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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현 Nov 20. 2024

출근길 단상

아버지와 연쇄살인마

“살려주세요”


현주는 이빨이 딱딱 부딪힐 정도로 몸이 떨렸지만 아직 정신을 잃진 않았다. 잇 사이로 새어나오는 목소리가 남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남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경멸하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볼 뿐이다. 저 눈은 언젠가 본 적이 있다. 존재 자체를 움츠러들게 하는 차가운 거부의 눈빛.


“당신, 의사와 닮았네요.”


남자가 멈칫한다. 현주는 그 순간 남자와 감정이 통할 수 있음을 직감했다.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지금 자신의 말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주는 살고 싶었다. 너무나도 살아야 했다. 남자에게 내 감정이 전해져야 한다.


“저희 아버지가 의사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장암 4기예요. 제가 아버지는 사실 수 있을 거라고 말했을 때, 꼭 그런 표정을 지으셨어요. 맞아요. 내가 멍청했어요. 아버지를 살릴 순 없었어요. 하지만 혼자 외로이 돌아가시게 할 순 없어요. 저는 돌아가야 해요.”


남자의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손 발을 묶은 상태에서 현주를 범하던 남자지만 일말의 감정을 찾았다. 남자가 입을 연다.


“당신 이름은……?”


“현주예요. 임현주.”


현주는 다시 남자의 기분을 거스를까봐 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남자의 표정이 변한 것을 눈치챘다.


“나는 기회만 된다면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었지. 한 땐. ”


현주는 입을 열려다가 남자가 계속 말을 할 것 같아서 가만히 기다렸다.


“하지만 인간은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어. 조그만 자기 고통에 휩싸여 자기 주변을 태워버리고도 모자라 자기 자식을 희생 제물로 바치지. 대신 고통받게 하는 거야. 죽을 때까지 때리고, 쫓아내고, 제발 받아달라고 매달리면 내 똥구멍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어. 나는 세상을 정화하는 산제물이었어. 그리고 이제서야 그게 세상의 이치라는 걸 깨달았지. 제물을 바치는 거야.”


현주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린 나는 소리쳤어. 아파요. 살려주세요. 죽을 것 같아요. 아버지는 더 세게 밀어넣으며 말하셨지. 이 창녀야. 좀 더 소리지르렴. 교태를 부리라구.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창녀가 아니라며 소리를 질렀어. 아버지는 태어난 운명을 거스를 순 없는 거라면서 낮에 자기를 무시한 시팔새끼가 사장으로 태어나고 자긴 이 모양으로 태어난 건 불합리하다며 울었어. 그리고 날 꼭 끌어안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 내 껄 다정하게 빨아줄래? 난 너 밖에 없어. 그리고 또 날 강간했지. 어머니는 약한 사람이었어. 미쳐 버렸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어. 네 아버지는 신이다. 그는 전능하다. 그에게 복종해라. 그러면서도 그런 날은 꼭 내 탓인 양 밥을 굶기고 장농 속에 가둬두었지. 나는 이게 더 무서웠어. 하지만 차차 시간이 흐르니 그들은 늙고, 나는 자라더라구. 두 노인네는 내 눈치만 보고 살있어. 하지만 나는 그들을 잘 대접했어. 날 세상에 낳아주신 분이잖아. 그래서 한 번도 때린 적이 없었어. 그런데 어느날 약을 먹고 둘 다 죽어버렸더라고. 난 혼자가 되었어. 그리고 사람은 혼자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정상적인 사랑을 할 수가 없더라고. 여자가 공포에 질릴 때 내는 신음소리가 좋아. 그래야 사정을 해. 나는 혼자 있기 싫은 날이면 밖으로 나왔지. 사실 여자들을 살려둘 수도 있었어. 하지만 진정한 사랑이 아니잖아. 살려두면 그들은 우리 어머니처럼 미쳐버릴텐데 나는 세상에 불행의 씨앗을 남겨둘 사람은 아니야. 우리 아버지처럼은 되기 싫었어.“


“만약,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현주는 자기도 모르게 그가 측은해서 당신이 불쌍하다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에 눈을 감아 버렸다. 눈물이 흘러 나왔다. 남자가 물었다.


“왜 울지?”


“당신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살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왜 나만은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불행이 당신을 피해가지 않았잖아요. 어린 애가 무슨 죄가 있었겠어요. 불행을 막을 힘이 없었을 뿐이예요. 그렇듯이 불가항력적인 삶의 교란에서 누군가는 당신을 피했고 나는 당신을 만났을 뿐이예요. 어린 당신이 그랬듯이요.“


현주는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서 흐느끼며 말했다.


”하지만 저희 아버지는 그렇게 혼자 돌아가셔도 될 분이 아니에요. 저는 그 집에 버려진 애였어요. 결혼도 안 하시고 저 하나만 극진히 키우셨어요. 저는 죽어도 어쩔 수 없지만 아버지를 버리고 가는 것 같아서 힘들어요. 지금도 절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저녁은 누가 챙겨드리죠?“


”재미있는 말을 하네. 내가 불행을 피해가지 못 했다고?  당신은 그래서 내가 불쌍한 거야?“


”네. 당신이 너무너무 가여워요.“


”내 사랑. 너는 착한 사람이구나.“


남자의 손 끝이 현주의 팬티에 닿아 현주는 파르르 떨었다. 하지만 남자는 현주의 옷을 입혀주고, 손과 발의 노끈을 풀어주었다.


”가.“


”네?“


”운명을 거슬러 네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 그리고 꼭 안아드려. 착한 사람.“


현주는 지금 뿐이란 생각에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주저 앉아서 흐느끼는데 남자가 말했다.


”울지마. 넌 잘해냈어. 나는 결코 널 죽이지 않을 거야. 사랑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나같은 인간이 느끼기엔 사치스러운 감정이란 거 알아. 그러니 천사같은 네가 기적을 일으킨 거야. 내 이름은 이현우야. 경찰이 내 인상착의를 물으면 왼쪽 눈 옆에 담배로 지진 화상 자국이 있다고 말해. 난 이제 지쳤어……“



현주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한 번도 사랑받아본 적 없는 사람. 본능적으로 안아주고 싶었지만 왠지 동정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남자는 현주를 마주바라보다 씩 웃었다. 그리고 현주를 두고 갔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바라듯이, 그렇게.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불운이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라고.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이었다. 현주는 갑자기 아버지가 떠오르니 힘이 솟았다. 몸을 일으켜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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