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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버텨낸 나에게

by 은도
2023.06.20. 화요일

오늘 이 일기의 첫 장은 내 인생의 끝이 아닌 시작이다.
유난히 짙게, 깊게 어두웠던 봄,
그 봄을 뒤로하고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와 다른 나로 살고 싶다.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누군가에게 의존하지도, 사랑받으려 애쓰지도 않고
오직 나를 채우는 시간, 남은 2023년은 그런 시간이 될 것이다.
더 단단한 내가 되자.




2023년 봄은 내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다.

남편은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나를 떠났고,

숱하게 흘린 눈물에 봄의 시간이 지워졌다.


그해 여름의 초입,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는 더 이상 시간을 잃고 싶지 않았던 나의 발버둥이자,

이혼의 아픔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였다.


그 후 6개월의 일기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견뎌냈던 분투의 기록이었다.

커다란 공허를 아득바득 좋은 것들로 채우려 애썼던 노력의 흔적이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2023년이 저물고 2024년의 새로운 해가 뜬 날,

나는 그간의 일기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내게 편지를 썼다.


2024.01.01. 월요일

-2023년의 은도에게-

오늘, 그간의 일기를 죽 훑어보았어.
불안하고, 힘들고, 답답하고, 쓸쓸하고, 화가 나고, 우울하고, 억울했던,
모든 감정을 느끼면서도 애써 밝으려고 했던 마음이 느껴져서 먹먹했어.
그때의 네가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해.
그 시간을 지나 2024년에 들어선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2023년은 가장 아팠지만 가장 성장했던 해였어.
너는 결국 2023년을 그렇게 만들어 냈어.
수고 많았어.
앞으로의 나는 너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더 성숙한 나로 살아낼게.
잘 버텨줘서 고마워.’




그날의 편지는 모든 시간 속 나를 향한 위로이자 응원이었다.

지워진 시간 속 나를 안아준 위로였고,

어둠을 버텨낸 나를 안아준 위로였다.

2024년을 맞은 나를 향한 응원이었고,

미래의 모든 나를 향한 응원이었다.


그 편지는 앞으로도 나를 살게 할 것이다.

어둠 속에 또다시 갇히는 때가 오더라도,

나는 다시금 그 어둠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편지에 담긴 믿음과 지지가 미래의 나에게도 여전히 닿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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