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감정은 발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와 함께 떨어져 나갔다. 노랗게 시야를 가리는 태양과 발목까지 차오르곤 하는 바닷물, 시체처럼 널부러진 해초와 조갯더미가 주는 인상은 지금 이 순간만이 현실인 것처럼 아이의 공감각을 사로잡았다. 아이는 바닷물을 두 손에 그러모았다가 다시 흘려보내면서 잘게 부서지는 물방울이 빛을 받아서 반짝이는 것을 한 동안 관찰했다. 물방울은 다시 바닷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연약하고, 부당해보여서 아이는 알 수 없는 결핍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 행동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물방울의 행보를 눈으로 쫓았다. 그러는 동안에 시간이 영원의 한 가운데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흘러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제와 내일이 점점 멀어지고, 현재가 무한히 늘어나며 머릿 속은 텅 비고, 심장 박동도 느려졌다. 아이는 문득 자신의 인생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얼른 물방울처럼 끝없는 변화에 사로잡혀 삶을 파란만장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이 삶을 파란만장하게 만드는지 조차도 아이는 잘 모른다. 그저 욕망할 뿐이다. 연약하고, 부당해보여서 시선을 뗄 수 없는 그 무엇을. 갈증을 느끼며 자신을 추동할 어떤 욕망의 대상을.
그것이 어떤 형태로 찾아올 지 아이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부모님과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실수와 우연을 딛고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유해한 것과 무해한 것, 옳은 것과 아닌 것을 더듬더듬 추리해나갈 때, 아이는 경이로운 듯 그 과정을 지켜만 볼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 안에서는 무엇인가가 이미 시작되었고, 그것은 삶 속에서 거침 없이 표현되며, 아이들은 점점 강해지고, 단단해지며, 비정하고, 단호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울고, 웃고, 요구하고, 욕하고, 빈정거리며, 서로 견제하고, 맞부딪히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면서 다른 아이들의 세계는 점점 넓어져 갔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가 서로를 닮아갔다. 아이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결이 다른 빛의 어울림, 깊이가 다른 어둠을 들여다 보듯 직관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그림을 그릴 때 캔버스 위에 서로 다른 색들이 쌓여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떤 설명하기 힘든 감동을 받을 때와 비슷했다. 캔버스 위의 혼돈이 내는 울림은 공기 중에 퍼져나가 시간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시간은 무한히 연장되며 영원에 대한 예감으로 아이의 전존재를 사로잡았다. 그러면 아이는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는 머릿 속으로 그 모든 과정을 몇 번이고 다시 재현해보곤 했다.
아이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일곱살이 되어서 학교에 들어갔으나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사실도, 필요도 아이는 알지 못했다. 학교에 들어간 첫 날부터 지금까지 쭉 혼자였다. 먼저 다른 아이들에게 다가가지도 않지만, 다른 아이들도 아이에게서 자신들과는 다른 이질감을 느껴 다가오지 않았다. 학교도 하나의 작은 사회이므로 강한 아이부터 약한 아이까지 서열이 형성되고, 집단의 조건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각자의 역할을 인지하고, 그 역할에 순응했다. 그러면서 집단에 받아들여져 나갔다. 하지만 아이는 그 모든 움직임을 눈으로 쫓을 뿐 자신도 그 집단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이는 철저하게 관찰자였다. 학교에 가면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수업이 모두 끝날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그 모든 것들을 지켜봤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유해한 것과 무해한 것, 옳은 것과 아닌 것들을 판단하기엔 이 모든 움직임의 자연스러운 조화는 아이의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흐름이었다. 그것은 항상 아이에게 감동을 주었고, 아이는 그것을 물방울에서, 어머니의 그림에서, 아이들의 세계에서 동일하게 느꼈다. 아이의 어머니는 자신의 그림에 도취된 아이를 보며 자부심을 느끼기 보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곤 했다. 아이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몇 시간이고 자신의 작업을 지켜보곤 했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다음날까지 끙끙거리며 신열을 앓기도 했다. 아이는 자신만의 어떤 감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어머니는 알 수 없었다. 아이는 말을 잘 하지 않았다. 그저 온몸으로 표현할 뿐이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그 의미를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의 이젤 옆에 꼼짝 앉고 서 있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가, 너에게 필요한 것은 언어야.”
“언어?”
그 때까지도 아이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
“너는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언어들을 훔쳐야 해. 그래서 그것을 네 것처럼 사용해야 해. 너는 너무 진지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아. 대신에 네 모든 감각들은 깨어 있지, 항상. 너무나 예민해서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널 보면 내가 다 온 몸이 떨려. 네 눈 속에, 네 온 몸에 철저하게 새겨질 때마다 내 그림은 다시 태어나는 것만 같아. 그리고 나면 뭔가 네 안에서 쏟아져 나와야만 할 것 같은데 너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하고 종종 그게 한스러운 것처럼 끙끙 앓기만 해. 그런 날이면 나는 너에게 그림을 가르쳐야 할 지 고민하곤 했어. 하지만 너는 아무것도 배우려고 하질 않아. 그저 언제나 가만히 서서 보기만 해. 하지만 네 눈 속에 담긴 욕망은 예술가의 천성이야.”
“예술가?”
“학교 선생님이 그랬어. 너에게 아무것도 가르칠 수가 없대. 수업으로 네 주의를 돌리고 싶지만, 넌 항상 다른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대. 그래서 어느날 너에게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거냐고 물어봤는데, 네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해.
움직임과 빛이 네가 보는 전부라고 말이야.
선생님은 그 의미가 뭔지 정말 알고 싶었지만, 네가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대. 그리고 나에게 전화를 했어. 이렇게 말했어. 넌 보는 것들을 흡수한대. 그리고 나선 집에서처럼 종종 앓는다고 하더라. 네가 자폐일지도 모른다고 했어. 하지만 엄마는 그 때, 깨달았어. 너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위대한 것에 사로잡혀 네가 보는 것들에 감히 이름을 붙이지 못한다고 말이야. 너는 어떤 것도 함부로 정의 내리며, 그것의 본질을 다치게 하려고 하지 않아. 넌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을 거야. 널 사로잡은 것은 예술가의 신열이지. 정말 위대한 것과 사랑에 빠지면 그것을 읽을 수도 부를 수도 표현할 수도 없어. 하지만……”
“아가, 인간은 오만해야 해. 신은 인간에게 세상을 주었고,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도록 권한을 주었어. 그것은 권한이자 의무야. 이름이 불러지지 않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거든.”
아이는 어머니가 하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아이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그걸 나는 봐. 나는 내 눈 속에 새겨 넣어. 그걸 영원히 잊지 않으려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 그것은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존재해. 나는 내 안에서 그것이 빠져나가길 원하지 않아. 사라지는 것은 슬퍼.”
어머니는 아이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아이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생각에 잠겨서 몇 번이고 곱씹다가 불현듯 아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를 깨달았다.
“이름을 불러줘. 네가 그것의 이름을 부를 때, 그것은 너만을 위해서 존재하게 돼. 하지만 지금 네 하찮은 지식으로는 그것을 정의내릴 수 없을 거야. 너는 그것을 아는 거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도 어렴풋이 늘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싶은 욕망이 언제나 아이의 배우려는 욕구를 앞질렀다. 타인을 모방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신을 이해해주자 어린 아이 특유의 의존성에 기대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이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것의 이름이 뭔데?”
“내가 하는 말을 오해하지 않길 바래. 이것은 첫 명명이지 영원히 이 단어에 네게 보여지는 것들이 얽매이지 않아. 너는 얼마든지 새롭게 이름 지을 수 있어. 네가 배우고, 성장할 때마다 너는 더 이름을 짓는 데 자유로워 질 거야.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부를 수 있어. 사람들은 그럴 때 ‘아름답다’고 말해.”
아이는 심장이 아릿한 통증을 느꼈다. 언젠가 그 단어를 들어 본 적이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아름답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이도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보고 있는 것과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면, 어머니는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아이는 입 속으로 가만히 되내어 보았다. 아름답다. 첫 명명. 아이는 약간의 짜릿함을 동시에 느끼며, 드디어 내면에서 약동하는 힘을 깨달았다. 첫 욕망이었다. 아름답다는 말을 넘어서는 것. 자기만의 표현. 자기만의 명명으로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드디어 자신의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