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기에 벌겋게 달구어진 아이들의 얼굴이 귀신처럼 보였다. 목소리가 땀에 절은 몸을 휘감고, 달라붙는 것 같아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들을 향해서 그만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것들 중에서 손에 잡히는 것을 되는대로 집어들었는데 삽이었다. 미친! 살인자가 되기 직전이었다. 내 손에 들린 삽을 보자 아이들은 주춤거렸고, 웅성거렸지만 더 멀어지지는 않았다. 한 애가 ‘저 미친년이 삽을 들었다!’라고 하니까 아이들이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분위기가 다시 고조되었다. 나도 모르게 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경찰서 한 번 가보고, 내 인생 쫑내자는 마음으로 삽을 들어올리는데, 누군가 내 손을 꾹 눌렀다.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니 모르는 어른 남자였다. 큰 키에, 대충 올려 묶은 만두 머리를 하고 있는 부처님같이 생긴 남자는 흰티에 헐렁한 마바지를 입고 있어서 어딘가 사이비 절에서 막 출가한 사람처럼 보였다. 선생님인 줄 알고 주눅 들었다가 만만해보이는 남자의 서글서글한 얼굴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되어 “너 뭐야?” 하고 버럭 소릴 지르고는, 아이들 보란듯이 발버둥쳤는데 다행히 남자는 힘이 쎘다. 아이들은 어른이 끼어들어서 흥이 식었는지 슬슬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살인자가 될 뻔한 직후라 쉽게 긴장이 풀리지 않아서 왁왁 소리를 질렀다.
“씨발, 나 오늘 복수하고 인생 쫑내려는데 니가 왠 참견이야.”
남자는 힘이 빠진 날 놓아주고는 말했다.
“안심해. 다 갔어. 괜찮아, 괜찮아.”
남자는 떨리는 내 어깨를 안심하란듯이 토닥여주었다. 내 허세와 두려움, 못난 아집까지 모두 다 이해한다는 듯한 목소리였고, 그 목소리에 긴장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나는 엉엉 울었다. 모두 가고 나니, 내 일 따위는 아랑곳 않는 듯이 새파란 하늘 아래에 혼자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서 있는 내가 너무 못나 보이고, 손에 든 삽은 너무 무겁고, 낯선 남자는 너무 친절했다.
“씨발,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어. 그냥 난 난데 자꾸 애들이 뭐라 그래. 나만 놀려. 내 인생 왜 이러지? 왜 나만 이러지? 아, 씨발씨발.”
남자는 내 하소연을 전부 들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머쓱해져서 어색하게 중얼중얼거릴 때가 되어서야 자기 소개를 했다.
“나, 저기 서점 주인.”
“뭐?”
남자가 가리키는 방향은 학교 맞은편 문방구 옆에 있는 가게였다. 학교 다니면서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 서점이었다.
“오빠 이름은 이현우.”
“뭐? 아, 어디가! 아저씨잖아! 어디 초등학생을 우롱해?”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울던 끝인 것도 잊고 소리를 빽 질렀다. 아저씨는 씩 웃더니 나에게 다시 한번 서점을 가리켰다.
“저기가 내 서점이야. 애들이 놀리면 겁먹지 말고, 삽 들지 말고 저기로 와.”
“내가 왜!”
“아이들에게 말해. 네 삼촌이라고. 아저씨가 지켜줄 테니까 혼자 싸우지 말고, 알았지?”
나는 삐딱하게 서서 대답은 하지 않고 아저씨를 빤히 쳐다만 봤다. 내가 살인을 면하게 해줬으니 고마워하는 게 맞겠지만 고맙다는 말은 죽어도 나오질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손을 홱 놓고 냅다 튀어 버렸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서점 주변을 어슬렁거리게 되었다. 아저씨와 마주칠까봐 가까이 가진 않았지만 충분히 관찰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내가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아저씨는 곧잘 나를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나는 아저씨의 인사를 모른 척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버리곤 했는데, 그래도 번번이 아저씨는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경계심 많은 길고양이처럼 천천히 다가갔고, 아저씨는 그런 고양이들에게 익숙하다는 듯이 나에게 잘 대해 주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엔 아저씨가 인사를 하면 나도 손 정도는 흔들어 주게 되었다.
가을이 깊어갈 때쯤, 우린 허물없이 이야기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아저씨……”
“응?”
“그 쓰레빠. 우리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팔천원에 파는 거, 삼천원 짜리에 토끼 지비츠 세 개 단 거…. 맞지?”
“제일 비싼거야.”
“씨발. 이러니까 아저씨 가오가 죽지. 학교 애들이 웃는단 말이야.”
아저씨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날 바라봤다.
“꼬맹아. 아저씨 발 사이즈가 280이야. 문구점에 280 사이즈는 이거 하나 밖에 없대.”
“아, 씨발. 그러니까 왜 문구점에서 사냐고.”
아저씨는 다른 어른들과 달랐다. 학교 선생님들은 내가 왕따를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못 본척 하는 게 빤히 눈에 보였다. 그런데 아저씨는 애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어김없이 나를 찾아내곤 했다. 아저씨가 오기 전엔 사소한 마찰만 있어도 미친개마냥 굴어서 일을 크게 만들곤 했는데, 점점 그런 날들이 줄어들었고, 아저씨 덕분인지 아이들도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가 아이들이 시비를 걸기도 했지만 나도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애들도 점점 흥미를 잃었다.
학기가 끝날 때쯤엔 나도 여느 아이들처럼 조용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자존심 때문에 여태 애들과 싸웠던 것뿐이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죽더라도 말이다.
어느 날, 아저씨가 나에게 물었다.
“왜 싸웠니?”
“꼰대네. 결국 그게 궁금한 거지.”
내가 빈정거리자 아저씨는 말하기 싫은 기분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날 더 이해하고 싶고, 도와주고 싶다며 그 후로도 몇 번 더 물어봤다. 결국 어느 날, 아저씨에겐 말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책을 못 읽어.”
아저씨는 내가 몇 학년이냐고 물었고, 나는 시큰둥하게 6학년이라고 말해주었다.
“통째로 외울 순 있는데, 교과서에 쓰여있지 않은 건 잘 이해가 안돼. 1+1이 2라고 선생님이 말하시길래 어떻게 2냐고 그랬더니 사과가 어쩌고 하시더니 내가 결국 이해를 못 하니까 그냥 외우래. 그래서 외웠어. 그런데 2435+2148가 뭔지는 교과서에 나와있지 않아서 몰라.”
아저씨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머리가 굉장히 좋구나!”
“미친! 나 이해력 딸린다니까?”
“그건 생각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런 것 뿐이야. 너는 규칙에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몰라. 너무 많아서 일일이 신경을 쓸 수가 없어서 관뒀어.”
“네가 생각이 많아서 그래. 너는 책을 못 읽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이 생각해서 그런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걸 하나 놓쳤어.”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봤다.
“뭔데?”
“규칙은 사람들 간의 약속이야. 이건 앞으로 이렇게만 사용하겠다는 약속같은 거지. 1+1로 돌아가보자. 너는 그게 왜 항상 답이 2 뿐인지 이해가 안 되는 거지.”
“맞아! 물방울은 두개가 합쳐지면 여전히 1이잖아. 그리고 여자와 남자가 애를 낳으면 세 쌍동이를 낳을 수도 있는 거 아냐?”
“네 말이 맞아. 넌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 하지만 +는 이미 하나의 정의를 가지고 있어. “
“너무 억지스러운데?”
“그걸 사회적 약속이라고 하는 거야.”
나는 아저씨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엄마가 내 이름을 연희라도 지었으니까 모두 나를 연희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 날 이후로 나는 세상엔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는 뭐든지 스스로 생각해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미 사람들이 공유해온 생각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무엇보다도 달라진 것은 그날 이후로 아저씨가 나에게 책을 읽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아저씨는 나에게 많은 책들을 소개해 주었고, 읽기 힘들어하는 내가 적응하고, 이해할 때까지 함께 읽어주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와 단어를 연결하기 시작했고 책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저씨는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엄마”
“왜?”
“나 커서 책방 아저씨하고 결혼하려고.”
“……”
“안돼?”
엄마는 옥수수를 손가락으로 한알한알 떼며 무심하게 말했다.
“요즘 서점 전망 없어.”
“나 풀죽만 먹고 살 거야.”
“미친년.”
엄마는 내 이마를 툭 치더니 말했다.
“니가 능력 있는 여자가 되서 데려와.”
“헐. 그런 방법이?”
다음 날, 나는 하교 하자마자 아저씨에게 달려갔다. 한 겨울 바람에 볼이 터서 벌개지고, 코끝도 빨갛고, 북극곰마냥 옷을 잔뜩 껴입었지만 오늘 나는 예뻐야 했다. 그렇게 정의를 내리고 아저씨에게 갔다.
“아저씨”
“응?”
“너 결혼했냐?”
“누가 나랑?”
“하지마”
“뭐? 왜? 나 운명적인 사랑을 하는 게 꿈인데.”
“씨발, 그 사랑 나랑 오늘부터 하자.”
아저씨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렇게 긴장되고, 무서울 줄 몰랐다. 나는 아저씨가 웃음을 터뜨릴까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내 손을 잡고는 “춥지?”이러며 무심하게 말했다.
“너 크면 나 할아버지 돼.”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은 눈에 힘을 꽉 주고 말했다.
“미친! 그러니까 내가 널 데려가겠다고. 너 안 그러면 그 운명적인 사랑도 못 해보고 죽을 거 아냐? 나 아이면 누가 널 사랑하겠냐? 그런데…..”
나는 망설이다가 물었다.
“아저씨 너 몇 살이냐?”
아저씨는 이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헤헤하고 웃었다. 우리는 한참을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나는 내 고백이 실패한 것을 알았다. 오늘 나는 최고로 예쁘다고 정의를 내렸는데도 아저씨가 날 사랑하기 위해서는 다른 약속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스무살이 넘어야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규칙이지만 규칙은 규칙이다.
“아저씨.”
"응?"
“너 내가 어려서 그래? 그럼 내가 스무살 넘으면 너랑 사랑하는 걸로 하자!”
아저씨는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미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저씨를 웃게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첫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