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노르만족의 남하 2

by 박필우입니다



노르만족의 대이동


4세기 훈족에 이어 2차 민족의 대이동이라 불리는 노르만족은 6세기부터 8세기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이후에도 도미노현상이 이어지면서 유럽의 지도가 급변하고 있었다. 어떤 원인으로 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기후의 변화로 인한 절박함과 인구의 증가로 농사지을 땅이 턱없이 부족해졌고, 더는 그곳에서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오래전부터 해왔을 것이다. 한 날 한시에 이동을 한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옆 부족이 이동하면서 함께 결단을 내렸을 수도 있었고, 성공적인 이동을 보면서 용기를 낼 수도 있었으며, 부족장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이를 따르는 민족도 있었다.


이들은 당시 자신들이 축적된 경험과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했다. 이동경로는 보면 어느 한 곳으로 집중해 내려온 것이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나누어 골고루 퍼진 것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남부에 나폴리 왕국을, 프랑스 북부에 노르망디 공국을 세웠다. 영국에 노르만 왕조를 건설하면서 스코틀랜드·아일랜드·웨일스를 정복하고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한 무리는 대서양을 항해한 끝에 오늘날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 정착한다. 또 한 무리는 이베리아반도 끄트머리 지브롤터해협을 통과해 지중해로 들어가는 멀고도 먼 항해 끝에 시칠리아왕국과 나폴리왕국을 세운부족도 있다.


특히 동쪽으로 이동한 무리는 노브고로드 공국과 더불어 러시아의 전신인 키에프 공국을 건설하면서 이전에 이곳에서 살던 슬라브족을 발칸반도로 밀어내 그곳에 새로운 나라를 탄생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동을 거듭하면서 나라를 세운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들 역시 본래의 종교를 버리고 가톨릭을 믿으면서 유럽 역사의 하나로 흡수되고 유럽의 봉건사회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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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만족이 남하를 시작할 당시 유럽은 동프랑크와 서프랑크왕국, 그리고 비잔티움제국으로 나눠져 있었다. 이때에도 유럽은 평탄하지만 않았다. 북쪽에서 밀려오는 노르만족뿐만이 아니라 남쪽의 이슬람과 동쪽의 마자르, 즉 헝가리인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했다. 물론 노르만족이 남하하기 시작하면서 유럽은 본격적으로 요동치기 시작한다.


이미 동프랑크는 마자르족을 맞아 고단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슬람으로부터 가톨릭교권의 서유럽을 지켜내는 비잔티움제국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때 노르만족이 짠! 하고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그들 특유의 방식대로 평소 배를 머리에 이고 다니다가 강을 만나면 배를 물에 띄우고 항해하면서 유럽 내륙 깊은 곳까지 침략을 이어갔다.



점점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10세기가 들어서면서 서프랑크의 수도 파리를 포위한다. 노르만족의 한 부족장이었던 롤로는 서프랑크왕국의 샤를 3세에게 자신들이 살아갈 땅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샤를 3세는 울며 겨자 먹기로 프랑스 북서부 바닷가 지역을 이들에게 내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세운 나라가 노르만의 이름을 딴 ‘노르망디공국’이다.





동유럽으로 향한 노르만족


노르만족 중 류리크란 인물이 이끄는 부족이 있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벨라루스에서 흘러온 프리퍄티강과 두물러리를 이루고 흑해에 이르는 드네프르강을 따라 항해를 이어가면서 지금의 러시아 땅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그곳에는 슬라브족이 살고 있었다. 당연히 전쟁을 통한 침략이냐, 아니면 물러나 다른 터전을 향할 것이냐를 선택해야 했다. 862년 류리크는 착하게도 평화를 택해 그들과 사이좋게 살아가기를 원했다. 오늘날 러시아 유럽의 북서부에 원주민 슬라브족과 힘을 모아 ‘노브고로드공국’을 세운다. 그리고 대를 이어 왕의 자리를 세습하면서 그 후손들은 1613년 로마노프 왕조가 들어서기 까지 현재 러시아 땅 여러 공국의 지배가자 된다. 류리크는 러시아 류리크왕조를 개창한 지도자로 역사에 기리 남는다. 정교회 수도승들에 의해 집필된 최초의 러시아 역사서 《러시아 원초연대기》에는 추드족, 슬라브족, 크리비치족들 대표가 바다를 건너 ‘루시인’이라고 부르는 노르만족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28.노르만족(퍼블릭).jpg 노르만족 복식. 위키백과



“우리 땅은 넓고 사계절 풍요로워 먹을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도자가 없어 큰 나라로 거듭날 수 습니다. 부디 오셔서 우리를 지도하고 질서를 잡아 잘 다스려주세요.”


이렇게 간청하자 루시인 지도 삼형제가 초대됐다. 그 중 큰형이 바로 류리크다.

이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바이킹을 물리치며 나라를 지켜낸 슬라브족 지도자가 죽자 그의 딸이 바이킹족과 결혼하면서 신랑을 따라 떠났다. 훗날 슬라브족이 딸을 찾아가 남편과 그 형제들을 초대해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이다. 이민족 노르만족과 슬라브족이 합쳐져 러시아의 기원이 되는 나라를 세웠다는 사실이며, 이로써 러시아는 발칸반도의 슬라브족에게 같은 뿌리라고 정치적 동질감을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론은 노르만족의 이동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정설이다.


러시아 연대기

류리크와 함께 초대받은 동생들이 일찍 죽고 그의 친척인 올리그가 드네프르강을 따라 더 남쪽으로 내려가 오늘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점령하고, 그곳에 살고 있던 슬라브족을 지배하면서 키예프공국을 세운다. 그리고 훗날 이곳 키예프공국 역시 류리크의 후손이 다스리게 된다. 더 동쪽으로 진군한 류리크의 후손들은 12세기 초 모스크바공국과 블라디미르공국까지 지배하면서 러시아의 류리크왕조를 이어간다.


류리크와 함께 온 노르만족 일부는 드레프르강을 따라 더 남쪽으로 내려가 비잔티움제국과 교역하기도 했다. 이 과정 역시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이들 상인들로부터 몸을 피해 터전을 버린 슬라브족은 더 남쪽으로 쫓겨나야 했다. 이렇게 쫓겨난 사람들이 발칸반도에 자리를 잡으면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바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이다.





이 외에도 노르만족은 아이슬란드를 지나 그린란드 바닷길을 항해해 아메리카 땅에 발을 디디기도 했다. 콜럼버스보다 무려 500년 앞서서 아메리카로 건너간 셈이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첫 도착지 북아메리카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인류사학자들은 정확하지 않지만 전쟁 혹은 풍토병이나, 전염병에 의한 것으로 본다. 종교를 받아들이고 문화를 흡수하면서 유럽 내 정착했던 무리들과 달리 생김생김이 영판 딴판인 북아메리카에 정착한 노르만족으로선 원주민과 동질감을 느끼기에 이질감이 워낙 컸을 것이라 생각된다. 인간 본연의 우리와 그들로 갈라지면서 이어지는 반목과 생판 다른 삶의 생활방식 등이 갈등을 부추겼고, 결국에는 북아메리카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으로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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