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영미는 담배를 끌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피웠다. 저 노인네도 소싯적엔 담배 좀 피웠을 거라고 자위하면서. 혜인은 그런 영미를 힐끗 보고는 가던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영 속도가 나질 않는다. 그리고 애초에 영미가 담배를 피우는 쪽으로 가려고 했었기에 망설이게 되었다. 그쪽에 빛이 잘 들어서 울타리 너머로 늘어진 나뭇잎이 참 이뻤다. 그게 자꾸 눈에 들어와서 한 번 만져보고 싶었던 건데 설명할 기력도 없고, 아이가 알아들을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여기는 빛이 잘 들지 않는 골목이라 이내 작게 핀 빛이 사그라들 것을 알기에 혜인은 서운했다. 그런 혜인을 힐끔 보면서 영미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담배 냄새 난다고 꼬라보는 거야? 어르신 진짜 눈치보이게 하시네. 곧 죽을 양반들이 건강은 더 챙긴다니까……’
혜인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두 세걸음을 떼는 동안 영미는 담배를 다 피웠지만 빛은 이미 지나가고 없었다.
’찰나인데……‘
헤인은 여태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많이도 놓쳤으면서도 담담하게 살아왔으면서 빛 한 조각 잃은 것은 서러웠다. 어릴 땐, 이런 조각 빛이 비치면 엄마와 빛 잡기 놀이를 하며 곧잘 따라잡았는데 이제는 영영 놓치기만 한다. 인생은 왜 이렇게 허무한 걸까. 눈물이 그렁그렁 해진다. 영미는 담배를 바닥에 비벼끄고 언덕길을 무심하게 걸어내려간다. 혜인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 애가 가는 곳이 어디든 내가 못 도달할 곳이겠지. 이 걸음으로는 복지관 바자회를 가거나 교회 예배 시간 맞추기도 버거우니까. 예쁘게 생겼네. 꿈은 뭘까. 내 빛 한 조각 가져간 아이야. 내 영 속상하고, 맘이 아프지만 너 때문이 아니란다. 그저 내가 앞으로 놓칠 수 많은 것들이 겹쳐 보여서 그래. 빨리 달리고 싶고, 너한테 조금만 비켜달라고도 말하고 싶었는데 이제 몸이 말을 안 들어. 앞으로도 그렇겠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인생이 끝날까 하는 생각에 밤을 지새울 때도 많단다. 이제 죽는 것은 무섭지 않아. 그런데 늙어가는 일은 참 힘든 거야. 멀쩡하던 다리가 말을 안 들어서 지팡이 없인 못 걷는 것도 어릴 땐 상상도 못 했지. 내 것을 하나씩 하나씩 잃어가는 게 늙는 거란다. 얼마나 많은 상실감을 겪어야 삶을 놓는 걸까. 얘야, 잘가라. 나는 네가 정말 부럽구나.
혜인은 천천히 발길을 돌려 영미가 서 있던 자리로 갔다. 빛을 잃은 나뭇잎은 평범해 보였다. 이 동네에 다시 침묵이 깃들었다. 부산하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그 이쁜 아이도 빛이었구나 싶었다. 빛이 빛에 머문 걸 보다니 어쩌면 나뭇잎을 만진 것보다 더 횡재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본 게 얼마만인지……
헤인이 사는 지하 단칸방은 지난 여름에 수해를 입지 않았다. 비가 너무 많이 퍼부어서 많은 지하층들이 물에 잠기고, 수해민들이 발생했는데 거의 혜인같은 노인들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비탈지고 지대가 높아서 빗물이 흘러 내려가 버렸다. 평소엔 길이 너무 험해서 잘 나가지도 못하지만 지난 여름엔 이 집이 참 고마웠다.
“아이고……”
계단을 걸어내려가며 무릎의 통증을 참아보려 애쓴다. 이 십년도 더 되었다. 어느날부턴가 걷기만 하면 무릎이 묵직하게 아팠다. 오래 써서 무릎 연골이 닳은 거라고 병원 의사가 하는 말을 듣고 나서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갑자기 어릴 때 쓰던 몽당 연필이 생각났다. 의사는 내가 갑자기 웃자 의아해 했던 것 같다. 나는 그 때만 해도 사람들 앞에선 부끄러워서 말을 잘 못 했는데 그저 고맙습니다 라고만 말하고 나온 게 이제는 아쉽다. 몽당 연필 얘길 해주면 의사가 같이 웃었을라나? 여덟 계단을 간신히 내려와서 현관 앞까지 오고 나니 숨도 차고, 어지러웠다. 오늘 외출은 이걸로 끝이구나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고……
끼이익.
옆 집 문이 열려서 쳐다보니 그 집 남자애가 나온다. 오십이나 되었을까 싶은 앤데 무뚝뚝하고, 좀 이상하다. 혼자 중얼중얼 거리고 사람을 곁눈질로 본다. 그래도 정신이 맑은 날엔 인사 정도는 한다.
”안녕하세요.“
응. 오늘은 좋은 날이구나. 나는 눈짓을 하고 집으로 들어간다. 불을 다 끄고 나갔더니 컴컴하다. 오후 세 시지만 여기엔 빛이 안 들어서 종일 불을 켜고 있어야 한다. 방엔 아침에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가 그대로다. 좀 누워야 겠다는 생각으로 이불에 들어갔다. 몸이 얼음장 같았는데 이불 속은 그래도 따뜻하네. 아까 그 남자앤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식은 드디어 임무를 완수했다는 생각에 온 몸이 떨려왔다. 그 건물엔 부정한 것들이 너무 많이 살았다. 이층에 사는 주인 내외는 사실 지옥에서 온 두더지고, 옆 집 할머니는 그들의 지령을 받고 자신을 염탐한다. 가끔 미주칠때면 힐끔힐끔 쳐다보며 내게 눈짓으로 경고하곤 한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
하지만 이제 다 끝났다. 곧 불이 밖으로 번질 것이다. 그리고 화염은 지구 종말을 꿈꾸는 일당을 시체도 안 남기고 소각할 테고 나는 지구를 구하겠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그러니 날 잡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순교자가 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영식아, 그건 아니야‘
”조용히 해, 마음의 소리! 넌 늘 내가 하는 일마다 반대하지. 하지만 넌 항상 틀렸어. 네가 옳다면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지? 나는 평생 참고 일만 했는데 지석이는 내 돈을 들고 날랐고, 아내는 내가 빈털털이가 되자마자 이혼을 요구했어. 그리고 매달 양육비로 오백만원씩 보내래. 내가 무슨 수로 그 돈을 마련해? 지옥에서 저렇게 감시하고 있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막노동이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내가 무거운 걸 들 때마다 니가 계속 내 몸에서 힘이 빠지게 했잖아. 너도 결국 그들과 한패야!“
’할머니를 구해야해.’
”미친 소리! 그건 할머니가 아니라 지옥에서 온 두더지에게 매수된 광신도야. 악마를 섬긴다구! 그렇게 사랑하는 악마에게나 가라지!“
혜인은 매캐한 연기와 냄새에 얕은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 보니 어디선가 연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혜인은 웃었다. 꿈이었구나. 내 인생은 한낱 꿈이구나. 모든 순간에 이 순간만 꿈꾸며 덧 없게 살았네. 나는 어릴 때부터 평생 너무 외로워서 인생이 추웠다. 그래서 죽을 때라도 외롭게 죽기 보다는 뜨거워 못 견뎌하며 죽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내가 이걸 꿈꾸어서 이루어졌나보다.. 나는 왜 그토록 미련한 꿈만 꾸었을까. 그나저나 옆집 남자애를 어쩌지? 정신도 온전치 않은데……
‘영식아! 지구는 안 구해도 돼! 세상은 지석이 같은 사람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데야. 하지만 저 할머니는 평생 고생만 하다가 악마에게 빠진 의지할 게 없는 가여운 사람이라구.‘
“나는 이런 운명을 타고났어. 이 일을 안 하면 니가 날 죽일 거잖아.”
’그토록 니 목숨이 귀중하니? 넌 평생 너밖에 몰랐어. 지석이도, 니 부인도 일이 좋다고 일만 하는 널 사랑해줄 줄 알았어?’
”난 그들을 위해서 일했어!“
‘그래서 그들이 다 가져갔잖아. 그들은 누릴만큼 누렸어. 하지만 저 할머니는 아니야. 니가 구해야해, 목숨걸고.’
영식은 화가 치밀고 눈물이 북받쳐 말을 더듬었다.
”내 새끼는! 그리고 그 나쁜 년이 그래도 잘 살아야 애들을 키우지. 난 지구를 구해야해!“
영식은 큰 소리로 말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슬슬 피해갈 뿐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네 아이들이 이걸 원할까?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서 할머니를 죽인 널 존경할까? 동훈이가 늘 말했잖아. 아빠처럼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멋진 남자가 되겠다고. 넌 지금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거지. 하지만 네가 동훈이에게 바라는 모습이 이거니? 동훈이는 목사가 꿈인 애야.’
동훈이는 막내 아들이다. 삼형제 중에서 가장 정이 많고 자신을 좋아했다. 영식도 동훈이가 제일 애틋했다. 그래서 가족과 연을 끊고 자신이 사는 곳도 말하지 않았다. 동훈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회사를 팔고 빚을 갚은 후 남은 돈을 전부 주었다.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어서 생명 보험도 몇 개 들어놨다.
영식은 종교가 없다. 하지만 동훈이는 매일 자신을 전도하려고 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기를 지고 돌아가셨고 아버지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영식은 일이 너무 바빠서 교회에 갈 순 없지만 동훈이가 목사가 되면 꼭 나간다고 약속했었다. 영식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를 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구를 구히면 아들은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죽어서 만나면 자신을 용서할 거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작고, 천하고, 병들고, 죄를 진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진 분이야. 예수님이라면 할머니를 구했을 거야,
“아니야!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했잖아!“
‘동훈이라면, 동훈이라면 어땠을까?‘
동훈이라면 할머니를 구했겠지…… 사실 할머니는 너무나 불쌍한 사람이다. 하지만 늙고 아무도 찾지 않는 할머니보다는 동훈이를 살리고 싶었다.
“아들은 목사가 꿈이야. 그래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학교 진도 따라가려고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데!“
‘할머니가 너의 미래 모습 깉아서 미운 거지? 꼭 너같아서 싫은 거지?’
영식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징그러운 마음 새끼!
‘동훈이는 그런 너도 사랑할 거야. 하지만 할머니가 죽으면 용서받을 수 없을지도 몰라. 그 약한 앨 더 이상 상처입히지 말자.‘
영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훈이는 내가 살아야할 유일한 이유다. 그 앨 아프게 할 순 없었다.
”네 말이 맞아!“
영식은 일어서서 집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렸다. 집에선 연기 냄새가 나고 사람들 몇몇이 힐끔거리고 있었다. 더 생각할 새가 없었다. 영식은 뛰어내려가서 할머니네 허름한 나무문을 비틀어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직 연기가 차진 않았지만 냄새가 제법 강했다. 할머니는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영식은 할머니를 들쳐엎고 뛰었다. 그리고 집을 나서자마자 연기가 강해졌고 사람들이 소방차를 부르라고 소리치는 게 들렸다. 영식은 사람들을 피해서 비탈길을 내려갔다.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했다. 할머니는 영식의 등에서 끙끙거렸다. 뭔가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영식은 걸음을 늦추고 할머니에게 조금만 힘내라고 말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나는 왜 나같은 처지의 할머니를 미워했을까. 불쌍한 사람. 돌아가시면 안 되는데. 영식이 다시 달리려고 하는데 할머니의 손이 영식의 얼굴을 쓸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 울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