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느 인생 04화

인생은 아름답다.

by 최수현

선영은 전시회에서 가져 온 엽서를 창틀에 끼웠다. 푸른 창포꽃이 그려진 풍경화는 너무 작아서 전시회장에서 본 그 생생한 색감을 드러내진 않지만, 작가의 강렬한 색의 세계에 대한 추억이 선영의 마음의 눈으로는 보이는 듯 했다.


“예쁘다.”


아름다운 것들을 볼 때마다 살아있다는 확신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일과 사람들에게 지쳐서 몇 주 동안 번아웃을 겪다가 이번 주말엔 살아야겠다 싶어서 좋아하는 미술관을 다녀왔다. 이번엔 고흐와 카라바조, 미셸 앙리의 전시가 기획되어 있었는데, 사람이 다소 덜 몰린 미셸 앙리의 전시장으로 향한 건 그림과 진정한 쉼 둘 다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미셸 앙리의 그림은 꽃과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색감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선영의 마음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래, 세상에 절망하긴 일러. 라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차오르며 감동으로 심장이 저렸다. 이토록 아름다운 삶을 선영은 사랑한다. 다만 가끔 너무 지쳐서 무뎌질 때가 있지만, 이렇게 미의 대가들이 톡 건드려주기만 해도 생의 희열을 되찾는데 자살이라니……


매장에서 저녁 교대하는 미란이가 요즘 연락도 없이 출근을 안 했다. 악독한 사장은 대타를 구하기 힘들다며 미란이가 곧 나올테니 그 때까지만 부탁하자며 이주째 풀근무를 시켰다. 9시에 출근해서 10시에 마감을 할 때면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수학 교사이면서 부업으로 가게를 운영하던 사장은 도와줄 수가 없어 계속 엄살만 부렸다.


“미란이가 그만둘 애가 아니잖아. 걔 사정 뻔히 알면서 그래. 집 샀다며 이제 대출 갚으려면 사십년은 걸릴 거라고 여기서 뼈를 묻겠다던 앤데! 그래서 내가 사오년 후에 아들 유학갔다 돌아오면 가게 정리하겠다고 하니깐 지가 인수한다고, 한꺼번에 목돈 주기 부담스럽다며 다달이 나한테 권리금도 주고 있었어. 무슨 일이 있을 거야.”


그리고 매일 연락이 올거라며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두 눈이 퉁퉁 부어선 뜬금없이 나타났는데 미란이가 죽었다며 날 붙잡고 엉엉 울었다.


“어떡하니. 미란이가 죽었어. 그냥 죽고 싶었대. 빚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으흐흑….”


유서 남길 사람도 없었던 미란이는 팔 년 넘게 함께 일한 사장님에게 문자를 남기고는 삶을 스스로 끝냈다. 사장님이 걱정이 되서 경찰에 신고하고, 찾아갔을 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다.


“신도시라 허허벌판에 아파트만 덩그러니 서 있는데, 지하철로 한 번에 못 가고 버스로 갈아타고 삼십분을 더 들어가야 했어. 완전히 섬이더라. 혼자 사는 애가 왜 그런 데로 갔을까 생각하다가도, 애가 조급하게 자기 집 갖는데 집착하던 걸 생각해 보면 조건 맞는데가 거기 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하고..

얼마나 잘 꾸며놨는지.. 나라도 경매에 넘어가면 속이 상할 것 같더라. 에휴.. 주택담보대출 받아서 가상 화폐에 투자했다가 날리고 사채 쓰고 엉망진창이 되었다나봐.

선영씨, 걔가 고아인 거 알지? 내가 신변 정리 해줘야할 것 같은데 심장이 떨려서 아무것도 못 하겠어. 남긴 건 빚 뿐이라 장례만 치르면 된다고 부탁한다고 장례비 오백만원을 나에게 보냈거든. 그런데 나 저혈압이잖아. 따라죽을 것만 같아. 장례는 남편이 도와준다는데 가게까지는 신경 쓸 여력이 없어. 선영씨가 사람 좀 구해줄래?“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 산 사람은 살아간다. 미란이를 안타까워 하면서도 사장님 머릿 속에선 삶이 착착 계산되어 풀려나갔다. 어제 드디어 사람을 구했다. 컬러 렌즈를 끼고 브릿지가 들어간 가발을 쓰고 일했는데 스무살을 간신히 넘겼을까 싶다. 말을 통 안해서 알아서 듣겠거니 하고 일을 설명해 주었는데 첫 손님을 받자마자 홍삼 성분 화장품의 성분을 묻는 여자에게,


”산삼이 들었어요!”



라고 해서 혼자 뒤돌아서 웃었다. 손님은 영인씨의 자신감에 별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영인씨, 홍삼. 산삼이 아니구 홍삼!”


영인은 왠 잔소리냐는 식으로 뜨악하게 쳐다보더니 대답이 없다. 그런데 밤에 사장님이 나오시니까 다른 인격이 나온 것처럼 애교가 넘치며


“어머, 사장님 나오셨어요. 네. 저야 금방 배우죠. 이제 저만 믿고 맡기세요. 오늘 홍삼 제품도 산삼 제품처럼 솔깃하게 설명해서 두 세트나 팔았어요. 호호.”


라고 꼬리를 흔들어 댔다. 집중과 선택이 분명한 성격인 것 같아 앞으로 어떻게 대할 지 견적은 잡혔으나 피곤했다. 일요일엔 무조건 쉬어야 겠다고 선언하고 이주만에 쉬는 중이다.


커피 머신을 작동시키고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오랜만에 커피를 내렸더니 원두가 오래된 탓인지 좀 무겁고 쓰다. 버리긴 아까워서 우유 스팀을 해서 카푸치노를 만들었다. 부드러운 목넘김에 영인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서 선영은 얕은 한숨을 토해낸다.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선영씨, 나야.”


“예, 사장님……”


내 목소리가 좀 떨떠름했는지 사장님이 미안하다고 호들갑을 떤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괜찮다고 대꾸하며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걸 나에게 상기시켰다.


“진짜 미안해. 그런데 미란이 유품 중에 선영씨에게 남긴 게 있어. 편지도 있구…… 매장에 둘 테니까 내일 가져가.”


선영은 미란이와 친하진 않았다. 하지만 오 년 가까이 같이 일하면서 서로에게 친숙했고 미란이는 사람들을 잘 챙겼다. 세일 기간엔 둘 다 풀근무를 섰는데 그런 날이면 간식이라며 사과와 고구마, 직접 쑨 호박죽까지 두 사람분을 챙겨오고, 다리 부기 빼주는 파스라며 손바닥만한 걸 꼭 발바닥에 붙여 주었다.


“언니, 우리같은 서비스직은 다리가 많이 부어서 항상 관리를 해야 해. 치마 입을 때 다리만 울퉁불퉁하면 사람이 초라해 보인다구. 서비스직하니까 직업병이다 라고 한다고 누가 알아주니? 그저 예쁘다, 안 예쁘다가 다잖아.“


”난 됐어. 누가 봐준다고 그래.“


그 때 난 남자친구와 막 헤어진 참이었다. 미란이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언니! 동혁이는 어차피 언젠간 헤어질 애였어. 일찌감치 헤어진 게 더 나아. 결혼해서 바람 피운 것보단 낫잖아. 결혼 비용도 굳었고, 호적에 이름도 안 올라가고 얼마나 다행이야. 걘 누굴 만나든 그렇게 살 애야. 미친놈 잘 피했다고 생각해.“


내가 피식 웃었더니


”언니, 고릴라가 일부일처하는 거 봤어? 언니 지금 진화 덜 된 원숭이 후손을 피한겁니다! 내가 책에서 봤는데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일부일처를 존중한대. 걔가 솔직히 학교만 좋았지 책이나 읽었어? 내가 한강 얘기 했을 때, 걔표정 생각 안나? 한강물 떠 마신 표정이었잖아.“


”미란아. 걔도 한강 작가는 알았어.“


”책 표지만 알겠지!“


대꾸할 말이 없었다. 동화 작가가 꿈인 나에게 헤밍웨이가 어린 왕자를 썼냐고 물어서 농담인 줄 알았었다.


”언니, 여자는 사랑받고 살아야 해. 한 번 뿐인 인생인데 왜 사람한테 집착해. 사랑해줄 사람은 널렸어. 다른 사람 찾으면 돼. 게다가 언니가 좀 이쁘니! 다리만 잘 관리하면 옷태도 잘 살 거야. 언니야 아는 것도 많고, 작가가 꿈이라서 말도 잘하고, 내가 보장하는데 엄청 착하고 부족한 게 없잖아. 부모님이 결혼 적금도 들어주신다며… 예쁘게 하고 다녀. 사람들은 예뻐야 그 다음에 그 사람이 돈이 있는지, 직업은 있는지, 마음은 착한지 관심을 가져. 동혁이 걔도 언니가 친구 결혼식 갔을 때 만난 거라며~~~ 평소에도 그렇게 하고 다녀봐.“


미란이는 고아다. 그래서 항상 살아남는데 필요한 처세로 무장하고 다닌다. 약하고, 모자라면 사람들이 사람 취급도 안 해준다며 외모가 중요하다고 늘 설파했다. 그래서 항상 예쁘게 입었고, 일도 열심히 하고, 집도 샀다. 집을 살 때 내가 말리자 미란이가 말했다.


”언니! 사람들은 조건 밖에 안 봐. 나 고아라 내세울 것도 없어. 누가 고아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알아주니? 하지만 집이라도 한 채 있어봐. 부모 없어도 잘 컸다며 기특해할걸. 두고봐. 나 오 년후에 가게 인수하면 결혼정보업체에 등록할 거다. 그리고 대기업은 아니더라도 똑똑한 남자 만나서 애 셋 낳고 잘 살 거야. 내 아이들은 영어 유치원도 보내고, 과외도 시키고, 유학도 보낼 거야. 공부 많이 시키려면 똑똑한 남자 만나야지!“


미란이는 아주 현실적인 애였다. 다만 가상화폐나 사채가 뭔지 모를만큼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어렸고, 주변에 도움을 구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게 사인이랄까……


매장에 출근했을 때, 내가 본 것은 올리브영 봉투와 쪽지였다.


”언니, 미안해.

나는 너무 걱정하지마. 부모님 만나서 이제 쉴 거야.

언니, 그저 언니한테 미안해..

나 없어서 혼자 매장 지키느라구 힘들었지? 뻔하지, 뭐……

새 직원은 왔어? 아, 이제 내가 참견할 필요는 없으려나? 미안…

그리고 언니! 내가 늘 말했지만 여자는 예뻐야 해. 이거.. 우리 매장엔 안 팔아서 올리브영에서 잔뜩 샀어. 나 없어도 혼자 잘 붙여야 해.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언니가 행복해지길 꼭 바랄게. 안녕!“


발바닥에 붙이는 파스가 들어 있었다. 산 사람은 살아간다. 그런데 왜 사는 사람 걱정까지…… 라고 생각하는 선영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흐려진 눈을 깜박이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창 밖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펼쳐지고, 사람들이 오고 간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문이 열린다. 손님이들어온다. 하루가 시작된다. 선영은 입에 밴 멘트로 인사를 건넨다.


”어서오세요.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리얼 뷰티 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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