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9
오랜만에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배우고, 잘 잘라서 내가 원하는 배열로 정리를 한 다음 머리 속에 넣고 꼭꼭 씹어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모으는 종잇장들 사이에 이름표를 붙여 잘 집어넣어 두고 종종 꺼내서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 너무 오랜만이라 이상했다.
어제는 피터 줌터의 책을 읽다가, 거기에 소개된 장 보드리야르의 사물의 체계에 대한 짧은 글을 찾아서 읽어보다가,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 공부하다가, 거기에서 이어져 케네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를 살짝 들여다 봤다가, 구조주의와 모더니즘 미술에 대해 알아가고 싶다고 적어두었다. 잘 알지 못하는 것들 사이를 얕게 헤엄치면서,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즐거웠다. 흔히 듣던 가문비나무가 사실은 내가 좋아하던 나무였다는 것을 알아내며 언어와 실체의 일치에 반가워하고, 아침에는 로션을 바르며 브루클린 거리에 대한 건축 영상을 보다가 federal style 의 건축 양식을 찾아내고 흥미로워한다. 설계를 하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리카르도 보필의 스페인 지중해 건축물 사진을 모으며 좋아한다. 덥다고 한여름의 중부 지역 여행을 포기하고 겉핥기 식으로 바르셀로나만 둘러봤던 4년 전의 스페인 여행을 살짝 후회하기도 한다. 이 모든 건 내가 하고 있는 설계 프로젝트와는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내가 지금 재밌어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다. 오랫동안 잊고 지낸 감각이 살짝 수면 위로 떠올라 발장구를 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한 거다.
위태롭고 즐거운 시간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민이가 추천해준 The Banshees of Inisherin도 인상을 찌푸린 채 열심히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