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 씨! “
”네! “
우리는 레고 조각들처럼 손 발이 척척 들어맞는다. 이제 눈빛만 봐도 다음엔 뭘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은 점심시간이다. 인근 직장가에서 손님들이 정말 구름 떼처럼 몰려온다. 사장님의 커피 맛은 나만 인정하는 게 아니었다. 일층, 이층 할 것 없이 가득 차고, 야외도 북적북적하다. 불편할 텐데도 다들 마다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과 끼어 앉으면서까지 커피를 기다린다. 마치 커피에 목숨 건 사람들처럼 반드시 손에 컵을 쥐어야 안심하고 돌아간다.
새초롬하게 예쁘고, 키가 큰 미인 단골 지연 씨는 절대로 뛰는 법이 없다. 늘 우아하게 걸어서 우리끼리 귀부인이니 백작부인이니 하고 부르는 사람이었다. 한 여름에도 결코 땀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두 시가 다 되어서 숨을 헉헉대며 들어섰다.
”사장님, 커피요! “
우리가 모두 깜짝 놀라서 쳐다보았다. 평소의 완벽한 화장과 옷과는 거리가 먼 캐주얼한 모습이었다. 우리 표정을 이리저리 살피던 그녀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저 오늘 연차예요.”
지연 씨가 가고 피크 타임도 끝날 무렵에 사장님이 내려준 아이스 드립 커피를 마시면서 그를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사장님은 가게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나루의 등을 긁어주는 중이었다.
“왜 그래요. 반했어요? “
”네? “
나는 몰래 훔쳐보다가 들킨 것이 무안해서 버벅거렸다. 사장님은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나루에게 귓속말을 했다.
”우리 직원분이 드디어 너의 마성에 빠졌나 봐. 내가 네 등을 긁는 걸 어찌나 부럽게 쳐다보는지! 귀찮으면 네 매력을 탓해. “
그리고 혼자 껄껄 웃었다.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장님께 고마웠다. 나는 커피를 입에 갖다 대고 한 모금 마시면서
“커피가 최음제인 걸 알았어야 해. 나루 홀릭 신도 한 명 추가요.”
라고 말했다. 우린 마주 보고 웃었다.
사장님은 익숙하게 나루를 안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망설이는 날 격려하듯 바라보았다. 나는 손 끝으로 나루의 등을 살살 쓰다듬었다. 보드라웠다.
”처음이에요. “
”네? “
”동물이나 아기 같은 귀여운 존재를 가까이할 수가 없었어요. “
”왜죠? “
“익숙하지 않았다고 할까요. 무엇보다 제가 잘 웃질 않아서 절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장님은 의외란 듯 말했다.
“예진 씨가 안 웃는다니 뜻밖인데요? 나뭇잎만 굴러가도 웃잖아요.”
나는 기분 좋게 장난으로 눈을 흘기며
“제가 사춘기 어린애인가요.”
라고 말했다.
“웃는 건 좋은 거잖아요. 앞으로도 많이 웃어요.”
라고 대답하며, 뭔가 말하려다가 참았다.
“무슨 얘길 하려고 했어요?”
나는 궁금함을 못 참고 물었다. 사장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뭔가 결심한 듯 말했다.
“면접 때……”
“……”
“이전 삶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했잖아요.”
“네.”
나는 이전 삶에 대해 물어볼까 봐 긴장했다. 하지만 말 못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장님이 물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이 드나요? “
사장님은 애써 묻고 싶은 걸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손님들과 사는 얘기, 내밀한 속 사정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사장님 치고는 조심스러운 태도다. 나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내 모습이 생각나서 슬그머니 웃었다.
“제가 좀 모르는 게 많았죠.”
사장님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웃으며 말했다.
“외계에서 온 줄 알았어요.”
근무 첫날, 점심시간을 앞두고 나는 아직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청소를 시작했다. 창고를 뒤져 소독제와 걸레, 수세미를 들고 나오는 날 사장님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얼른 하라는 눈치라고 생각하고 모든 탁자와 의자, 계단 난간, 책꽂이, 바닥까지 광이 나도록 닦았다. 일주일을 그렇게 했다. 어느 날 사장님이 울상을 짓고 말했다.
”예진 씨, 카페에서 소독약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
”네? “
”깨끗한 건 너무 좋지만 하루 세 번씩 닦는 건 지나친 것 같아요. “
나는 오픈 시간, 피크 타임 이후, 퇴근 전마다 할 수 있는 한 청소를 했다. 나는 멋쩍어져서 조그맣게 말했다.
”도움이 될 줄 알았어요. “
”엄청 고마워요. 하지만 약간 강박적으로 느껴져요. 예진 씨의 스타일을 존중하고 싶지만 나루가 카페에 안 들어오려고 해요. “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모두 내가 청소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카페는 사람들이 깨끗하게 사용해서 그 정도로 청소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는……“
”네. “
”대리석 바닥이 있는 집에서 살았어요. 출근 전, 후로 매일 광이 나도록 닦아야 했어요. 거기선 그 일이 너무 싫었는데 나도 모르게 몸에 배었나 봐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미처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
”아니에요. 죄송할 건 없어요. 다만 예진 씨 말대로 이제 새로운 삶을 살기로 했으니까 여기서는 사람들이 뭘 느끼는지, 뭘 필요로 하는지, 내가 좋아하는 건 뭔지 관찰해 봐요. 그리고 습관이 아니라 마음을 따라가 봐요. “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 로봇이 된 기분이었다.
“새로운 삶이죠.”
사장님은 그날부터 내게 일을 가르쳐 주셨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관찰하면서 엄청난 재능을 발견했다며 청소 못지않게 바리스타로서도 출중할 거라고 너스레도 떨었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면서 한 마디씩 말을 걸도록 시켰다. 그들에게
”좋은 시간 보내세요. “
라고 말이다. 그리고 손님들이 가실 때,
”행복하세요. “
라고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처음엔 어색했지만 인사를 건넬 때 사람들의 웃는 얼굴과 내 목소리로 인해서 오히려 내가 기운이 나는 걸 느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인사 외에도 짧은 대화를 하게 되었고 단골들과는 서로 반가워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렇게 이곳의 일원이 되었다.
”제가 첫날부터 지독하게 청소만 했죠. 저는 대리석으로 된 성에서 결벽증 왕자의 감시를 받으며 밤낮으로 청소만 했어요. 청소가 잘 되어 있기만 하면 집이 편안했어요. 그렇게 오 년을 살다가 얼마 전에 독립했어요. “
”독립이라면……“
”이혼이요. “
”아……“
”나쁜 마법사와 사는 동안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과 웃는 법, 사랑받는 방법을 다 잃어버렸어요. 지금은 탈출했지만 심장과 머리는 텅 비었고 이제부터 날 찾아나가야 해요. “
“마법에 걸려 있었군요! 좋아요. 착한 마법사를 찾아왔으니 이제 자유로워질 거예요. 그는 예진 씨를 지지해요.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사장님 덕분에 많이 웃네요. 늘 고마워요.”
갑자기 사장님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이고. 착한 마법사님은 당연히 나루님이죠! 우리 모두 나루님 덕분에 자유로워진 거랍니다.”
착한 농담. 나는 감사하다며 나루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사장님을 마주 보았다. 사장님은 한참 날 탐색하듯 쳐다보더니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착한 마법사의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