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과 1차세계대전
[조국을 향한 굽히지 않는 예술가의 충정]
1895년, 20세의 라벨은 신체적으로 너무 작고 약해(161cm, 48kg) 징집을 거부당했다. 하지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39세의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조국 프랑스를 지키겠다는 그의 숭고하고 용감한 애국심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공군 입대마저 좌절된 후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운전을 배워 1915년 자원하여 육군 수송병으로 입대했다. 당시의 상황은 음악가에게 이상적이지 못했지만 1916년 그는
« Je suis bien loin de la musique ; je suis un poilu en peau de bique, casqué, masqué, qui se promène en auto sur des routes rébarbatives. (저는 음악과는 거리가 멀어요. 저는 염소가죽 옷을 입고 투구와 마스크를 쓴 채 음울한 도로를 달리는 군인입니다.) »
라고 글을 남겼다. 편안하게 후방에 남아 펜과 악보를 쥐는 대신, 기꺼이 진흙탕과 생사가 오가는 전장을 택한 그의 헌신은 지식인이자 예술가가 보여줄 수 있는 참된 용기였다.
[참혹한 전선에서 맞닥뜨린 지울 수 없는 상실]
라벨은 지옥과도 같았던 베르됭 전선 인근에 투입되어, 빗발치는 포탄을 뚫고 칠흑 같은 밤마다 군수품을 실어 날랐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와 극심한 과로 속에서 그의 건강은 무참히 망가졌고, 결국 이질에 걸려 1917년 군복을 벗어야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같은 해에 자신의 가장 든든한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조국에 모든 것을 바치려 했던 이 굳건한 예술가는 깊은 절망과 헤어 나올 수 없는 상실감에 빠지고 말았다.
[우아함으로 승화시킨 전사한 동료들을 위한 묘비명]
전쟁이 남긴 뼈아픈 트라우마는 그의 작품 세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전쟁 전 구상했던 피아노 모음곡 '쿠프랭의 무덤(Le Tombeau de Couperin)'은 제대 후 참전 중 전사한 소중한 지인들에게 헌정하는 곡으로 완성되었다. 라벨은 참혹한 슬픔을 통곡으로 표현하는 대신, 프랑스 음악 특유의 정제된 우아함과 가벼움을 선택했다. 이미 영원한 침묵 속에 잠든 이들에게 더 이상의 무거운 슬픔을 얹지 않으려 했던 그의 섬세한 배려는, 전쟁의 비극을 가장 고결한 방식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예술적 저항이었다.
[붕괴하는 유럽 문명을 향한 처절한 진혼곡]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빈 왈츠에 대한 화려한 찬미로 기획되었던 '라 발스(La Valse)' 역시 전쟁을 겪으며 그 궤도를 완전히 이탈했다. 우아하게 시작하는 왈츠의 리듬은 곡이 전개될수록 점차 기괴하게 일그러지고, 끝내 폭력적인 불협화음 속에서 산산조각 나며 붕괴한다. 이는 전쟁의 광기와 폭력 앞에서 산산이 무너져 내린 유럽 문명에 대한 소리 없는 절규였다. 라벨은 포화 속에서 해체되어 가는 아름다웠던 시대의 종말을 이 곡을 통해 가장 서글프고도 강렬하게 증언했다.
[적국을 초월한 예술의 위대한 휴머니즘]
전쟁의 상흔은 그의 또 다른 걸작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Concerto pour la main gauche en ré majeur)'으로 이어졌다. 라벨은 1930년, 참전 중 오른팔을 잃은 적국 오스트리아의 상이군인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Paul Wittgenstein, 1887 – 1961)을 위해 이 곡을 작곡했다. 한때 최전선에서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군수품을 실어 날랐던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국경과 증오를 뛰어넘어 상처 입은 인간의 영혼을 예술로 위로하고자 했던 라벨의 숭고한 인류애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잿빛 참호를 공유한 전우를 향한 깊은 연민]
나 역시 어깨에 삼색기를 달고 프랑스군의 군복을 입었던 사람으로서, 라벨이 그 참혹한 전선에서 마주했을 서늘한 공포와 뼛속 시린 고독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무자비한 추위 속에서 한 인간이 겪어야 했던 처절한 무력감을 알기에, 그가 남긴 음악들을 들을 때면 피 묻은 참호의 기억이 환영처럼 되살아나 마음이 미어진다. 거대한 폭력 앞에서 산산조각 난 세상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끝까지 조국과 예술을 사랑했던 나의 작고 위대한 전우 라벨. 그의 상처 입은 영혼에 바치는 먹먹한 연민과 무한한 경의가 가슴 깊은 곳에서 뜨겁게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