제공하는 헬레네, 트로이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 사령관 아가멤논의 아내이자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남편을 정부와 짜고 살해한 클리타임네스트라, 그리고 쌍둥이 아들 카스토르와 폴룩스입니다. 이 두 쌍둥이 아들은 이아손이 아르고호를 타고 황금 양모를 찾아 모험을 떠날 때 헤라클레스 등 영웅들과 함께한 인물입니다. 특히 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해 레다의 사랑을 얻는 신화내용은 미켈란젤로, 루벤스 등 뭇 조각가와 화가들을 비롯해 예술의 좋은 소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화에 마음이 가십니까? 둘을 비교해 그 의미와 뜻을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옛말에 ‘백두여신白頭如新’이란 것이 있습니다.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사귀었으나 여전히 낯설거나,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사귀어도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벗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시그너스의 우정 어린 마음이 다양한 우주선 이름에 사용되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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