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1일.
설계를 하다가 문득 4년 전 스위스 루체른에서 혼자 돌아다녔던 날이 생각났다. 소영이와 나는 보고 싶은 것이 달랐고, 우리는 그럴 때마다 자유롭게 각자의 걸음으로 여행했다.
혼자 라비올리 집에 가서 라비올리를 골라 먹고 레몬에이드를 마셨었다. 한국에서는 라비올리를 종류별로 파는 라비올리 전문 레스토랑을 본 적이 없었기에 생소했다.
골목은 나무가 우거져 어두웠고, 사람이 별로 없는 길은 따스했다.
그런 순간을 좋아한다. 전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이후로 라비올리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 맛을 좋아한 것도 있지만, 나는 그 음식에 들어 있는 그 날의 오후를 기억한다.
관광지는 비일상의 성격을 크게 가지고 있어서 새롭고 흥미롭지만 와닿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떤 꾸며진 세트를 구경하고 있는 느낌. 인위적이고, 어색하다. 사람이 그리고 쌓아올린 도시의 풍경은 어디든 인위적이지만, 관광지는 그 위에 또다른 인위성이 덧씌워져 딱딱하고 붕 떠 있다.
그런데 그 곳에서 한 발짝만 멀어져 깊이 들어가도 다른 기분이 든다. 나는 대륙 건너 누군가의 삶의 공간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누군가는 매일 라비올리를 만들고, 레몬에이드를 만들기 위해 출근하는 골목길과, 그 안의 어떤 삶의 공간으로.
여행의 순간이 꽤나 여러 번 나를 살린다. 혼자 모르는 세계에서 길을 잃었던 기억들과, 그 세계 속에 잠겨 짙게 새겨 넣었던 감각들이 무채색의 일상 속에서 나를 건져 올린다.
나는 지루하고 위태로운 길을 걷고 있지만 그런 기억들로 인해 괜찮은 것이다.
언젠간 이 길에서 빠져나와 그 길을 또 걷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럼 나는 그 자리에 새로운 시간의 색을 덧칠하게 될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 오늘이 괜찮아진다.
앞으로도 그렇게 괜찮은 하루들을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