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by 최수현

내가 살게 된 곳은 남한산성 길목의 주택가이다. 남편이 준 아파트를 팔고 나면 인근의 신축 아파트를 얻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삶의 치트키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살려고 하는 소박한 삶에 어울리는 작은 빌라를 구했다.

멀리 산이 보이고, 지하철역에서 멀고, 저렴한 시세의 낡은 동네는 할머니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했다. 내가 이호준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할머니는


”그러면 네가 살아온 삶은 다 잊어라. 사람은 자기가 머무는 장소와 닮아가야 하는 법이다. 할머니 말 서운하게 듣지 말고 할미도 잊어라. “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의 의중을 그땐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안다. 자신이 속한 장소에서 겉도는 사람은 불행하다. 내가 그랬다.


“예진아, 혹시 못 견디고 돌아오게 된다면 말이다. 돈이 네 삶을 결정하게 하지 말고 네가 네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할머니 나 돈 보고 호준 씨랑 결혼하는 거 아니야. “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쥐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불쌍한 내 새끼. 네가 세상 이치를 너무 몰라서 할미는 애가 탄다. 살면서 이서방 너무 나무라지 말고 네 애간장이 끓으면 언제든지 돌아와라. “


현실적이고, 시니컬한 할머니는 결혼을 앞둔 나에게 그런 말을 들려주었다. 내심 신데렐라라도 된 듯 들떠 있던 나는 ‘재투성이 소녀에게 왕자님은 가당치 않다.’는 새엄마의 잔소리처럼 들려서 입을 삐죽거렸었다.


”살아보니 할머니 말씀이 다 맞네……“


화려한 삶, 모두가 부러워하는 결혼이 내게 허락한 행복은 ‘이전의 삶, 진정한 나를 잊어야 한다.’는 단서를 걸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나는 비서로 일하는 직장에서처럼 집에서조차 사무적으로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아파트를 판 돈을 적금으로 묶어두었다. 그리고 내 퇴직금을 가지고 내가 살아갈 규모에 맞게 삶을 만들어 나갔다.

그 돈이면 일을 안 하고 여행을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할머니라면 부초처럼 살지 말고 내가 살고 싶은 장소에 소속된 사람이 되라고 말하실 것이다. 온전히 내 힘으로 말이다.


내가 구한 빌라는 주인이 살던 곳이어서 겉은 낡았지만 내부는 깨끗하게 리모델링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기로 했다. 부모도, 가족도,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곳도 없지만 내가 만들어나가는 내 삶이 내 뿌리가 되어준다는 생각에 양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난 잘 살아갈 것이다.


출근 전, 인스타그램을 켰다. 아직 내 개인적인 일기장에 불과하다. 그런데 내게 팔로우 요청이 들어와 있었다. 총 세 건이었다. 하나는 카페 사장님, 또 하나는 비서실에서 같이 일했던 도연 씨, 다른 하나는… 김지현. 상무님이었다.


나는 동명이인인가 해서 김지현 씨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듯한 풍경 사진만 올라와 있었다.


나는 먼저 두 사람의 팔로우 요청을 받아들이고 맞팔을 한 다음에 김지현 씨의 인스타그램을 놓고 잠깐 망설였다. 옛 직장 상사의 호의일까? 아니면 그냥 타인? 너무 지나친 생각이라며 머릴 흔들어 떨쳐버리고 그저 반가운 마음으로 그 요청을 바라보다가 마음 가는 대로 하기로 했다. 승인. 그리고 맞팔을 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누구든. 현실에서 친구 하나 없는 나에게 SNS에서 친구가 셋 생겼음.


메시지가 날아왔다. 클릭해 봤더니 카페 사장님이었다.


”예진 씨! 인스타그램이 흥미진진하네요. 예진독립만세 동영상을 보고 하트 만개 누르고 싶었는데 그런 기능이 없어서 메시지 보네요! 예진 씨 짱 멋져요! “


참 밝은 사람이다. 메시지에서 사장님의 목소리와 너털웃음이 곁들여진 느낌이 들었다.


“굉장한 효과음이네.”


있지도 않은 효과음이 실제로 재생되는 듯하여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바로 답장을 썼다.


”하트 만개 접수함. 감사합니다. “


그런데 내 동영상을 보니 하트가 두 개 있었다. 사장님과 김지현. 어, 상무님이 업무 시간에 인스타그램을 할 분이 아니신데……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왠지 모를 아쉬움이 들었다. 나는 김지현 씨의 인스타그램에 다시 들어가 봤지만 새로운 사진은 없었다. 그냥 나오려다가 한강에서 저녁 무렵에 찍은 사진에 하트를 누르고 나왔다.



”예진 씨, 일찍 출근했네요. “


”카푸치노 생각나서 얼른 왔어요. 사장님, 저 한 잔 내려 먹을게요. “


”당연하죠. 커피 들고 이층으로 오세요. 지금은 손님 별로 없으니까 수다나 떨죠. 나루 여왕님 모시고 기다리겠습니다. “


지난밤 눈이 좀 내려서 카페 지붕과 테라스를 하얗게 덮었다. 곳곳에 고양이 발자국이 찍혀 있다. 카푸치노를 들고 일층 야외에서 담배를 하나 피운 후 이층으로 올라갔다. 사장님과 나루 여왕님이 테라스에 나란히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나루 옆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카푸치노를 놓고 그들이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 위에 까치떼가 놀고 있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신다고 해서 어릴 때부터 까치가 울면 설렜어요. “


“오, 손님이 오던가요.”


“아니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방문처럼 선물을 못 받을 줄 알면서도 늘 변함없이 설렜어요. 그러다가 한 번 정말 반가운 사람이 온 적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누구죠?”


“엄마요. “


“아, 예진 씨는 할머니가 키워주셨다고 했죠”


“네, 엄마는 날 낳아주기만 하고 키워주진 않았어요. 할머니와 셋이 살았어요. 하지만 할머니가 절 도맡아 키우셨고, 엄마는 책만 읽었어요. 책을 엄청나게 좋아하셨거든요. 그러다가 엄마가 재가할 때, 제가 열 살이었는데 절 할머니에게 맡기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었는데……


“나는 삶의 어려움을 극복할 만큼 강하지 못해. 그래서 보호자가 필요해서 결혼하는 거야. 널 데리고 가지도 못한단다.”


“왜요, 엄마?”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지 못하거든.”


그렇게 말하고 엄마는 담배를 피우며 먼 곳을 바라봤어요. 할머니는 우리 두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고 집에 들어가 계셨어요.


“엄마, 내가 말 잘 들을게요.”


“아니, 너답게 살아. 아이답게 말이야. 울기도 하고, 떼도 쓰고, 골도 부리고, 말썽도 피워. 그러라고 할머니에게 맡기고 가는 거야. 너는 엄마처럼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선 안 돼.”


사장님은 정말 특이한 분이시네요라고 중얼거렸다.


“네, 특이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약했죠. 너무나 마음이 심약해서 결국 삶을 견디지 못하셨어요. 제가 수능을 본 후였어요. “



그날도 까치가 울었어요. 그리고 반가운 손님이 정말 찾아왔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박명진 씨의 남편 되는 사람입니다. 따님 되시는 이예진 양이 맞으시죠? “


그때, 저 혼자 있었어요. 수능을 치르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라 집에 있었어요. 할머니는 동네 마실을 나가셨고요. 동네 할머니들이랑 동대문에 가셨을지도 몰라요. 어쨌든 그날은 혼자였어요. 그날도 눈이 내리고, 까치가 울어서 전 혼자 설레고 있었어요.


그분은 키가 크고 선량하게 생긴 분이셨어요. 잿빛 코트에 파란색 모직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있다면 이런 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멋있으셨어요. 작은 상자를 들고 계셨죠.


”네, 제가 예진인데요. “


그분은 함께 좀 걷자고 했고 우리는 인근의 초등학교 운동장을 세 시간은 함께 돌았던 것 같아요.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사장님은 내게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했어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슬프지는 않았어요.”


“왜죠?”


“엄마를 아니까요. 엄마가 이제야 자유로워졌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분에게도 그렇게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제야 눈에 잔주름이 지도록 웃으시더라고요. 맞다면서요.”


“그분이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으셨나요?”


“아뇨. 너무나 사랑하시는 게 느껴졌어요. 가슴 아플 정도였어요. 어머니는 암이었대요.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라 오래 못 버텼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저에게 엄마를 주셨어요. “


”엄마를요? “


”유골함이요. 엄마는 죽고 나면 나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대요.”


“아……“


사장님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손님이 왔다며 아래를 가리켰다.


“저, 내려가요?”


사장님은 고개를 세차게 젓더니,


“제가 갔다 올게요. “


라고 하더니 십 분도 안 되어서 손님을 보내고 돌아왔다. 손님과 수다 떨기 좋아하는 사장님으로선 기록적인 속도다.


“예진 씨 기분이 어땠을지 생각하느라 커피를 어떻게 내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저한텐 익숙한 기억이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길 꺼냈는데, 괜히 신경 쓰이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사장님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저도 그냥 예진 씨 추억담 듣고 있어요. 잘 듣고 있으니까 얘기하셔도 돼요.”


사장님은 누구한테나 친절하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정말 특별한 호의처럼 느껴졌고 고마웠다. 나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머니 유골함을 받았단 이야기까지 했죠.”


“네.”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난 후 혼자 한강에 갔어요. 저녁쯤 도착해서 컵라면을 하나 먹고 사람들이 뜸해지길 기다렸어요. 그리고 엄마 유골함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어요. 왜 이제야 돌아왔냐며 투정도 부리고, 화도 냈는데 그렇게 울고 나니까 속이 시원해지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와서 할머니에게 유골함을 보여드렸어요. 할머니는 먹먹한 눈으로 저를 보시며, 미처 이야길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미 알고 계셨던 거예요. 저 고3이라고 엄마가 입시 끝날 때까지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나 봐요. 엄마다운 생각이죠.

엄마를 납골당에 모신 후 종종 찾아갔어요. 지금은 할머니와 함께 모셨어요. 저의 고향은 그곳이에요. 왠지 슬픈 이야기 같지만.. 저는 이 이야기가 그냥 좋아요.”


“왜요?”


“엄마가 마지막엔 나에게 돌아왔으니까요.”


사장님은 내 말을 음미하는 듯 생각에 잠긴 얼굴로 까치들을 바라봤다.


“떠났어도, 돌아오면 되는 건가요……?”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언제나.”


한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사장님이 조금 침울해진 것 같아서 나는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제가 너무 청승맞았죠?”


라고 말하고 사장님을 바라봤는데, 그가 울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사장님……”


”누군가를 한없이 기다리는 기분 저도 알아요. 하지만 돌아오면 그렇게 행복하다는 것은 처음 알았어요. “


”그분은 돌아오지 않으셨군요. “


”아직도… 기다리고 있어요. “


나는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다. 우리는 시계를 들여다보고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손님들 오실 시간이네요. 제 이야기는 다음번으로 미룰까요? 참, 제가 운 건 비밀이에요. 예진 씨 오해할까 봐 예고편만 들려주자면 제겐 아픈 형이 있답니다. 정말 똑똑하고 좋은 형이었는데 지금은 정신병원에 있어요.”


내가 미처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사장님이 익살맞게 웃으며 말했다.


“엄청 스펙터클 하겠죠? 기대하세요!”


나는 그만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서로의 웃음이 때론 위로가 된다. 이런 일을 겪어도 다시 웃고 살 수 있다는 증거.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상처를 이야기하며 웃으면 되려 어색해한다. 그러기에 사장님의 웃음과 내 웃음이 서로에게 얼마나 고마웠을지, 그 순간 우주에서 몇만 광년을 헤매던 내가 드디어 어딘가에 안심하고 내려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마음을 눈치챈 듯 나루가 내 발을 감싸며 가르랑 거린다. 나는 몸을 숙이고 나루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나루 여왕님, 저도 이제 백성입니다. 시민권을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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