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결혼식을 올린다면
볼이 통통하고 눈빛 맑았던 젊은 날로 돌아가
다시 결혼식을 올린다면 꼭 무덤공원에서 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늙어 이 세상을 떠나겠지만
아직은 너무 눈부시게 젊어 도저히 실감 나지 않는 그 날에,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나란히 묻힐 저곳까지 겨우 몇 걸음 떨어져 있지 않고
여기서 저기까지 가는데 한 달이 걸릴지 일 년이 걸릴지 십 년이 걸릴지
아니면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할지 알지 못하는 날에,
지금 나란히 선 이 자리에서 내 가슴을 가득 채울 것은 내 손을 잡고 선 이를 위해주겠다는 생각뿐일 것이고 이 사람과 살면서 이런저런 덕 좀 볼 것이라는 생각이나 생활이 될 결혼에 대해 어떤 환상과 허영과 거짓도 깃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혹여라도 하나가 먼저 가고 남은 하나가 좀 뒤에 따라가게 되더라도
그런 아픈 헤어짐이 너무 큰 고통이 아니게 될 것이고
남은 하나가 많이 외롭고 힘든 날에는 찾아와 둘이 함께 섰던 이 날을 추억하며
힘을 얻어 돌아갈 것입니다.
삶도 죽음도 이곳에서의 결혼식과 함께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그 무덤가 결혼식이 가족이나 친구가 결혼하는 자리라면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데
내가 뭘 보태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일 테고
심술궂은 생각이나 고약한 마음은 모두 무덤에 묻혀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해 준 Hollywood Forever Cemetery 잔디밭은 초라하거나 우중충하지 않고
오히려 제법 화려한 공원이었고 죽음도 즐겁게 축복하는 듯 하였습니다.
남편과 결혼한 지 열일곱 번의 겨울이 지나갔습니다.
"우리 Cemetery에서 다시 결혼식 올리면 어떨까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해 난처해하는 남편의 표정을 보며 다시 생각이 이어집니다.
아무리 무덤공원에서의 결혼식이 좋아도 이만큼이나 같이 살았고 이젠 별로 젊지도 건강하지도 않으면서 지금 와서 무덤 약속을 하자는 건 심한 욕심이겠구나....
지금도 그이가 내 곁에 있어 주는 것,
그저 감사한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2009년 5월. 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