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느 인생 05화

슬픔의 종말

소설

by 최수현

어릴 때부터 나는 내가 오래 살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럴 섹스와 애널 섹스처럼 불순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런 단어일 뿐이었다. 죽고 싶다는 말은 자주 했지만 사실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에게 삶은 말도 못하게 지루한 것이긴 했다. 끔찍하게 바보 같은 가족과 미련한 친구들이 내가 갖고 있는 전부였고, 일찌감치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길 포기했던 나는 스무살이 넘어서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목적 없이 살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밑바닥을 전전하는 가족들, 가끔 전해오는 소식이라고는 A학점과 F학점 사이의 고만고만한 이야기가 다인 친구들은 전혀 동기 부여가 되질 않고, TV나 영화, 라디오에 등장하는 잘난 사람들도 공황 장애니, 자살이니 하며 삶에 적응하는 게 오히려 비주류같이 느껴지게 만드니 나로선 별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쨌든, 죽는다는 것은 내가 목가적인 삶을 살거라는 말 만큼이나 허무맹랑하나 것이었다. 꿈이나 직업같은 걸 가지지 못한 나는 다행히 예쁘장한 외모와 남자들이 쉽게 말을 걸 수 있는 분위기, 같이 놀면 지루하진 않은 성격을 갖고 있어서 일찌감치 연애를 시작했고, 남자를 잘 만나서 적당히 놀고 먹는 삶이 내 인생일 거라는 제법 타당한 예감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일찍 죽을 거라는 예감 만큼이나 개똥같은 것이었다.

연애는 16살에 시작했지만, 첫 섹스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옆 집 남자애와 했다. 옆 집 남자애인 대구는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지만 남친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엔 둘이서 하기로 약속했었다. 나는 창피 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실수와 거절, 그리고 서툰 것은 대구같은 하찮은 멍청이에게나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대구 생각도 별 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이 모두 맞벌이를 해서 나나 대구나 항상 빈집을 지키는 똥개 신세였다. 초등학교 삼학년 방학이었던 것 같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우리는 긴긴 방학 내내 남아도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별 짓을 다했다. 놀이터에서 땅을 파면 동전이 나온다고 손톱이 빠지도록 땅을 팠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아무도 없는 학교에 숨어 들어갔다 오곤 했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장난감을 있는대로 어지르면서 놀았다. 그리고 놀다놀다 지치면 방 안에 벌렁 드러누워서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 대구는 여자 이야길 좋아했다.

“가슴 큰 여자가 좋아.”

“미친! 초등학생이 가슴이 어딨냐?”

“승연이 누나는 벌써 브래지어 할껄?”

“아, 그 아줌마!”

승연이 언니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6학년 언니였다. 언니네 부모님은 아파트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상가에서 비디오 가게를 하는데, 언니와 두 살 어린 남동생인 승혁이를 방학 내내 가게에 데리고 다녔다. 성질이 미친 개같은 승혁이는 ADHD가 분명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말썽을 일으켰다. 그래서 승연이 언니네 부모님은 학교에도 자주 불려가고, 학원에서 더 이상 아이를 보내지 말라는 통보까지 받았다. 결국 방학내내 둘 다 데리고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승연이 언니는 별 문제는 없는데, 승혁이 보모로 끌려다니는 신세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언제나 읽을 책들을 손가방에 넣고 부모님을 졸졸 따라다녔다. 승혁이와 달리 순하고 착한 언니는 우리를 보면 꼭 인사를 해주었다. 언니는 키가 엄청 컸고, 내가 보기에도 가슴이 엄청 컸다. 대구는 언제나 승연이 언니와 같이 놀 수 있기만을 고대했는데, 그럴 기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언니가 중학생이 되기 전에 온 가족이 갑자기 이민을 가 버렸다. 우리가 나중에 같이 섹스를 하기로 약속한 것은 언니가 동네를 떠나는 날이었다. 대구는 베란다 창틀을 붙들고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도 약간 조증이었던 것 같다.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견딜수가 없었다. 피차 잘 아는 사이에 너 쟤 좋아했냐? 같은 시덥잖은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다. 그저 난 한숨 한 번 크게 쉬고 대구에게 말했다.

“대구야. 내 가슴 만져도 돼.”

그리고 대구의 손을 잡고 내 가슴에 척 올려 주었다. 대구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승연이 누나, 이민 가서 남친 사귈까?”


나는 별 감흥 없는 대구 손을 내 가슴에서 털어내고 창틀 사이로 승연이 언니네 가족이 탄 자동차가 떠나가는 걸 지켜보았다.

“어. 나라면 이민 가자마자 사귈껄? 외롭잖아.”

“여자들은 다 그러냐? 하……:”

“미친놈. 너 승연이 언니랑 사귄 것도 아니잖아.”

대구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고백할 생각이었다고 말하며 계속 징징거렸다. 나는 좀 짜증이 났고, 얼른 우울한 분위기를 털어내고 놀고 싶었다. 그래서 또 이야기를 지어내고 말았다. 참, 나는 되는 대로 둘러대기, 이야기 지어내기, 거짓말 하기가 특기다.

“승연이 언니, 수녀가 될 거랬어.”

나는 이렇게 되는대로 내뱉은 내 주둥이를 꼬매버리고 싶었다. 대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날 쳐다보았다. 대구는 순진해서 내가 하는 말은 다 믿는다. 그러니까 대충 잘 둘러대기만 하면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유난히 독실한 기독교도인 승연이 언니네 가족은 밥 먹을 때도 다같이 기도를 한다. 이 때만해도 기독교와 천주교 차이를 몰랐던 나는 나름 신빙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뭐? 남친 사귄다며!”

“야. 수녀 되기 전에 경험은 있어야 하잖아. 그러니까 연애는 하겠지! 하지만 그건 안할거야. 교회 다니잖아.”

“뭐….”

“아, 섹스!!”

한 동안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나도 내가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밀어붙이는 수 밖엔 없었다.

“왜 승연이 언니같은 부류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 아니면 그런 거 안하겠지!! 하나님만 평생 사랑할 건데, 그런 걸 하겠냐? 그리고 섹스같은 건, 정말 사랑하는 사람 만나기 전에 많이 연습해봐야 하는 건데, 승연이 언니가 어디 그런 부류냐고~”

대구는 딱하다는 듯이 내 머릴 토닥이며 중얼거렸다.

“미친년아. 승연이 누나가 나같은 거랑 섹스를 하겠냐. 난 승연이 누나 가슴 한 번 만져보고 싶은 게 다였어.”

“미친새끼!”:

“미친년!”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실실거리며 웃다가 바닥을 뒹굴며 집이 떠나가라 웃어댔다. 그리고 나중에 성인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 말고 우리 둘이 첫 섹스를 해서 서로의 창피함을 감춰주자고 얼결에 약속도 해버렸다. 정말 그렇게 되어도 상관 없는 기분이었고, 나도 말하고 보니 진짜로 첫 섹스는 대구랑 해야할 것만 같았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랑 말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여친 한 번 못 사귀어 본 대구와 연애는 숱하게 했지만 아직까진 경험이 없는 나는 대구의 방에서 약속을 실행해 버렸다. 이번에 사귄 남친과는 아무래도 결혼을 해야할 것 같다는 이야길 별 생각 없이 평소처럼 늘어놓고 있는데, 대구가 곧 군대에 갈거라고 말을 꺼냈고, 나는 갑자기 목에 뭔가 걸린 것처럼 말문이 막혀 버렸다.

“나 대학 떨어졌잖아. 아버지가 군대부터 다녀오래,.:”

“……”

“윤아야. 그래서 나 할 말이 있어.”

“……”

“우리 어릴 때 약속한 거, 지금 하지 않을래? 나 군대 간 사이에 너 시집가고 싶어질 수도 있잖아. 2년은 길어.”

간신히 목소릴 되찾은 나는,

“야, 목소리 깔지마. 되게 생각해주는 척! 너 그냥 나랑 하고 싶은 거지?”

이라고 말했는데, 평소처럼 주눅들지 않고 대구가 받아쳤다.

“어. 첫 섹스는 꼭 너랑 하고 싶어.”

대구와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컸지만, 여중, 여고를 나온 나와 남중, 남고를 나온 대구가 자라면서 공유한 것은 등교밖에 없었다. 버스타는 곳 까지만 이었지만 우리 사이에 불문율같은 거였다. 그 외엔 가끔 주말이나 새벽에 놀이터에서 마주치면 이야길하는 정도였다. 우정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게 서로의 학교 생활도, 친구도 전혀 공유하지 않았다. 지금도 슈퍼마켓을 가다가 마주친 이웃 사촌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하지만 나에겐 개구리같은 직감이 있었다. 대구에겐 꼭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대구의 방으로 따라갔다. 특별히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아니었고, 첫 섹스는 그렇게 부끄럽지도 않았다. 다만,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그 후로 다시는 대구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엔 그저 군대에 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어느날 갑자기 대구네 가족들이 도망치듯 이사를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대구 기억이 선명해지고, 내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중요한 조각을 잃어버린 것처럼 가슴이 시렸다. 하지만 대구를 찾을 생각은 아니었다. 대구가 날 찾지 않는다는 게 나에겐 사실 좀 충격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내가 일하는 편의점 신문 한 귀퉁이에서 대구를 다시 보게 되었다.

단골 손님인 택시 기사 아저씨는 평소처럼 라일락 두 갑과 신문을 종류별로 구입했다. 언제나처럼 불퉁한 태도였고, 돈만 툭 던지고 나가려는 걸 억지로 웃으며 살뜰하게 배웅하는데, 갑자기 날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이 동네에 김대구란 사람 안 살았어? 신문에 크게 났드만! 내가 범죄물 오타쿠라서 사건 현장 근처에서 택시를 많이 몰거든? 그래서 이 소문, 저 소문 주워듣다보니 알게 된 건데, 이번에 왕따 가해자 폭행범이 이 동네 사람이더라구. 아주 작정하고 복수한 모양이야. 그래서 정상참작을 하고도 꽤 중형을 받았던데.”

고등학교 시절 내내 왕따를 당한 김모씨가 군대를 제대한 후에 자길 괴롭혔던 아이들을 하나 하나 찾아가서 중상을 입히고, 10년 형을 받았다는 신문 기사는 한참 범죄자의 인권이니, 사생활에 대한 논란이 많을 때 벌어진 사건이어서 철저하게 익명성이 보장되었다. 그리고 학교 폭력이나 자살과 같은 이슈와 모방 범죄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을 때여서 더더욱 이런 일들은 축소되고, 감춰지는 분위기였다. 여기 저기서 수 많은 왕따들이 궐기하고 복수하는 시기였다. 게다가 아이돌 왕따 사건이 먼저 부각되며 일어난 여러 모방 범죄들 중의 하나로 여겨져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긴 커녕 조각 기사로 짤막하게 등장했을 뿐이다. 나도 이 기사를 읽었다. 부천 사는 22세 김모씨.

“잘 몰라요.”

무뚝뚝한 내 말에 흥이 떨어진 아저씨는 두꺼비같이 큰 눈을 신문에 쳐 박고, 문을 나서기도 전에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잇새로 수고하슈 라고 들릴락말락하게 인사를 건넸다. 나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신문들에 코를 박았다. 아무리 뒤져도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것 뿐이었다. 부천 사는 22세 김모씨. 그런데 얼마 후에 부천 사는 22세 김모씨가 구속되기 전 자살했다는 소식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나는 대구가 절대로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신문들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떤 증거를 찾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증거를 찾지 않으려고 신문을 뒤지고 또 뒤졌다. 그런데 이 사건의 특집 기사를 실은 한국 일보에 6살 대구가 웃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내가 겪은 첫 죽음이었고,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베어내는 듯 아픈 이별이었다. 나는 내 일부를 잃은 마냥 넋이 나갔고 몇날 며칠을 탈진하도록 울었다. 죽음이 뭔지 잘 몰랐기 때문에 더 참담했고,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내게서 영원히 떨어져나간 대구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질리도록 울었다. 볼 수 없어서 더 보고 싶었다. 어차피 오래전에 동네를 떠나서 연락도 없던 애지만 이건 달랐다. 미칠 것만 같았다. 살아만 있다면 감옥에 있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고 내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죽어버려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사정을 알게된 가족들은 날 이해해주려고 했지만 기절하도록 울다가 병원으로 실려가자 의사들의 소견대로 날 정신 병원에 입원시켰다. 쇼크 상태로 자살할 위험이 있다는 게 그 빌어먹을 소견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지도 몰랐다. 나는 울다가 극심한 피로를 느끼며 이러다간 죽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제를 맞고 안정제를 먹으며 날 다스려 보려고 했지만 약 기운이 떨어질 때마다 한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도대체 뭐지?

나는 생각보다 심각했고 몇 개월간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그리고 퇴원해서 집에 돌아왔을 땐 십킬로나 몸무게가 줄어 있었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별, 죽음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눈물이 났다. 어느날 아침, 도저히 더 이상은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신 대구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을 머릿 속에서 끝내고 싶었다. 나는 가족들이 모두 출근한 후, 빈 집에서 혼자 있었고, 오로지 죽으면 이 고통이 끝날 거라는 생각 뿐이었다. 부엌에 가서 찬장에서 식칼을 빼어 들고 뼈만 안상한 내 손목을 내려다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대구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랑해.“

눈물이 멈추질 않고 흘러내렸다. 내 머리가 멋대로 만들어낸 환영인 건 안다. 그런데 대구가 다가와서 날 꼭 끌어앉았다. 나는 식칼을 떨어트리고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다. 그동안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누구와도 이야길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듣는 내 목소리는 갈라지고 잠겨 있었다. 나는 사랑한다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비명이 되어버렸다.. 목소리가 잘 나오진 않지만 나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대로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전화기가 울리는 걸 들은 건 그때였다. 나는 잠에서 막 깨어난 것처럼 멍했고 얼결에 전화를 받았다. 엄마였다.

“윤아야, 괜찮니?”

“엄마, 어떻게 알았어?“

“엄마잖아. 윤아가 힘든걸 엄마가 왜 몰라. 엄마가 지금 갈까?“

“엄마 대구는 왜 그랬을까? 나 너무 힘들어. 이해가 안 가“

“윤아야.“

“응?”

“사랑한다, 윤아야. 엄마는 윤아가 필요해. 엄마를 위해서라도 살아주겠니?”

“내가 살면 엄마가 행복해?”

스물 세 살, 여름. 매미가 울고 있었고, 창문 너머로 빛이 들어와 공기 중의 먼지가 어지럽게 떠다니는 게 보였다. 굴비를 파는 트럭의 녹음된 멘트도 들리고, 어디선가 밥 짓는 냄새도 흘러들어왔다. 나는 갑작스럽게 파고든 생의 감각에 눈을 떴다. 어디에도 대구는 없었다. 꿈을 꾼걸까? 모든 게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다. 그리고 엄마의 말이 포근하게 날 감쌌다.

“행복해. 그러니까 살자”

아주 어린 아이처럼 나는 엄마를 의지하고, 엄마의 말을 이정표 삼아서 삶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단순했다. 대구는 내 머릿 속의 까만 구멍이 되었다. 나는 감정이 무뎌졌다. 대구는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었지만, 삶을 통해서 얻은 크고, 작은 상실들을 통해서 조금씩 흘려보내며 시간이 차차 흐르자 오히려 감정 없이 인생을 관조하게 되었다. 첫 사랑으로 인한 아찔한 추락과 부모와 형제를 비롯한 가족들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생각들을 품은 수 많은 밤, 그리고 나에게 지친 친구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외로움에 몸을 떨며 슬픔에 감전된 심장을 한움쿰씩 떼어 버렸다.


더 이상 슬프지 않게 된 어느날, 베란다에 앉아서 햇빛을 쬐는데 어릴 때 대구와 놀던 생각이 났다. 어린 대구의 목소리가 머릿 속에 울렸다.

“윤아야”

나는 나를 보고 깔깔 웃는 대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좀 늦었지만……사랑해“









keyword
이전 04화인생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