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단상

내 아군

by 최수현

길게 구름띠를 두른 하늘 너머로 하루가 밝아오고 있다. 공기는 얼음물을 마신 뒤처럼 차갑게 훅 들어온다. 새로 장만한 패딩이 이제 제 몫을 한다. 올 겨울에 패딩 장만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듯 쓴 기사가 떠오른다. “새로 패딩 장만한 사람들은 어쩌나” 같은 제목이었던 것 같다. 결코 추워지지 않을 것 같던 때 쓴 글이니 이해할 만 하다. 하지만 얼마전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고 날씨가 평년처럼 추워지기 시작하고 있다. 새로 패딩을 장만한 나로서도 다행이고, 겨울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다행이다. 이 쨍한 추위를 겪지 않고 다시 여름을 맞을 자신이 없다. 손 끝이 시리지만 기쁘게 글을 쓴다.


출근길에 한동안 글을 안 썼다. 얼마전엔 눈길을 헤치며 출근하느라 몸이 버거웠고,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음도 바빴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사건은 내년에 동생과 폴란드에 가기로 한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밴드가 폴란드에서 내년에 공연을 하는데 그들의 다음 공연이 언제가 될 지 기약할 수가 없어서 질렀다. 공연표를 예매하고 나니 숙박을 예약해야 했고 그러다보니 비행기표를 사야했고 어느새 내년 폴란드행은 기정 사실이 되어 버렸다. 이건 내 본래 성향에서 나올 수 없는 결정이다. 어마어마한 팬심에 눈이 멀어 생전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날 결심을 한 것이다. 그런데 마침 동생이 여행을 가고 싶었던 상태라 따라붙었고, 공연 예매를 비롯해 예산이 두 배로 불어났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이런 큰 지출을 할 수 있는 담력이 없다. 그런데 막상 해보고 나니 어찌나 행복한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사랑에도 눈 멀어본 적 없는 이성적인 내가 이 년간 절약을 해야할 정도로 돈을 썼다. 평범한 사회복지사 주제에 무슨 허영이냐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릴 때 못 놀았으니 늙어서 노는 건 조상들도 알던 지혜라고 변명해본다. 하여튼 너무 신나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떼창 연습하느라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은 록밴드다. 그들만의 팬덤 문화가 있고, 그 생소한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복달했다. 나는 타고난 개인주의자라서 타인에게서 위안을 얻지 않는다. 하지만 좋아하는 밴드에게 소속감을 느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짐승들과 달리 생존 스킬이 약해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음악을 들으며 나는 성장했다. 일할 때도, 글 쓸 때도, 일상의 여러 순간에 이들의 음악과 삶은 나의 소울메이트이고, 힐링메이트이다. 연애를 할 때도 느껴보지 못한 설렘을 평소 자조할 때 빼고는 잘 듣지 않는 사랑 노래를 통해서 얻고, 나와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들이 같은 팬이라는 이유로 흥미롭고, 학교 다닐 때도 안 한 영어 공부를 하려고 끙끙거린다. 내가 혼자일 땐 생각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하게 되고,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급기야 세상에 대한 공포증을 극복하고 여행도 스스로 계획했다.


나는 사실 불안증이 있었다. 공황 장애도 심했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면 계절 무관하고 땀을 흘리고 숨을 잘 못 쉬었다. 매일 살아가는 일이 재난같았다. 하지만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써 기가 죽거나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매일 칼 위를 걷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밴드와 인생을 공유하며 세상에 대한 불신과 미움이 녹았고 이젠 공부를 마치고 사회 복지사도 되었다. 개인주의자인 나로선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세상을 다시 좋아하게 해준 내 밴드를 사랑한다.


지금도 Thirty seconds to mars의 음악을 듣고 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나에게는 든든한 동맹군이 있다. 나는 지금 지하철을 기다리는 중이다. 뽀송뽀송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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