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단상

자유!

by 최수현

어떤 날들은 평소와 다른 색깔을 띠고 다가온다. 똑같은 길, 똑같은 하늘,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지만 이 순간만큼은 결코 잊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내가 변한 걸 느끼는 그런 날. 마치 탈피라도 하듯이 어제의 나는 떨어져 나가고 오늘의 나는 앳띤 숨을 내쉬며 여기에 있다. 익숙하던 모든 것들이 함께 새로운 숨을 내쉰다.


몇 시간이었을 뿐이지만 자유를 잃었을 때, 나는 그동안 당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들이 가을 낙엽처럼 힘없이 떨어져나가고, 그 자리를 채운 허무를 보았다. 내가 원한 적도 없고,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도 무작정 끼어든 재난은 이 순간이 지나가면 내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내 인식을 낚아챘다. 그것은 첫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두 번째 사랑은 결코 첫사랑이 아닌 것과 비슷하다. 첫사랑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자유는 공기같은 것인 줄 알았다. 나는 이 천혜의 보고에서 많은 경험을 낚았고, 경이롭고 신나는 인생을 살았다. 물론 찌질한 아픔과 서글픈 고통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인생을 돌아볼 땐 으레 모든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그 멋진 삶은 영원히 계속되어야 했다. 얼마나 나를 사랑했던가. 상처받지 않으려고, 나다우려고 애쓰며 삶에 끌려다니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나는 기억한다. 삶과 내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정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무슨 영화처럼 빅브라더가 등장하고 나는 독재를 실감했다. 잠깐이었을 뿐이지만 거대한 것과 마주치고는 나는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아플 새 조차 없이 깨져버린 말도 안 되는 경기였다. 언젠간 내가 질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줄은 미처 짐작도 못 했다.


인생의 행운을 아직 쓰지 못한 나는 자유가 몇 시간 만에 돌아오는 첫 번째 행운을 누리면서 새로운 나와 새로운 모든 것과 새로운 날들을 맞았다. 더 이상 그저 그런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과 놀라운 것은 없었다. 이게 늙는 거라면 나는 하루 아침에 늙어버렸고, 깨달음이라면 고통이 없이 그 자리에 이르지 못 했다. 그리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라면 이제 마음 속의 새가 떠나버렸다고 말할 것이다.


나의 깨진 조각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새로운 내 심장에 박아넣는다. 완패하고 무너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이제 다신 일어설 수 없다고 자신을 포기한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완패한 굴욕 속에서도 삶이 아름답다. 그리고 내가 노력을 해도 또 다시 자유를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알면서도 자유에 목마르다. 자존심도, 명예도 없다. 나는 살아남는 게 내 인생관이다. 이상하게 어지러워서 일부러 담배도 더 피웠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때까지. 그리고 기뻤다. 살아남아서. 심장을 찌르는 기쁨이었다. 나는 살아가는 동안에 다시는 이 기쁨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숨 쉬는 세상은 자유 그 자체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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