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 산문집 ‘기내식 먹는 기분’을 읽으며 (1)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주 작은 책방에서 아주 매력적인 산문집 하나를 주워들었다. 표지가 무척이나 귀여웠는데, 펼쳐보니 내 마음에 잘 닿을 것 같았다.
사랑하기 쉬운 책이다.
첫 장의 제목은 ‘길의 뒷모습’.
산티아고 순례길 카미노를 걸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멈춰서게 하는 문장들과 그 문장의 꼬리에 달아두고 싶은 생각들을 모아보았다.
각 장 마다 모아보면 재밌을 것 같아서.
그럼 첫 장인 ‘길의 뒷모습’을 읽던 시간부터.
55쪽.
‘그는 세련된 영국 억양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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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영국 억양?
그게 뭐지.
그 표현이 왜 갑자기 신경 쓰였는지 모르겠다.
세련되다. 서투르거나 어색한 데가 없이 능숙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
모르던 단어처럼 느껴진다. 나는 저 단어를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 능숙하고 잘 다듬어졌다기보다는, 뭔가 촌스럽다 의 반댓말로만 써왔는데.
촌스럽다.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다.
나는 어울린 맛이 없는 것이, 어수룩한 것이 좋아서 세련된 것이 싫었다. 그냥 그렇다고.
56쪽.
‘문득 카미노에 온다 한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달라지지 않고, 세상도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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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감정을 로트네스트 섬과 발리에서 느꼈다. 두 곳은 내가 소원처럼 그리던 장소였다. 죽기 전에는 꼭 가볼 거야, 라고 말하던 곳 중 두 군데나 간 여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여름이 나의 일부를 뒤집고, 그 안에 물컹하든 단단하든 뭐라도 채워 넣을 줄 알았나보다.
그 곳에 발 디뎠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쿼카와 사진을 찍는다고, 발리의 마사지 오일 향을 맡는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새삼스럽게.
그 여름이 바꾼 게 하나는 있었다.
더 이상 죽기 전에 뭔가를 꼭 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안 해도 상관 없다. 세상에 꼭 해야할 일 같은 건 없었다.
물론 지금도 하고 싶은 것을, 발 붙이고 싶은 곳을 적어보라면 앉은 자리에서 50개 넘게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안 해서 큰일날 것 같은 것은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고 싶었던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안 가도 되고, 아프리카에 가서 야생 기린을 못 봐도 좋다. 아... 아프리카는 좀 고민되네. 그건 좀 많이 가고 싶나보다.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걷든, 평범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을 구경하고 있든. 나도, 나를 둘러싼 세상도 평소처럼 작게 진동하고 있을 뿐이다.
63쪽.
‘멀리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그 뒷모습을 눈에 박아두느라 사진도 안 찍었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동안 잠시 놓치는 시간이 정말로 아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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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무언가를 찍으려고 하는 순간 화면 안을 들여다 봐야해서 실제의 모습을 놓칠 것만 같다. 카메라를 꺼내는 찰나의 시간도, 제대로 찍히고 있는지 종종 확인하는 시간도 잃을 수 없어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눈으로만 본다. 그러고 나면 결국 그게 무엇이었냐는 듯 잊게 된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는 감각만 흐릿하게 남겨둔 채로.
찾을 수 없는 어딘가로 떠내려가버린 그 단상의 남긴 희미한 감정의 색채. 그런 색채로 군데군데 적셔져 완성된 마음들. 기억하지 못해도 그 일부가 내 안에서 살아간다.
68쪽.
‘그래도 그날 같이 걸으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어야 했다. 내내 후회했다. 밤길을 같이 걸으며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불러줄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알베르게 주방에서 요리해다가 그와 복스와 나눠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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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걸으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어야 했다는 문장에서 눈이 아릿한 물 속에 담기는 느낌이 들었다. 용기를 낼 수 없었어서 스쳐가버린 인연들이 떠올랐다.
4년 전 여름,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가 취소되었을 때, 언제 스페인으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불안한 채로 비 오는 니스에 하룻밤 더 남겨졌다. 무언가를 구경할 기분이 아니었기에 축축한 니스의 호텔에서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다. 아프지도 않으면서 호텔 안에서만 머문 날은 그 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생각지도 못한 특별한 만남을 호텔 뷔페에서 가지게 된다.
나는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아마 햄버거와 감자튀김 같은 것이었을 거다. 옆 테이블에서는 노란빛 백발의 백인 여성 분이 혼자 치즈 플래터를 먹고 있었다. 식당 옆자리 사람에게 말을 거는 문화가 없는 나라에서 20년 넘게 자라온 그 때의 나는 곧 그 여성과 밥을 같이 먹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옆자리에서 한 문장이 걸어들어왔다. 혼자 먹고 있는데 너무 많아서 치즈를 나눠먹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조금의 다른 의도도 없는 순수히 다정한 말에 거절을 하는 법을 잘 모른다. 치즈가 먹고 싶지도 않으면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우리는 같이 치즈를 나눠먹었다.
그 여성 분은 미국에서 오랜 시간 건설업에 종사한 사람이었다. 건설 회사에서 맡은 업무가 내 전공과는 거리가 다소 있어 보였지만 우리 사이에는 얇은 연결고리가 있었고, 그게 신기했다. 지금은 기억이 흐릿해져버리고 만 그 대화 속에 처음 보는 20대 초반의 여자아이의 미래에 대한 응원이 가득 담겼던 느낌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는 끊임없이 나에게 용기를 줬다. 그 때의 나는 그 어디에도 확신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는데, 어떻게든 무조건 해낼 수 있다는 샛노란 빛의 응원을 과분하게 얻었다.
60번 정도 크루즈 여행을 해보았다던 그 분은 크루즈를 타고 마지막 행선지로 간다고 했다. 그게 파리였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그 분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랑하는 딸이나, 그 딸의 아이나,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나는 겁쟁이라서 내 가족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처음 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많이 해버리는 것이 부끄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같지만.
그 자리에서 이메일 주소를 물을까 몇 번을 고민했는지 모른다. 이 대화가 여기서 마지막이 된다는 것이 슬펐다.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숫기 없던 그 때의 나에게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밥을 다 먹은 뒤 각자의 호텔방으로 돌아갔다. 그 대화를 잊을까봐 겁이 나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피렌체에서 산 가죽 다이어리를 처음으로 펼쳐 마구 일기를 적어내렸던 기억이 난다.
유치하지만 나는 잠시 꿈을 꾼 것 같았다.
지금도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그 때 이메일 주소를 물었다면, 한국에 돌아와 연락을 했다면, 답장을 받지 못하더라도 나에게 그 대화는 정말 따뜻하고 꿈같은 순간이었다고 알려줄 수 있었다면…
가끔 마음 깊은 데에서 용기를 건져올려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나는 4년 전에 그 순간을 놓쳤다. 다음 순간이 왔을 때는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때보다는 뻔뻔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으니, 아마
71쪽.
‘다들 카미노를 걷는 동안 오직 산티아고 성당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도착하고 난 뒤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미처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성당에 도착하고 나면 일순간 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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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들의 엔딩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가 보는 이야기에는 다 엔딩이 있다. 그게 어떤 모습이든, 마지막이니까 대개 근사하다. 그럼 그 다음은? 그 다음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니까 아름답곤 한다.
내가 사는 시간은 그렇게 명확한 엔딩으로 매듭지어지지 않는다. 목표를 이루고 나면 그 다음이 있고, 그 다음의 목적지에 도착하면 또 그 다음이 있고, 또 그 다음… 그러다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어딘가에서 툭 끊기면서 맥락 없는 마무리가 지어지겠지.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은 언제나 멍하다. 두 번째 설계 스튜디오가 끝났을 때 그랬다. 끝나니까 좋았는데, 나는 열심히 달렸고, 잘 마무리를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는데, 끝나니까 결국 또 원점인 것 같았다. 3일 쯤 지나자 누군가가 나의 몇 달을 쓱싹 지워버리고, 자, 다시 새로운 세계로. 그게 허탈해서 그 이후의 스튜디오에는 그만큼의 에너지를 쏟지 못했다. 어떤 찰나의 마무리를 위해 경주마처럼 사는 게 어려웠다. 나는 보통 그러고 나면 너덜너덜해져 있었으니까.
그래서 잘 살아가는 법을 모른다. 열심히 살면 좋은 것 같은데, 그러고 나면 나는 너무 물기 없이 갈라져버리고, 그래도 결과물이 좋으면 다 괜찮게 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나?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는 순간.
어린 나는 아직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는.
74쪽.
‘어쨌든 세상엔 겪기 전에 아는 사람이 있고 몸이 힘들고 나서야 깨닫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고 그래서 몸이 고생했지만 그래도 꼭 봤어야 했다. 세상의 끝을. 그 바다 끝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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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만큼의 고통이 압축된 여행을 한 적은 없지만, 어쨌거나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나도 해보고 싶다고 느낀 것은 꼭 해보고야 마니까. 피곤해 죽겠는데 굳이 무언가를 보겠다고 보겠다고 혼자 멋모르고 찾아가고, 계속 헤매고, 이상한 오기로 결국은 가게 되고.
작년에 싱가폴에서 한 학기 내내 환상처럼 마음 속에 젖어 있는 곳이 있었다. 별 것도 아닌데, East Coast Park라는 곳이 너무 가고 싶었다(아마 나와 교환학생을 갔던친구들은 모두 가봤을 것). 같은 설계 스튜디오의 현지 친구가 그 곳은 바다 앞에 넓은 공원이 있고, 우리는 모두 늘 거기에 가서 놀며, 그 곳의 노을이 정말 아름답다고 말해준 이후에 내내 마음에 담아두었다.
그 곳은 학교에서 꽤 멀었다. 나는 혼자 어떻게든 찾아가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그 날따라 자꾸만 잘못된 버스를 탔고, 이상한 길로 들어서서, 그래서 나는 어딘가 모르는 동네를 두 시간 넘도록 걸었지만 그 곳에서 더 멀어져 있었다. 아마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 웃긴 일이었다.
해는 이미 졌고, 내가 꿈꿨던 노을은 하늘을 넘어 다른 나라로 사라진 이후였다. 나는 그 날 바다 앞 공원의 근사한 노을 대신 해진 후 까맣게 일렁이는 물을 구경했다. 반짝반짝했다.
행복하게 헤맨 날이었다. 물론 나는 정말 무식했다. 어딘지도 모를 동네를 혼자 계속 돌아다니고, 그렇게 오래 걸려서 결국 그 공원을 갔다. 그렇게 바보같이 헤맨 발자국 사이에 얼마나 예상치 못해 즐거운 순간들이 많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무언가를 보고야 말겠다는 고집으로 똘똘 뭉친 나를 미워하다가도 결국엔 사랑하게 된다.
궁금하면 꼭 봐야 한다. 보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때가 10번 중에 8번은 된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불편하게 찾아가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고 꽤나 여러 번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 덕에 지극히 평범해서 더 특별한 장면을 가지게 된다. 난 헤매다가 얻게 된 완전히 혼자인 순간이 좋다. 아무도 찾지 않는 어떤 빈 땅, 흥미로운 구석이 없어서 내 눈 앞에서만 엄청나게 흥미로워지는.
중간중간 수없이 멈춰서서 따뜻하게 잠겨보며
기내식 먹는 기분 1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