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사십 년 전에는 여성을 대하는 사회 분위기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80년대 말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서 '결혼하고도 계속 다닐 거냐, 시부모님이 반대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당시에는 여성 직원들이 결혼과 함께 퇴사하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회사가 퇴사를 원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 실무 면접자는 '기껏 일 가르쳐서 혼자 하도록 맡길 만해지면 그만둬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한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성 평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있어서인지 곧 사라졌다. 아직 결혼을 생각도 못 해본 터라 대답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글쎄요…. 아직 처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뭐 굳이 반대하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예상 못 한 질문이었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나는 그 회사도 느낌이 좋아서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더 마음에 드는 다른 회사를 선택했다.
2.
회사에 입사해서는 근무시간 외에 입사 동기들과 어울릴 때가 편하고 좋았다. 긴장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었지만 동갑내기 여자 동기도 한 사람 있었다. 어느 날 동기들과 저녁식사 후 2차로 맥주를 마시고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대부분 살짝 취했고 성격 좋은 남자 동기 한 사람이 불쑥 내 어깨에 손을 얹으려고 했다. 연인 사이에도 거리에서 목을 감고 다니는 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내가 편해서 그랬겠지. 하지만 뭐 어쩌자는 것인가? 곤란해진 나는 갑자기 양팔을 크게 돌리면서 ‘양치기 소년’을 흉내 내어 큰 소리로 외쳤다. "으아, 늑대 목도리가 나타났다! 으아, 늑대 목도리다!" 양팔을 돌려대서 내 어깨에 손을 댈 수 없게 하면서 앞서가는 동료들에게로 뛰어갔다. 다른 동기들이 “뭐, 늑대 목도리?” 했고 같이 큰 소리로 깔깔대고 웃었다. 이후 그는 내게 그런 실례를 다시 저지르지 않았다. 딱 한 번 빼고는.
이십 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오랜만에 동기들과 저녁 모임이 끝난 때였다. 맥주를 마시고 거리로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 동기가 갑자기 나와 어깨동무를 하려는 게 아닌가! 이 사람은 술 취하면 자기 친구들이랑 어깨동무하는 게 버릇이었나 보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어깨동무 친구가 아니다. 옛날처럼 양팔을 크게 돌리며 뛰어갔다. 이번에는 다르게 외쳤다. "딸이 본다! 딸이 본다! 으아, 딸이 본다!" 내 소리에 이 사람은 "뭐, 뭐라고? 따, 딸이 본다고?" 하며 깜짝 놀라는 거였다. 나는 큰 소리로 깔깔대며 거리를 두고 걸었다. 그가 눈에 넣어도 아파하지 않을 자신의 딸을 상기시킨 건 즉시 효과가 있었다.
3.
나와 남자 동기 한 사람이 같이 인사부서에 배치됐는데, 관리자나 선배들은 모두 점잖고 좋은 분들이었다. 고루한 문화는 어쩔 수 없었지만 다들 신사였다. 그때도 밤샘 근무가 가끔 있었는데, 남자들은 새벽에 사우나에 다녀오는 것 같았다. 나는 회사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화장품을 바르면 되었다. 나와는 파트가 다른 차장님 한 분이 한 번씩 내 동기에게 “어이 아무개 씨, 사우나 갈까?” 했는데, 그건 뭐 나랑 상관없으니 괜찮았다. 하지만 두어 번은 전체를 향해 “우리 다 같이 사우나 한 번 갈까?” 했다. 내게는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이상한 시선이나 음담패설은 없으니 뭐라고 대꾸할 수 없어 가만히 있었지만, 계속 듣자니 은근히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창립기념일이라고 기념수건을 전 직원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책상 위의 수건을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선배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회사에서 수건도 나눠줬으니 우리 다 같이 사우나 한 번 가시지요! 에이 까짓 거, 하나 보여주고 여럿 보면 그게 더 이익이겠네요.” 이후부터 그 차장님은 ‘사우나 가자’는 말을 다시는 꺼내지 않으셨다.
4.
가끔은 야릇한 시선으로 대하는 남성들도 볼 수 있었다. 긴 시간 대하거나 반복해서 대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 일대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은 꽤 난처한 일이었다. 그럴 때면 기도하듯 심호흡을 하고, 눈을 크게 뜨고 상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예의를 갖추고 목에 힘을 주어 말하면서, 천천히, 무척 정중하게 대했다. 그 시절에는 여자가 남자와 동등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남녀 차별이 무척 심했다. 신사들도 있었지만 은근히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물질만능 세상이 아니었다. 나름 자부심이 있고 양심이 있고 또 부끄러움을 아는 남자들이 충분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보다는 사람들 심성이 거칠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더라도 젊은 숙녀에게 자신이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건강한 허영심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당신은 신사, 어린 나는 당신을 한껏 존경합니다!'는 의지를 눈에 가득 담고 깍듯이 대하면 그 사람들은 고맙게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신사로 지나가주었다.
삼십몇 년 지나는 동안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 할 만큼 변했다. 세상이 엄청나게 발전한 것은 맞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발전하기만 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 지금 세상이 더 혼탁하고 스트레스도 더 많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나는 남녀 차별이 심해서 억울하고 힘들었지만, 지금 세상의 젊은이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그때보다 여러 가지로 더 힘든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