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제국 멸망 그 이후 1

이스탄불로 수도를 옮기다

by 박필우입니다



이스탄불로 수도를 옮긴 메메트 2세의 침략전쟁은 일단의 막을 내렸다.


1481년 5월 3일 메메트 2세가 이집트 원정도중 객사하기 전까지 그는 이스탄불을 세계 최고의 이슬람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사람이 몰려들어야 했다. 그리고 경제가 활성화해야 했고, 유통 등 여러 방면에서 매력 넘치는 도시로 거듭나야 했다. 즉시 소아시아에 살던 사람들과 투르크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을 대거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 이주시켜 세금혜택과 제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지독한 기독교 국가로 거듭나던 이베리아반도에서 박해를 피해 유랑하는 유대인들을 받아들여 그야말로 재생과 부활의 광범위한 에너지를 축적한다. 지난날 이슬람제국이 그랬듯 모든 종교를 인정하는 이슬람 특유의 관용과 포용정책이 통했다. 이제 이스탄불은 명성에 걸맞게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를 두루 아우르며 조화와 공존이 통하는 도시로 거듭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 속에 공동체란 뜻인 집단 거주지 ‘밀레트(Milet)제도’가 생겨났다.(기실 통제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민족, 종교 공동체이자 공동 거주지가 생기면서 점차 확산일로를 걷고, 민족이라는 위대하고도 거룩한 공동체가 탄생한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역사학자 서경석 선생이 말한 민족이란 글이 떠올라 옮겨 싣는다.


“내가 말하는 민족은 혈통이나 문화나 민족혼처럼 소위 민족성이라는 실체를 독점적으로 공유하는 집단이 아니다. 나에게 민족이란 고통과 고뇌를 공유하면서 그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지향함으로써 서로 연대하는 집단을 말한다.”


여기서 또 하나 짚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저 멀리 이베리아반도의 에스파냐 상황이다. 에스파냐는 지독한 가톨릭 국가다. 9세기경부터 십자군 전쟁 당시 로마교황조차도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을 몰아내는 성전 레콘키스타(Reconquista), 즉 가톨릭교도들이 벌이는 국토 되찾기 전쟁(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사실 그 땅도 원래는 기독교도들 땅이 아니었다)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까닭에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좋다는 칙령을 내렸다.


13.그라나다알함브라.JPG 무함마드가 1238년에 세운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 나르스 왕국을 마지막으로 이베리아반도는 가톨릭 국가로 거듭나게 된다.



이슬람의 코르도바 왕국은 단합하지 못했던 그리스도교도의 작은 나라들을 공격해 무자비한 학살과 약탈로 명성을 떨쳤다. 그리스도교의 성지 야보고의 무덤이 있던 산티아고 대성당을 파괴했고, 985년 바르셀로나를 몽땅 불태워버린다. 그러다가 내치의 위기를 외부로 눈을 돌리게 했던 재상 알만수르가 죽자, 기독교도들이 반격에 성공하면서 1031년에 코르도바 왕국은 멸망한다. 이후 이슬람은 여러 작은 나라로 쪼개지고, 그라나다에는 베르베르인이 지배하게 된다. 치열하게 전개된 가톨릭 성전은 이베리아반도의 마지막 이슬람국가, 무함마드가 1238년에 세운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 나르스 왕국을 마지막으로 이베리아반도는 가톨릭 국가로 거듭나게 된다.

페르난도 왕자와 이사벨공주 결혼
콜롬버스가 페르난도와 이사벨 공주에게 지원을 간청하고 있다.













이후 카스티야레이온 왕국 이사벨 공주와 아라곤 왕국 페르난도 왕자가 세기의 혼인동맹을 맺음으로써 이베리아에 첫 통일국가를 이룩한다. 그와 동시에 그동안 의사, 기술자, 회계사 등의 직업을 가졌던 유대인들을 박해하면서 에스파냐를 온전하고도 완전무결점의 가톨릭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질주했다.


가톨릭 근본으로 하는 국가를 위해 사회 구성원의 실무를 담당했던 엘리트를 홀대하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유대인은 물로,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과거 조금이라도 이타적 종교의 색채가 묻었던 예가 있으면 가차 없이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이때 박해를 피해 발칸반도와 소아시아로 도망친 유대인들을 그들의 종교를 인정하고 관용정책을 펼친 메메트 2세가 받아들여 이스탄불에 역동적인 힘을 보탰던 것이다.

비잔티움까지 손아귀에 넣은 오스만제국은 발칸반도는 물론 지중해 동쪽과 중동지역, 북아프리카에까지 제국의 영토를 넓혔고, 이 기세를 몰아 16세기 말에는 오스만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북쪽으로 헝가리에서 러시아 남쪽경계,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걸프만까지 그 옛날 이슬람이 지배했던 지역 대부분을 제국의 땅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강력한 중압집권체제를 뒷받침하는 에니체리의 전투력, 앞서 언급했던 데브시르메 방식을 통한 군사충원 방식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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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자로서 재미있는 부분은 메메트 2세 스스로 기독교 교회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그는 기독교 그리스인 대교구장을 임명했고, 그 역시도 제국의 술탄이자 로마제국의 황제를 자처했다. 그러자 또 하나의 황제를 자칭하는 신성로마제국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이탈리아 원정대를 꾸리고 진격해 들어갔지만, 교황을 중심으로 기독교권 방어에 사활을 건 서구 기독교 국가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때마침 알바니아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메메트 2세는 급히 말머리를 돌려야 했다. 이후 1481년이 되면서 이집트 정복에 나섰다가 원정 도중에 죽고 말았다.


파티흐, 즉 정복자란 별명이 붙은 풍운아 메메트 2세는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졌다. 비잔티움을 이스탄불로 바꾸며 제국의 수도로 삼았던 그로 인해 지금의 이스탄불은 그리스인과 로마인, 터키인에 의한 인류 문화사적 정기가 은은하고 진중하게, 그러면서 때론 역동적인 광선을 발산하는 도시로 거듭났다. 특히 흑해를 이슬람의 호수로 만들어버린 것은 그의 역작이었다. 발칸반도를 평정하면서 보스니아 귀족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킨 뒤 북방 변경지역을 방어하는 오스만의 전사로 탈바꿈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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