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의 이야기
하나둘 불이 밝혀진다. 잠에서 깨어난 집들은 비슷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엔 나처럼 눈을 뜨자마자부터 인생의 의미를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라진 꿈들과 사라질 꿈들과 당면한 일들이 뒤죽박죽이 되어선 잠과 현실의 경계를 힘겹게 넘다보니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탈진해버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옆에 잠든 이의 온기에서 편안함을 느끼거나, 그를 위해서 아침을 준비하려고 남은 잠을 몰아내는 사람들도 있겠지. 이미 아침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오래전에 일어난 드라마일 수도 있고, 아침을 미루는 사람들에겐 오지않을 드라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침은 아침이다. 만물이 기지개를 켠다.
이불을 걷고 침대 밖으로 나와 화장대 앞으로 간다. 전신 거울에 비친 나는 어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우지 않은 화장과 흐트러진 어제의 옷은 창백하고, 지친 얼굴을 감추지 못한다. 어제의 피로는 어디로도 가지 않은 채 여기, 지금,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치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와의 섹스로 뱃 속에 아이가 생긴 것처럼 속이 쓰리고 거북하다. 토해야 겠다. 술이 역류한다.
화장실 변기에 대고 웩웩거리면서 눈물, 콧물을 다 쏟는데 영혼까지 뒤집어지는 것 같고, 머리가 통째로 쏟아져내릴 것만 같다. 변기 물을 내리고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서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은 몸을 버리고 우주 먼지가 되어 지구로부터 영영 멀어지는 상상을 한다. 할 수 있는 한…… 아주 멀리……
“더러운 것들은 모두 지구에 서식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녀는 화가 나면 ’이놈의 지구! 망할놈의 지구!‘라고 욕을 한다고 한다. 나는 하도 신기하고, 우스꽝스러워서 웃었다. 그녀는 아이처럼 따라웃더니, 내 손을 잡고 강의실 밖으로 이끌며 말했다.
“같이 도망갈래요? 지구로부터?”
우린 강의를 땡땡이치고 학교 앞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고, 노래방에 가서 목이 터져라 노랠 부르고, 밤이 새도록 술을 마셨다. 우리가 술을 마신 술집은 그녀가 지구에서 가장 쓰레기같은 멋진 곳이라고 부른 학교 앞 포장마차였다.
“이모 개구리 튀김이랑 메추라기 튀김, 산낙지랑 소주 두 병 주세요!”
얼굴에 심술이 뒤룩뒤룩한 사십대 여자는 이모란 말이 무색하게 쌔한 얼굴로 주문을 받고는 휙 돌아서서 가버린다.
“저 여자, 정신병자예요!”
“네?”
이모에게 들리지 않도록 귀엣말로 그녀가 말했지만 내가 너무 큰 소리로 리액션을 하는 바람에 이모는 휙 돌아서서 우릴 째려보고는 갑자기 큰 소리로 쯧쯧거리더니 가버린다. 그리고 개구리와 메추라기, 산낙지에 혼신의 신경질을 쏟아낸다. 그리고 별로 깨끗하지도 않은 그릇에 오물처럼 담아내선 우리 자리에 쾅 내려놓고는 자기가 앉던 의자로 돌아가서 눈을 감는다. 얼마 안 있어 작게 코를 골며 잠든다.
“이 시간에 깨우면 늘 저래요.”
나는 이번엔 작은 목소리로 ‘왜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포장마차 한켠의 지저분한 종이를 가리킨다. 그곳엔 영업 준비는 6시부터라고 쓰여 있었다. 시계는 5시 5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원칙주의란 정신병에 걸려 있거든요.“
“우리가 잘못했네요.”
나는 작게 웃고는 소주를 반잔 부었다. 그리고 가득 부운 그녀의 잔과 마주 부딪히고는 단숨에 털어넣었다.
“저는 이영미라고 해요. 아동학과 4학년이예요.”
“저는 김진아라고 하고요. 사회복지학과 신입생이예요”
이영미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어요.”
상구 오빠의 오랜 지인이라고 한 이영미는 그 때부터 내 삶에 들어왔다. 레퍼토리는 늘 같았다. 지구로부터의 탈출과 음주가무로 영혼을 갱생시키는 의식. 언제든 지구를 떠나고 싶은 강렬한 열망을 키워야 한다며 지구에서 가장 쓰레기같은 곳으로 나를 데리고 다녔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토록 강렬한 유머와 증오로 삶에 대한 애증을 불태우는 이영미에게 끌릴 수 밖에 없었다. 술이 가득 취한 채로 쓰레기같은 음식이라고 낄낄거리다가 술 기운에 목소리가 컸는지 음식점에서 쫓겨나고도 우리는 모든 게 우습기만 했다. 미움받는 것도 영혼을 갱생시킬 좋은 의식이라며 이영미는 사람들에게 전혀 사랑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해서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마친 후 대학에 들어온 나는 친구가 전혀 없었다. 너무 사랑받지 못하면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며, 이영미에게
“인간은 애정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되면 물 떠난 물고기나 다름 없어요. 사람이 떠나면 삶도 떠나죠. 정신이 온전할 수도 없어요. 저는 왕따를 당한 후 정신병원에서 몇 달을 치료받았는데 그 때 주치의인 뚱땡이쌤이 그랬어요. 이건 그분이 다른 의사들보다 친근해서 우리가 붙여준 별명이예요.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사랑을 할 줄 알게 되고,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정신질환을 이겨낸대요.”
“개소리”
“아니요. 사람에겐 무의식이 있잖아요. 무의식은 우리가 타인에게 배운 태도로 자신을 대한대요. 나보고 가해자들을 용서하라고 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가해자는 가해자로써 살아가게 될거라고요. 타인을 대한 태도로 무의식이 자신을 대해서 자신의 자아를 왕따시킬 거래요. 그렇지만 피해자의 몫은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미움의 메커니즘을 답습하지 말고 정의는 사법 체계와 그들의 무의식에 맡기라고 했어요.“
“그러면 그 애들이 처벌이라도 받았다는 거야?”
“아뇨. 하지만 그 애들이 피해망상 속에서 살거라고 했어요. 세상은 부당하다. 내 편은 없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논리는 그 애들의 무의식이래요. 그건 내 것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이영미가 물었다.
”그 말을 믿었어?“
”네, 그리고 몇 달만에 집으로 돌아왔고, 대학에도 올 수 있었어요. 비록 청소년기 내내 정신병원을 왔다갔다했지만 기어이 저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어요.“
”어떻게?“
”무의식은 내 신념과 가치관, 경험을 모두 흡수한대요. 그리고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나에게 다시 산출해낸다고 했어요. 그래서 뚱땡이쌤이랑 엄청나게 연습했어요. 무의식이 날 비추는 거울이란 걸 이해할 때까지요. 그리고 난 후로는 누군갈 미워할 수가 없더라구요. 내가 소중해서.“
이영미는 상구 오빠 이야길 꺼냈다.
“네 오빠랑 사귄 적이 있어.”
나는 이미 그럴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영미는 약간 놀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영미는 상구 오빠가 잘 지내는지 물었다. 나는 암투병을 하다가 치료를 포기하고 티벳으로 떠난 후 얼마후에 죽었다고 말해주었다. 이영미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너에게 잔인할 수도 있어. 나는 널 위해서라면 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옳을 거야. 하지만 진실을 말해야만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누구든 한 사람만은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야.”
“언니, 죽어요?”
이영미는 허탈하게 웃었다.
“아니, 그럴 생각이었어. 너랑 술을 진탕 마시고 놀다가 어느날 갑자기 죽어서 네가 놀라게 된다면 상구가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지. 나는 사실 벌써 네가 상구에게 내 이야길 했을 줄 알았어.”
“오빠는 죽었어요.”
“그래……”
“언니.”
“응?”
“오빠를 미워했어요?”
“세상에서 제일”
“그렇구나……”
“왜 그런지 듣고 싶니?”
“아뇨. 언니가 말하고 싶으면 하세요.”
이영미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그동안 미안했다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술집에서 나가려다가 말고 돌아왔다. 어릴 때의 나처럼 절박한 눈빛이었다.
“피해자는 살아갈 수 있어?”
“……용서하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