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느 인생 03화

복지국가

소설

by 최수현

“자본주의라는 겁나 살벌한 생존 경쟁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니? 물론 나는 열등하지 않아. 그저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는 자아 실현과 평등이 가능하다고 믿어왔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우아한 복지 국가인 덴마크가 아니라, 능력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라 길을 잃은 것 뿐이야. 괴테는 남자 아이들은 하인으로 키우고, 여자 아이들은 엄마로 키워야 한다고 오래전에 말했어. 그랬다면 지금쯤 난 우직하게 일하고, 애나 펑펑 낳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릴 땐 내가 최고라며! 인생이 이렇다고 말하지 않았잖아! 난 그저 총체적인 교육 실패의 산물일 뿐이야. 엄마 탓이야. 나 출근 안 해!”

“저 년이 또 지랄을…..;.”

민희는 출근 준비를 하다말고, 뾰루퉁해진 딸을 돌아보았다. 정말 나갈 마음이 없는지 씻지도 않고, 머리도 산발이다. 어제 마신 술 냄새와 쉰 내가 코를 찌른다. 대충 씻겨서 내보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리고 이유 없이 그러는 것은 아닐 거다.

“예은아, 또 왜……”

“엄마”

“응?”

“문호도 그만뒀다. 걔 히키코모리가 될거래,. 나도 그럴까봐.”

“미친것들. 왜 세트로 지랄이야. 니 친구들 다 집구석에 처박힐 거래?”

“엄마”

“왜”

“학교 다닐 땐, 내가 자아 실현만 하고 존엄하게만 살면 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직장에 나가면 내 권리가 없어. 연가 쓴다고 했더니 차라리 그만두래. 과장이 기분나쁠 때 말 걸어서 그런거라고 언니들이 위로하는데, 미치겠더라. 과장이 뭔데 비위까지 맞춰야 해? 나 술집 호스트야?”:

민희는 예은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머리를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집을 나서며 돈 삼만원을 쥐어주었다.

“좀더 자. 그리고 집에 반찬 없어. 굶지 말고 밥 사 먹어. 갔다와서 이야기하자.”

예은이는 강아지처럼 헤헤 웃으면서 민희를 꼭 안아준다. 어릴 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키만 큰 것 같다. 민희는 나가려다 말고 예은이를 불렀다.

“예은아.”

“응?”

“사랑해”

“응, 엄마, 나두.”

민희는 십 년차 사회 복지사다. 이혼하고 일을 시작해서 남들보다 경력이 짧다. 하지만 누구도 민희보다 일을 잘하진 않는다. 남들은 월급을 받기 위해서 일할 때, 민희는 살아남기 위해서 일했고, 동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그만둘 때도, 민희는 감정이니 권리, 도덕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았다. 동료들이 일을 떠넘기면 동료들의 영역까지 자기 능력으로 섭렵하기 위해서 마다하지 않았고, 상사가 일을 과도하게 주면 상사가 민희에게 흠뻑 빠져들어 꼭 필요한 존재가 될때까지 죽도록 일했다. 민희 사전에 안된다는 것은 없었다. 민희는 자기 나이에 직장을 자주 옮기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무조건 버텼다. 어딜 가나 같은 일을 하고, 비슷한 사람들에게 시달릴 거면, 경력을 쌓고, 한 가지 일에 익숙해지는 편이 더 낫다는 이유도 있었다. 상사가 은퇴하고, 소장으로 민희를 추천한 건 파격적이면서도 당연한 일이었다. 민희는 잘 하는 일 뿐 아니라 상사가 원하면 자신이 잘 못하던 일들도 잘하는 일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런 민희를 보며 악바리라고 감탄하던 상사는 점점 인간적으로 민희의 성실함을 대하게 되었다. 나이차는 있지민 지금은 둘 도 없는 친구 사이다.

사무실에 도착한 민희는 오전 업무 회의를 마친 후, 전 상사인 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시죠?”

“왠일이야, 아침부터? 아니다, 뻔하지, 뭐. 일이 어려워서 물어볼 일은 없고, 예은이 일이구나! 내가 맞춰볼까? 또 직장 그만뒀지.”

은영은 상사로서는 최악이었다. 민희가 입사했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에게 은영은 무섭고, 이해 불가한 존재였다. 일은 한 번만 가르쳐 주었으며, 커피 심부름은 물론이고, 바닥의 껌까지 떼게 했다. 그리고 스스로 찾아서 일을 하는 거라며 몰아 붙이고, 할 일을 못 찾으면 바닥의 껌이라도 떼야 한다는 게 은영의 가르침이었다. 민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속으로는 ‘예, 마님’이러며 빈정거리면서도 겉으로는 싹싹하게 웃으며, 제가 할 수 있으면 다 해야죠~ 배우는 과정인걸요~ 감사합니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민희가 최선을 다해도 은영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 건 세 번째 월급을 받은 후였다. 나중에 술을 함께 마시면서 은영이 말했다.

“난 사람들을 믿지 않아. 특히, 처음 들어왔을 땐 누구나 열심히 해. 그리고 좋은 사람이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봐야 진짜 모습이 나오고, 어떻게 일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써먹어야 할 지가 보여. 여긴 동호회가 아니고, 일하는 곳이야. 잘 지내봐야 뭐하니? 일 잘하는 게 중요하지. 무엇보다도 친해지고 나면 이용해먹거나 뒷통수를 치는 아둔한 사람들이 있어. 그런 트러블 메이커를 거르는데 필요한 기간이 3개월이야.”

그 후로 은영은 민희를 무섭게 가르쳤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바지런한 민희가 벅찰 정도였으나 한 번도 힘들다는 말도 없이 십 년을 함께 일했고, 작년에 은영이 은퇴하면서 민희가 소장 자리를 물려 받았다.

“언니, 모르는 게 없네요, 진짜…”

은영은 민희의 말을 자르며 대뜸,

“예은이, 예술시켜.:

라고 말했다.

“네?”

“그림이나 음악, 아니면 꽃꽃이라도 다른 걸 시키라고.”

“이제 와서 하기엔 늦지 않았을까요?”

“인생엔 딱 두가지 뿐이야. 하든가, 안하든가. 괜찮아. 예은이 미적 감각 뛰어나서 잘할 거야.”

“오늘 아침에 나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요?”

민희는 예은이가 자본주의 국가와 복지 국가에 대해 열변을 토한 이야기를 은영에게 들려주었다. 은영은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고 자식은 말은 참 잘한다니까. 일리가 있네. 나 은영이 말에 무조건 찬성!”

은영은 머뭇거리지 않고 솔직하게 덧붙였다.

“나도 꼰대지만 우리나라의 직장 문화는 젊은 세대들을 받아들일 토양이 못 돼. 교육만 민주적일 게 아니라 사회도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게 하루 이틀만에 될 일이니? 나나, 너나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깡으로 버틴 거야. 사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할 말 없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 놓고 순응한 채 무슨 한 맺힌 사람마냥 아이들만은 달라야 한다며 교육만 아주 존엄하게 키우다가 이 꼴이 난거잖아. 우리는 아이들을 민주적으로 교육시킬 게 아니라, 사회를 개혁해야 했어. 그런데 아무것도 안 했잖아. 얼마나 못난 부모 세대니. 그래놓고 아이들에게 이제 와서 개처럼 일해라! 사회는 그런거다! 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고……

예은이는 어릴 때부터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잖아. 걔 미술도 오래하지 않았어?”

“언니, 알잖아요. 걔 손 다친 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그림을 그렸던 예은이는 중3 때 졸업식 행사 연습을 하다가 친구에게 손가락을 밟혀 새끼 손가락이 돌아가고 말았다. 워낙에 완벽주의적인 성향에 한 번 자리에 앉으면 대여섯 시간씩 그림을 그리던 예은이는 사고 후 손가락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림을 그만 두었다. 그 날, 민희와 예은이는 깡소주를 나눠 마시며 부둥켜 안고 서럽게 울었다. 예은이는 그렇게 술을 배웠다. 그리고 성인이 되서도 속상한 일만 있으면 나는 고통이 싫다며 술을 퍼댔다. 사실 민희는 예은이가 그렇게 그림을 놓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춘기라 한창 예민한 딸에게 장애를 가지고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는 최고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잖아. 마음을 많이 추스렸겠지. 다시 그림 그리게 해.”

“언니,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죽도록 우울해하진 않겠지. 다 우리 팔자야. 우리가 그렇게 키웠으니까 우리가 평생 책임져야지. 우리가 덴마크고, 복지 국가야. 아이들 자아 실현은 우리가 시켜줘야 해. 사회가 뭘 하겠니? 괜히 영우 꼴 나지 마라.”

영우는 은영의 조카다. 수능을 잘 치르고 연세대에 들어갔지만 입시 계획 뿐 아니라 평소 식단까지 꼼꼼하게 챙겨주던 부모가 이제 네가 스스로 해야하는 거라고 손 놓고 얼마 안 있어서 허망하게 자살해 버렸다. 은영은,

“그렇게 자식을 모르나 싶더라. 어릴 때부터 몸도 약하고, 마음도 약해서 엄마 치맛바람으로 산 애야. 온실 속에서만 숨을 쉬는 애를 사지로 내몬 거지. 아무도 몰라. 왜 자살했는지는. 하지만 뻔하지 않니!”

민희는 “아유. 언니.” 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내심 영우가 마음에 걸렸다. 부모의 이기적인 이상주의가 만든 상상 속에서 아이를 키워놓고, 갑자기 무대를 걷어가니 아이가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은영이 말했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자살하지 않고 그저 버텨주는 거야. 더 잘하길 바라지 말자. 아이들은 충분히 괴로워.”

민희는 아침에 예은이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전화를 끊은 후, 괴테의 말을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찾아보았다.

‘선택적 친화력’이었다.

“소년들은 하인으로 키우고, 소녀들은 엄마로 키워야 합니다. 그러면 만사형통이지요.”

“엄마로 키운다고요.” 오틸리에가 대답했다. “그 말은 그럴 듯해요. 여자들은 굳이 엄마로서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돌보는 이로서의 자세를 갖추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우리의 젊은 남자들은 자신이 하인이 되기에는 너무 아까운 존재라고 여길걸요. 누구든 자기가 통치자가 될 만큼 유능하다고 믿는 걸 쉽게 볼 수 있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조교가 말했다. “사람들은 아양을 떨며 삶 속으로 섞여들지만, 삶은 우리에게 아양을 떨지 않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기들은 결국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노라고 스스로 고백하게 되는 걸까요?”

(선택적 친화력/요한 볼프강 폰 괴테/을유세계문학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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