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단상

사회복지사로 사는 일에 대해서…

by 최수현



이른 아침, 매장을 가오픈하고 청소 중이었다. 그런데 한 어르신이 이용시간 전부터 오셔서 물품을 달라고 억지를 부리셨다. 복무요원들이 아직 청소 중이고, 업무 시작 전이라서 드릴 수가 없다고 설명을 드렸으나 막무가내다. 내가 가서 한 마디 거들었다.

“어르신, 물품 드리면 저희가 그걸 적고 싸인도 받아야 해요. 안 그러면 시청에 혼나요. 준비가 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내가 오늘 병원에 약속이 되어 있어서 일부러 일찍 나온거야. 지금 안 받아가면 늦어. 내가 몸이 아픈데도 멀리서 일부러 왔는데 좀 해줄 수 없나?“

어르신 사정이야 이해한다. 하지만 여러 직원들, 보조 인력들이 함께 일하면 나름대로 규율이 잡혀 있는 법이다. 복무요원들은 배운대로 안된다고 하고, 어르신이 성을 내셔서 분위기는 험악하고, 직원들은 선뜻 나서서 자기가 가르친 걸 번복하며 복무요원들과 반목하기 어려운 분위기여서 어르신만 달랬다. 그러자 어르신은


“높은 사람 불러! 직접 말하게.”


라고 소장님을 찾았고, 소장님 선에서 이야기하니 고분고분하게 기다리셨다. 그리고 서류만 바로 챙기고 먼저 물품을 내드리면서 마무리가 되었다.


종종 원칙과 인정이 부딪히는 게 복지 현장이다. 사소한 일 같지만 복지는 휴먼 서비스라서 각자의 가치관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럿이 함께 일하는 시설에서는 더욱 조심스러운 법이다. 하던 일을 팽개치고 어르신 일부터 해드리고 싶은 직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정이란 건 원칙과 달리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단체 생활에서는 규율을 깨고 혼자 임의로 인심을 쓰는 것은 아무리 조심해도 모자라다. 옳고 그름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원칙주의자들에게도 이유가 있고, 직원들 간의 관계 형성도 중요하다. 이럴 땐 상사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어르신이 가고 나서 복무요원 진구가 투덜거린다.

“형평성에 어긋나잖아요.”


직원 중에서 가장 원칙주의자인 은혁도 맞장구를 쳤다.


“이런 분들은 한 번 해드리면 또 해달라고 해. 처음부터 해드리면 안 되는 건데.“


상희는 입조심하라며 은혁에게 핀잔을 주었다.


”소장님 지시잖아. 그리고 민원 들어가면 어떡해. 꼭 저런 분들이 민원 넣는 거야. 소장님도 그래서 그냥 주라고 하시는 거지 아무리 복지 시설이라고 해도 절차가 있고 원칙이 있는 건데 이용자 마음대로 다 해주는 게 복지는 아니라고 평소에도 말씀하시잖아.“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땐 줄도 잘 서시는 양반들이 복지 시설 오면 꼭 저러시더라. 우리가 공무원인 줄 알고 그래요.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일 제대로 안 한다고 뭐라고 하시는데 우리 공무원 아니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더라니까. 그리고 공무원도 자기 직무가 있는 거지 이용자들 비위 맞춰주는 자리는 아니잖아?”


날씨가 더운 탓일까. 다들 예민해져선 한 마디씩 거든다. 소장님이 다시 청소합시다 라고 말하고 그제서야 흩어진다.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어르신을 보내고 난 후 오늘따라 이용자분들이랑 마찰이 계속 생겼다.


“선생님은 이용자가 아니시잖아요.”


50대로 보이는 남자는


“내가 그 사람 동생이라고. 형이 아파서 대신 왔다니까.”


라고 말하며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묵살했다. 그리고 개인정보를 왜 요구하냐고 막무가내로 되레 호통을 치셨다. 보다못한 내가 가서 관계 증명을 요구했다.


”여긴 일반 매장이 아니라 취약 계층에게 무료로 물품을 드리는 복지 시설이잖아요. 신분 증명이 당연히 필요하죠. 그리고 본인이 아니면 관계 증명이라도 하셔야 물품을 드릴 수 있는 거 아니에요? 형님분께 전화라도 걸어주세요. 본인 확인 후 물품을 드리겠습니다.“


원칙은 본인 외엔 본인이 서류상으로 지정한 대리인에게만 물품을 내어드릴 수 있으나 이용자들이 밀려 있는 탓에 절차를 생략하기로 하고 확인 과정을 마쳤다. 그런데 그냥 가시지 않고 계속 요구 사항이 늘어갔다.


”두 달 치인데 서비스도 두 달치 줘야하는 거 아녜요?“


”선생님, 원칙적으로는 여러 달 걸러서 오셔도 한 달치만 드릴 수 있습니다. 두 달치 드리는 것도 서비스로 챙겨드린 거예요.“


“냉동치킨이라도 하나 더 줘봐요.”


이쯤 되면 인정도 사라진다. 원칙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하나 더 챙겨드리고 보내며 소장님이 말씀하신다.


“얼마나 절실하면 저러겠어. 그냥 줘.”


나는 예 라고 하고 기록지에 추가 물품을 기록해둔다. 그리고 나라고 이렇게 인정 없이 굴고 싶은 건 아니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걸러내냐고 한 마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희가 임의로 주는 게 아니라 지침에 정해진 대로 하는 거잖아요. 저도 제가 먹던 과자 달라는 거면 봉지째 드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 걸 주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자꾸 원칙을 무시하면 저희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거예요.“


소장님은 날 타일렀다.


”열 식혀. 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와.“



원칙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원칙이 없으면 복지 시설도 없다. 기부받은 물품은 꼭 필요한 분들에게 공정하게 돌아가고, 그 과정은 기록되어야 하며, 기록물은 일 년에 한 번씩 지자체로부터 점검을 받는다. 인정에 따라 특정인만 챙기는 것과 내가 챙겨주고 싶은 지인들을 챙겨주는 것을 평소에 마음 속에서 어떻게 구분할까. 그냥 좀 원칙쪽으로 기우는 게 더 청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순간엔 그렇게 생각이 되었고 나는 청렴한 마음으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와보니 또 다른 이용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큰 키에 긴 코트를 걸친 중년의 여자는 한 눈에 보기에도 옷차림에 돈을 많이 들인 것 같고, 곱게 틀어올린 머리는 여기보다는 백화점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나 이용 기간 좀 늘려줘요. 물품 더 받을 수 있게 좀 해줘봐요.”


나는 또 시작이란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용 기간은 일 년이 원칙이구요. 일 년 정도는 쉬셔야 또 이용하실 수 있어요. 내후년에 다시 신청하세요.”


이용자는 내 말투에 서운한 표정으로 말문을 닫았다. 그리고 물건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나가다말고 날 불렀다.


“선생님”


“저 암 말기예요.”


저소득층 대부분이 중증 환자이다보니 그분만 겪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분들과 우리는 다른 속도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초생활수급자 대부분이 일할 수 없는 중증 질환자다. 그들에게 복지는 생존을 위한 필수 사항이지 선택이 아니다. 우리나라 복지는 꽤 잘 되어 있어서 취약 계층에게 다각적으로 도움을 준다. 하지만 최소 지원이고, 선택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반면 우리 복지마켓은 일반 편의점처럼 이용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한다. 조금 욕심이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죄송해요.”


나는 그분이 떠난 빈자리를 허전하게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모든 일엔 절차가 있고, 원칙이 있다. 복지 시설은 부정이 없도록 더욱 엄격하게 관리가 된다. 하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나 위로, 친절한 설명이 원칙에 어긋날까? 그리고 때때로 가난한 어르신들에게 냉동 치킨 하나 더 쥐어준다고 해서 횡령일까? 그 일을 겪은 후 나는 사무실의 분위기를 바꾸기로 마음 먹었다. 친절이 원칙이 되도록 가르치며 약간의 자의적 판단이나 실수는 용인해주기 시작했더니 복무요원들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용자를 직접 응대하는 복무요원들이 물품을 기록지에 적고 이용자 사인을 받는다. 글씨가 개발새발이든, 물품을 더 주든, 줄 서 있는 이용자들을 제쳐두고 고령의 어르신 택시를 잡아주든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복무요원이나 직원에게도 자율성을 존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절은 자연스러운 태도가 되었고 자발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와 일을 하든 그 사람의 성향을 내 방식으로 규제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으로 일할 때, 특히 무방비하게 실수할 자유가 주어질 때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할 때 일보다 사람이 먼저가 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행정을 맡고 있는 내 일이 두 세배로 많아져도 잡무가 싫어서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을 규제하면 그 에너지가 결국 이용자들에게 전해졌다. 원칙은 필요하다. 하지만 서로간의 존중이 원칙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복지 시설에서 내가 얻은 작은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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