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by 최수현

“카페에서 일하기엔 나이가 많은 걸 압니다. 하지만 바리스타 자격증도 있고, 오랫동안 비서로 일하면서 전문적인 서비스 마인드를 갖췄으며, 오랫동안 일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정말로 오들오들 떨면서 말했다. 비서 면접볼 때도 이렇게 떨리진 않았다. 간절함에 비례하는 건가. 사장님은 빙긋 웃더니 내게 말했다.


“무슨 음료를 좋아하세요?”


“네?”


나는 커피의 종류를 다 외고 있다. 이 가게의 메뉴도 모두 먹어보았고, 맛이 훌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이곳을 선택했다. 하지만 내 취향에 대해선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전에는.. 에스프레소를 자주 먹었습니다.”


늘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니 느긋하게 커피를 마실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고함량의 카페인을 한 입에 털어 넣으며 아침을 시작하곤 했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하셨군요. 우리 가게 에스프레소는 어땠죠?”


“음, 초콜릿 맛이 강하면서도 시원한 산미가 있었어요.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보며 말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에스프레소를 시켰었다.

카페들을 돌아다니며 내가 일할 곳을 물색했으나 일하고 싶은 곳도 별로 없을뿐더러 대부분 이력서도 못 내봤다. 여기는 다른 카페들을 둘러보러 왔다가 지나가는 길에 발견했다. 배가 고파서 순댓국을 먹으러 지하철역 뒷골목을 들어왔는데 역사 바로 뒤 공터에서 발견한 의외의 카페였다. 첫눈에 반할 만큼 예쁜 곳이었고, 커피가 정말 맛있었다. 나는 한 달째 탐색만 하다가 알바 공고가 나온 것을 보고 이력서를 들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나쁘지 않았다라……”


나는 내가 실수한 것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제가 먹어본 에스프레소 중에서 가장 훌륭한 커피였어요. 다만 제가 사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사장님은 내게 편안한 면접이 되길 바랐는데 무안을 준 것 같다며 되레 미안해하셨다. 나는 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이십 대 후반 또는 삼 십 대 초반으로 보이고, 운동과 책을 좋아한다고 초반부터 말한 만큼 이지적인 분위기에 단단한 몸을 가졌다. 카페는 이층짜리 건물인데 온통 그림과 책으로 도배되어 있는 아기자기한 노란 건물로 근처 길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린다. 이런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저는 꼭 여기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이런 장소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이 아니라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인간적이고 따뜻한 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면 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


”꿈이 뭔데요? “


나는 내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장님의 따뜻한 기운이 있는 까만 눈은 진심으로 내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진심으로 그를 대하고 싶었다. 진검 승부다.


“동화 작가입니다.”


내 말에 사장님은 활짝 웃으시며 발치에 다가와 몸을 비비는 고양이를 끌어안고 말했다. 이 녀석은 길고양이가 아니라 여기서 키우는 나루다.


“난 꿈이 있는 사람이 좋아요. 합격!”


나는 얼떨떨해서 되물었다. 네??


“저는 꿈꾸는 사람들이 머무는 카페를 만드는 게 포부입니다. 함께 일하는 분들도 자신만의 꿈이 있으면 좋겠어요. 먹고사는 일은 아주 중요해요. 자기 힘으로 먹고살기 위해서 저도 카페를 차렸어요. 하지만 카페는 제 꿈이에요. 일은 현실적으로 막일일 때도 있지만 꿈이 있는 한 웃을 수도 있고 힘도 나요. 예진 씨는…”


사장님은 재빨리 이력서에 적혀 있는 내 이름을 확인하고 말했다.


“꿈이 있으니까 꿈을 꾸는 사람들을 이해할 거예요. 그렇죠?”


나는 긴장이 풀어져서 환하게 웃었다.


“네. 그럼요. “


”그 마음으로 음료와 손님들을 대해주세요. 그거면 돼요. 내일부터 나오세요. “


내가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사장님이 나를 불렀다.


“예진 씨!”


“네?”


“무슨 음료 드시고 싶으세요?”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사장님은 웃으며 덧붙였다.


“에스프레소는 생계형이었던 것 같아서요. 앞으로는 무슨 음료를 좋아하고 싶으세요?”


나는 이런 대화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저는.. 앞으로 카푸치노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좋아요!”



사직서를 낸 다음날 곧바로 법원에 가서 이혼 서류를 제출했다. 남편은 나에게 집을 가지라고 말했다.


“난 작은 집으로 이사 갈 거야. 여긴 늘 불편했어.”


남편은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그러시겠지. 소박한 여자에겐 사치스러운 애물단지일 거야. 나도 주고 싶어서 주는 게 아니야. 미진이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래. 그리고 우리가 살던 곳에서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고 너에게 주라더라고. 여자는 고양이 같아서 사람보다 집에 집착한다며 그게 예의라던데.. 당신은 길을 잃어서 잘못된 곳에 들어왔었나 보네. 전에 살던 시궁창으로 돌아가고 싶겠지!”


나는 입술을 깨물고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더 이상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팔고 새 살림에 보태.”


남편은 날 똑바로 바라보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난 준다고 말했고 번복은 안 해. 팔든, 말든 당신이 맘대로 해. 얼른 이 진저리 나는 집과 당신한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야.”


남편의 어깃장을 또다시 들으려니 머리가 아팠다.


“그래, 고마워.”


“내 짐은 주말에 정리하러 갈게.”


“그래.”


법원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지만 남편은 큰 걸음으로 앞서 걸으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차에 도착하자 그대로 타고 시동을 걸었다. 난 어차피 버스를 타고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그런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내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예진, 바보. 저런 사람이잖아. 이제 와서 뭘 기대해. 상냥함? 친구 같은 우정? 남에 대한 호의?’


마지막이니까 그저 ‘안녕’이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나는 남편이 끔찍하게 미웠지만 한 때 사랑했던 사람에게 인사도 없이 헤어지고 싶진 않았다. 나는 법원을 빠져나가는 차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차 앞을 막아서고 숨이 차서 씩씩대니까, 남편은 창문을 열고 어이가 없다는 두수 쳐다보았다.


”안녕. 이호준. 잘 가라고. 우리 인사 정도는 하고 헤어져야지. 미진 씨와의 결혼 정말 축하해. “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날 바라봤다. 나는 미친년 소릴 들을 각오를 하고 비키지 않았다.


”그래, 너도 잘 살아. 나랑 사느라 고생했다. “


그 말을 끝으로 창문이 닫히고 내가 비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지만 그는 가만히 있었다. 남편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걸 얼마나 싫어했는지를 생각하고 정신이 든 난 옆으로 비켜섰다. 차는 조용히 빠져나갔다.


나는 오늘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체크무늬 떡볶이 코트를 입고 나왔다. 그를 알기 전 내 삶을 상징하는 옷이다. 할머니가 내가 취직했을 때 직접 만들어준 옷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싫어해서 결혼 후 한 번도 꺼내 입지 못 했다. 이 옷은 예진 독립의 상징이다. 나는 모든 것에 제대로 마침표를 찍고 싶어서 그에게 굳이 인사도 건넸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준비했던 태극기를 주섬주섬 꺼냈다.


”예진 독립 만세! 예진 독립 만세! 예진 독립 만세! “


나는 셀프 동영상을 찍으면서 세 번 만세를 외쳤다. 주변에 아직 듬성듬성 서 있던 사람들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더니 간간히 박수를 쳐 주는 사람도 있었다. 난 그 사람들을 바라보며 씩 웃어주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법원을 나섰다. 눈물,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유 없이 몸이 떨리고, 그제야 내가 정말 혼자라는 게 실감이 났다. 난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찰 때까지 달렸다. 혼자란 걸 잊을 수 있을 때까지 달려야 했다. 그러나 결국 숨이 차서 멈춰 섰다. 그런데 혼자란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숨이 찼다. 나는 숨을 고르면서


아, 이런 거구나. 혼자란 게 이런 거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울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새로 만든 내 인스타그램에 ’ 예진독립만세 동영상‘을 올렸다. 날 알고 싶어서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기록해나 가볼 작정이다. 나는 결혼 후 SNS를 모두 없애야 했다. 남편은 사생활이 공개되는 걸 싫어했다. 그는 내 정체성을 소진시키며 그림자처럼 살게 했다. 나는 못나고 이상한 내 모습까지 모두 다 다시 알고 싶었다.

업로딩을 하고 곧바로 댓글이 달렸다. 나는 신기해서 클릭해 보았다. 부업을 하라는 광고였다. 어이가 없어서 혼자 웃었다.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사람은 일을 해야 사는겨. 먹고 놀기만 하면 소 되는겨.”


나는 이혼 후 집을 성남으로 옮겼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할머니한테 배워 온 대로 짐이 정리되자마자 일부터 구했다. 어릴 때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결혼 전에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었다. 그 생각에 카페 직원 자릴 찾아다녔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대부분 나이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오늘 가장 일하고 싶었던 카페에 취직하게 된 것이다.


‘잘했네, 우리 아가.’


”응, 할머니.”


나에겐 할머니뿐이었는데 결혼 후 할머니를 모시지 못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암선고를 받았을 때 참 많이 울었다.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할머니를 돌보겠다고 했지만 사실 그렇게 하기가 쉽진 않았다. 내 속사정을 다 아시는 할머니는


“아서라. 이서방 혼자 두고 뭔 별스런 짓이냐. 난 괜찮다.”


라고 날 달래셨고, 못 이기는 척 요양병원에 할머니를 모셨다. 그리고 한 달도 못 되어 돌아가셨는데 정말 많이 울었다.


취직 첫날 기념으로 할머니랑 내가 좋아하던 치즈케이크를 사 왔다. 우리는 특별한 날마다 치즈 케이크를 먹곤 했다. 이제 혼자이지만 습관대로 치즈 케이크를 앞에 놓고 초에 불을 붙였다. 나는 케이크를 먹을 때마다 초에 불을 붙이곤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매번 아이처럼 좋아하시며


”예진이 덕에 나는 맨날맨날 생일이여.“


하고 웃으셨다.


”이제 다시 매일매일 특별한 날이야,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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