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단상

끝 마무리

by 최수현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감각이 사십여 번 반복되면서 몸에 새겨져 연말이 되면 조바심을 내며 ‘끝’을 기다리게 된다. 잘 마무리짓는 것은 우리 엄마의 철학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살라는 정직한 가르침이 엄마의 삶이었다.


나는 신입이 들어오면 삼 개월을 지켜본다. 이삼개월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릴 잡으려고 200%를 보여주는 시기다. 그리고 훈훈한 칭찬과 인정의 분위기가 성공적으로 무르익으면 두 번째 월급을 받을때쯤 돌변한다. 그때부턴 요령을 피우는 사람도 있고, 벌써 전문가 행세를 하며 하던 일만 고수하는 사람도 있고, 인성에 문제가 드러나 트러블메이커가 되기도 한다. 내 후임은 달랐다.

처음부터 싸가지가 없었고 어리버리하며 일을 가르치기가 참 힘들었다. 하지만 자기 일로 받아들인 건 실수도 없이 잘해냈다. 처음엔 모두 내보내자고 했는데 내가 자처해서 가르쳤다. 그리고 지금은 사무실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처세로 사람들을 사로잡으려는 사람들에겐 없는 미덕을 지녔다. 느리지만 성장을 한다. 그리고 인간 관계에 굴하지 않는다. 자길 싫어하는 사람 옆에서 라디오처럼 잡담을 혼자 하거나 자기보다 연배가 있어도 사무실 분위기를 흐리면 종종 지적을 하는 걸 보는데 그 태연함도 좋지만 그런 식으로 일과 동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항상 거의 모든 걸 파악하고 있다. 이 친구를 가르칠 때 한 번 좌절을 겪었던 것은 상사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판단해서 필요한 일들을 하는데 내가 연막을 쳐 줄 수 없는 수준일 때였다. 내가 몇 번 데리고 나가서 엄마 같은 심정으로 사정하다시피 가르쳤다. 후임이 해야할 일을 종이에 써가서 하나하나 체크했다. 하지만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는데 어차피 그럴거면 하고 싶은 일이라도 맡겨보자는 심정으로 일을 떼어줬다. 그런데 자기가 계획한대로 일이 풀려나가니 다른 것도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일취월장했다. 후임은 애를 많이 태웠지만 늘 성장하고 있고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한결같다. 살살거리며 소장님 애간장을 녹여서 아기처럼 적당히 투덜거리고 적당히 요령피우며 일하는 애들보다 나는 후임을 더 좋아한다.


처세와 실력을 모두 갖춘 사람도 본 적이 있다. 모두에게 사랑받은 이 친구는 복무요원이지만 직원처럼 일을 했다. 이 친구의 마인드는 무슨 일을 하든지 긴장을 늦추면 정말 중요한 일을 할 때 마인드 칸트롤이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사람에게도, 일에도 정말 악바리처럼 잘했다. 화를 내거나, 아프거나, 요령을 피우는게 스스로 용납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 친구의 강함이 늘 놀라웠다. 하지만 내가 이 친구에게서 좋아한 점은 우리 엄마같은 근성이었다. 나가는 날까지 한결같이 겸손하게 일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든지, 누굴 만나든지 어려운 도전일수록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처럼 완벽하진 못하다. 하지만 남들도 지금 일과 인생을 배우는 중요한 시기인 건 안다. 6년을 한 자리에 있었지만 내가 하기 싫은 잡무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본 적은 없다. 후임들에게 일을 줄 때도 각자의 성장에 필요한 일을 주고, 일단 맡기면 일의 방식에 관해선 잔소리하지 않는다. 복무요원이 이용자 응대를 하면서 제공한 물품을 기록할 때 괴발세발 써도 잘 쓰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글씨를 못 쓰는 것이 일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일도 내가 바쁠 때가 아니면 되도록 시키지 않는다.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오는 즐거움도 있거니와 누구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덕분에 리더쉽이 없다고 승진에 실패하긴 했지만 나는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덕분에 다른 사람이 관리자가 됐지만 그 사람이 그럴만한 그릇이 되니 잘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관리자로서 지시만 하기보다는 현역이고 싶고 후임들이 사회에서 한 몫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가르치고 싶다. 참, 내가 일은 좀 잘한다.


엄마는 손해를 봐도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웃으며 일하고 겸손했다. 일이 인성이라고 믿는 분이시다. 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조바심이 난다. 그냥 빨리빨리 끝내버리고만 싶다. 하지만 엄마나 후임 , 반면교사인 다른 사람들이 항상 내게 한 가지를 가르친다.. 한결같을 것. 그게 가장 잘 마무리하는 방식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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