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트고 스러지고 살아나는 것
*이 이야기는 가상의 설정으로 창작된 픽션입니다.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학교 후문으로 가면 등교하는 학생들을 위해 아기자기한 벽돌길이 이어지다 툭 끊겨버리는 구간이 있다. 여기에서 내리막길로 주행해서 좀 꺾다 보면 집이다.
후문을 거치지 않고 정문 쪽으로 직진하면 오늘 가야 할 곳이 있었다.
딱히 반가운 일로 가는 건 아니었다. 에코백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봉투 입구 부분에 모 은행 로고가 박힌 봉투였다. 옆부분은 살짝 구겨진 채였다. 에코백에 이것저것 넣다 보니 그들의 덩치에 밀려 중간 부분쯤이 구겨지는 수모를 당했다.
주차하는 영역임을 표시해 주는 구조물에 차체가 닿지 않도록 나는 주차를 했다.
동봉된 봉투에서 네 번 접힌 종이를 꺼내 건물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건물 중앙 상단에는
각지고 정형화된 글씨체로 ‘A식물 박물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로비 들어가기 전 회전문 옆에는 ‘방명록’이라고 적힌 이젤로 고정된 백지 수첩과 ‘그동안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나은 모습으로 뵙겠습니다.’라고 적힌 문구가 붙어 있었다.
방명록과 저 문구는 상반되는 것이 아닌가. 방명록은 방문한 소감을 적는 거고 방명록에 적는 말은 장소가 없어지는 아쉬움에 대해 적는 말이 아닐 거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뒤에 저 말은 왜 붙인 거지. 글자수를 늘리기 위해 어떻게든 덧붙이는 형태 없는 말처럼 느껴졌다.
로비까지 들어가는 여러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되뇌었다.
로비 가운데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근사한 행사를 할 것이라는 암시를 하듯 매끄러운 소재의 테이블보가 덮여 있었다. 앉는 부분만 푹신하고 다리는 딱딱한 키 작은 의자에 여러 사람이 앉아 둘러싸인 채로 활동을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림이었다.
선착순으로 모집한 활동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으로 뒤에서 기웃기웃 들여다보고. 그런 아쉬움을 눈치챈 담당자는 다음 주에도, 다다음주에도 이런 행사를 주최할 테니 그때 또 신청해 달라. 하고 달래야 할 것 같은 자리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위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삐 오가고 내다볼 미래가 많은 곳이었다.
오늘 본 건 그런 활기찬 게 아니었다. 내가 늘 본 것처럼 사람이 테이블을 에워싸고 있는 형태이긴 했지만 상황이 달랐다. 당신을 포함해서 여기 집합한 사람들은, 이곳이 운영을 관둔다는 통보를 듣고 온 거니까. 몇 달 전부터 통보를 해 왔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소식을 접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