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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현 Nov 25. 2024

출근길 단상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그곳은 햇빛이 잘 드는 곳이었어요.”


가연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 남자는 너무 어리버리하다.


“지금 여기가 아득히 멀리까지 모래 뿐인 사막인 건 아시죠?”


약간 짜증을 내며 남자를 돌아보다가 뜻밖의 모습에 말꼬리를 흐렸다. 남자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땅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못 볼걸 본 사람처럼 황급히 고개를 돌린 가연은 지팡이로 하릴없이 바닥을 쿡쿡 찌르며 딴청을 피웠다. 어머니나 아내를 여기, 어딘가에 묻었거나 어린 자식이라도 먼저 보냈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하지만 여긴 사막이 되기 전에 달동네의 뒷산이었는데……? 가연은 유난을 떠는 남자가 밉살맞아 일부러 들으라고 큰 소리로 비아냥 거렸다.


”개새끼라도 묻으셨나 보네. 세 시간 째 헤메다가 이제야 상봉하셨나. 그런데 이 곳 모래는 여태 헤맨 다른 곳의 모래랑 뭐가 다르길래 알아보셨나. 죽은 개랑 교신이라도 하시나봐요?“


말이 곱게 나오질 않았다. 사막을 안내해 달래서 별 일 아니라 생각하고 돈도 몇 푼 받지도 않고 덥석 받아들였는데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었다. 땅을 함부로 밟으면 안 된다고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나아가게 하질 않나 다 똑같아 보이는데 여기가 아니다, 저기도 아니다 해가며 가연을 세 시간 째 괴롭히질 않나 이젠 심지어 자해까지 하니 곱게 보이질 않았다. 자기 묫자리 보려고 15살 밖에 안 된 여자앨 사막 한 가운데까지 끌고 온 거라면 날 단단히 잘 못 본 거다.


”그만 일어나지 못 해요? 여기 하수도 터지고 똥독이 잔뜩 올랐던 땅인데 아무리 옛날 일이라고 해도 계속 그러고 있다간 똥독 올라 죽어요. 당신 죽을 자리 찾는 거면 여긴 아니지. 그리고……“


가연이 막 넋두리를 풀어내려는데 남자가 고개를 들고 모래와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징징거렸다.


“마루는 가족이었어요. 개새끼가 아니라.”


가연은 진짜로 여태 개 무덤을 찾은 걸 알고 나니 기가 막혔다.


“미친 거 아냐? 여기서 개 묻은 델 어떻게 찾아요?“


남자는 핸드폰을 들어보였다.


”2024년 지도로 돌려 놨어요. 그 당시 위성 사진을 보면 여기였어요.“


가연은 생각할수록 신경질이 났다.


”아니, 그런데 왜 땅도 제대로 못 밟게 했어요?“


남자는 딱한 표정으로 우물거렸다.


”사실 이제야 생각났거든요. 핸드폰 기능이 있다는 게.“


”헐……“


사방이 모래 뿐이었다. 그리고 여기엔 개 때문에 울고 있는 남자와 자신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미친 사람을 도발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가연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러면 이제 둘이 상봉했으니 기념 사진이라도 찍고 돌아갈까요?“


남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주섬주섬 일어나더니 가연에게 들고 있던 가방을 건넸다. 가연은 얼결에 받아들었다.


”여기까지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져가세요. 전부 돈이예요. 나에겐 이제 필요 없어요. 당신 말이 맞아요. 나는 내 묫자리를 찾아서 여기에 왔어요.“


초로의 남자는 갑자기 어린애가 되어 버린 듯 작고, 초라해 보였다. 자살 기도자라니…… 요즘 세상이 흉흉해서 이런 사람이 많다고는 들었는데 똥독 오른 자기 땅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연은 남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도 지구가 망한 후 오랫동안 혼자 있었던 걸까? 외로움에 지쳐 자살을 꿈꾸는 걸까? 가연은 남자에게 물었다.


“유일한 생존자였어요?”


“예. 혼자 지낸 세월을 가늠할 수도 없네요. 정부의 명령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 보급품을 받아 먹으며 땅을 살려 보려고 기를 썼어요. 그러다가 없는 사람처럼 되어 버렸어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요.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땅은 살아나지 않았잖아요.”


“아니요. 지하수가 터졌어요. 그리고 식물이 자라기 시작했어요. 제 땅은 살아난 거예요.”


가연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누구 염장을 지르나! 로또 맞으셨네! 그럼 이제 자생해야지 왜 정부에 기대요? 나처럼 완전히 주민등록 말소된 줄 알았네! 이 땅은 가망 없다고 정부 지원이 끊겼거든요! 그래서 앵벌이 하며 먹고 사느라 힘들어 죽겠구만.”


“이제 그 돈으로 편히 사세요.”


가연은 그제야 가방을 쳐다보았다. 열어보니 돈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이 돈이면 이제 똥독 오른 땅 버리고 떠날 수 있다. 신분증도 다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지녔지?


”이 돈은 다 어디서 난 거예요? 대박……!”


“정부에 땅을 팔았어요.”


가연은 이제야 남자가 진심이란 걸 깨달았다. 진짜 죽으러 왔구나.


“뭐야, 당신 진짜 죽으려구?”


남자는 털썩 주저 앉더니 허허 웃었다.


“이제 믿어주시는 건가요? 네, 살 이유가 없어서요.”


“아니, 대박 났는데 마을을 형성할 수도 있었잖아요. 정부에 파는 건 진짜 자살 시도라구요.”


“땅에서 지하수가 터지고 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었어요. 즐기면 된다? 누구랑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정부는 호시탐탐 내 땅을 노렸고 내가 만난 사람들은 다 비열했어요. 그 사람들은 내게 마을 이장 자리를 제시했지만 저는 왕이 되게 해준다고 해도 싫었어요. 그들과 공존하라니…… 그 야비한 놈들은 어찌나 몸을 고쳐댔는지 기계나 다름 없더라구요. 그런 기술과 문명을 독점하고 우리같은 서민들에겐 땅이나 일구게 하는 그들을 보자 허무해졌어요. 이 사람들에게 평생 노예처럼 시달리느니 죽는 게 낫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땅을 넘겼어요. 바로 내 주민등록을 말소하더라고요. 그래도 이 돈은 줬어요. 다시 시민이 되고 싶으면 돈 주고 사라면서요. 허허.”


“나쁜 새끼들!”


가연은 그들의 잔머리에 부아가 치밀었다.


“결국 쫓겨난 거네!”


남자는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당신 땅은 똥독이 올라서 다행인지도 몰라요. 내 강아지도 덕분에 찾아올 수 있었구……”


가연은 남자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설득조로 말했다.


“아저씨, 그래도 살아아죠. 나도 정부 지원 끊기고 한동안 지렁이 잡아먹고 살았다니까요?”


갑자기 남자의 표정이 달라졌다.


“지렁이가 나온다고요?”


가연은 뭔가 잘 못 말했나 싶어서 에둘러 말했다.


“아니, 그럼 땅에 두더지도 살고, 거미도 사는 거지, 지렁이만 살겠어요?”


“여긴 그냥 사막이잖아요!”


“음…… 이건 영업 기밀인데 조금 깊이 들어가면 동굴이 하나 있어요. 그 주변에 좀 먹을 게 있어요.”


“어떻게 정부에 안 뺏겼죠?”


가연은 너무 웃겨서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 이 아저씨 보게. 아저씨가 특이한 거예요. 여긴 똥독 올라서 다 포기한 땅이에요. 그래도 어릴 땐 보급품이라도 주더니 13살 되니까 딱 끊어지더라구요. 그리고 바로 주민등록을 말소시키더라구요. 가망 없는 땅이라구. 고아에게 정부에서 공인한 수명이 13세인 거 알아요? 아저씨는 대박 오래 산거예요. 나도 지렁이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어요. 찌라시 보니까 지원 수명 늘리려고 데모도 하고 그러나 본데 부모 없고 땅도 없는 애들에겐 쉽지 않을 거에요. 내가 듣기로는 13살 되면 잡아다가 장기나 팔 다리를 정부에서 부자들에게 판다는 소리도 있어요. 나는 똥독 오른 땅 덕에 살은 건지도 몰라요. 이런 나도 사는데 아저씨 너무 나약한 거 아니예요?”


“미친 세상……!”


“아저씨, 그래도 살아있는 한 살아야죠.”


“산다는 게 도대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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