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by 최수현

아침부터 하늘이 심상치 않다. 구름을 잔뜩 품은 하늘은 아주 낮게 내려앉아서 곧 눈이 내릴 것만 같다. 오늘은 카페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 주 목요일은 휴일이다. 평일 근무라 주말에 쉬는데, 사장님 개인 사정으로 하루 더 출근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대화하다가 형의 존재를 알게 된 후로 사장님은 스스럼없이 자기 얘길 하기 시작했다. 이 날은 정신병원에 있는 형이 외출 나오는 날이라고 했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까치 사진과 손님 이야기를 업로드하고, 김지현 씨의 인스타그램을 한 번 더 들어가 본 후 나왔다. 이 사람은 내 글이 올라올 때마다 하트를 누른다. 주로 아침에 글을 쓰다 보니 결국 상무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늘은 뭘 할까. 집안 청소를 해도 좋고,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습관처럼 커피 생각이 났다. 그리고 글도 쓸 겸 노트북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사장님은 카페의 보조키를 주면서,


”글을 쓰신다고 하셨죠. 작업실이 필요하거나 커피가 생각나면 언제든지 카페에 오세요. “


라고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내가 너무 과한 호의라며 망설이자,


”예진 씨 말고도 그림을 그리는 단골손님에게도 보조키를 줬어요. 그분은 웹툰을 그리는데 저보고 심야에도 카페를 열면 안 되냐며 꼬장을 부리더라고요. 그래서 옛다 하고 보조키를 드렸더니 최근에 네이버 작가 데뷔도 하셨더라고요. 제 또 하나의 보람이죠. “


하고 웃었다. 나는 정색을 하고 사람을 그렇게 믿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나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카페의 주인은 나루 여왕님입니다. 예술가들의 후원자시죠. “


처음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장님은 그 뒤로도 그 이야길 많이 했고, 언젠간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족처럼 살고 싶다는 이야기도 자주 했다.

형에 대해 알게 된 후로 두 사람이 공동생활가정에서 자란 사실도 듣게 되었다.


“저희 형은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썼어요. 그리고 특이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카페를 하자는 것도, 돈을 많이 벌어서 예술가들을 후원하겠다는 생각도 형의 생각이에요. 저보다 먼저 자립한 형은 대학도 안 나왔으면서도 돈도 많이 벌었어요.

공동생활가정에서 독립한 후 나쁜 유혹에 빠지는 애들이 많아요. 정착자금으로 받은 돈을 탕진하고 유흥가로 흘러들어 가는 애들도 많고, 노숙자가 되는 애들도 있어요. 보호자 없이 어른이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저희 형은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판매실적이 가장 좋았는데, 한 번 고객이 되면 그 후로 모든 보험을 형에게 맡길 정도로 신뢰를 얻어서 전국에서 최고 보험실적을 내기도 했어요.

십 년 동안 형은 꽤 많은 돈을 모았어요.”


“십 년이요?”


“제가 자립하려고 나왔을 때 형은 이십 대 후반이었어요. 우리가 같이 산 시기는 몇 년 안 돼요. 그렇지만 형 덕분에 저도 나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사회에 정착할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형과 저는 카페를 준비했어요. 그리고 형이 자립하고 십 년 되는 해에 여기에 우리 카페를 열 수가 있었어요.”


“대단하시네요. “


”네, 형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런 형이 아프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


”무슨 병이었는데요? “


”조현병이요. “


그들의 불행은 형이 처음부터 심각하게 아프면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온 형은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고 말하고는 자기 통장과 보험들을 사장님께 주고, 자신을 정신병원에 넣어달라고 말했다.


”형이 정신병원을 왜 가! “


”소리가 들려. “


똑똑한 형은 자신이 이상해진 것을 느끼고, 병식도 있었지만 조현증의 포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일을 그만둔 후 급속도로 나빠진 형은 혼자 웃고, 혼자 중얼거리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현실과 자신의 병을 구분하려고 애를 쓰며 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밖에서는 정상인 척 무척 애를 썼다. 그걸 보다 못한 사장님은 결국 형의 소원대로 병원에 보내서 치료를 받게 했다.


”벌써 오 년 이에요. 형은 곧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병원에서 나오질 않아요. “


“그래도 형은 날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려요.

오전에 데리러 가서 같이 나오면 먼저 형이 좋아하는 순댓국으로 이른 점심을 먹어요. 그리고 병원 앞에 있는 노래방에 가요. 내리 두 시간을 불러요. 그래야 스트레스 해소가 된대요. 그러고 나면 서점에 가서 형이 볼 책을 좀 사요. 그러면 두 시 정도 돼요. 저는 형에게 카페에 가자고 말하지만 형은 매번 다음에 간다고 그래요. 그리고 병원으로 돌아가버려요. “


결국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도, 온 세상도 새하얗게 눈이 내린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발자국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뽀드득거리는 눈 밟히는 소리가 기분 좋게 따라온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행복하다는 것을 형이 알아주면 좋겠어요. 더 이상 똑똑하고, 돈 잘 버는 형이 아니라도 상관없어요. 그냥 같이 있고 싶어요.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그런 관계가 있어요. 형은 내게 그런 사람이란 걸 만날 때마다 이야기해요. 그러면 형은 매번 조금만 기다리라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다 나을 거라고 말하고 웃어요.

공동생활가정에서 성인이 되길 기다릴 때도 날 데리러 오지 않는 형이 야속했어요. 나중에야 알았어요. 돈을 모으느라고 고시원에서 살았더라고요. 정말 지독하게 아껴서 돈을 모았더라고요.

형은 우리의 꿈을 정말 이루고 싶어 했어요. 기댈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대요.

그거 아세요? 형이 왜 정신병원에서 못 나오는지 말이에요. “


나는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엄마, 아빠가 말을 건대요. 형은 이제 쉬고 싶은 거예요. 사실은 엄마와 아빠가 누구보다 필요했던 사람인 거죠. “


나는 그 말을 듣고 심장이 찌르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형님 되는 분에게도 부모님이 돌아오신 거네요”


“맞아요.”


비록 완전한 희망은 세상에 없더라도 사람은 생각보다 행복하다. 슬픔 한편 어느 그늘엔 가에서 조차 이렇게 희망이 싹트기도 한다. 그게 덧없는 것이더라도 말이다.


카페에 도착해서 카푸치노를 내리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불을 켜고 창가로 다가가보니 테라스에서 나루가 놀고 있다. 나는 손을 살짝 흔들었는데 나루 표정이 데면데면하다.


“아, 내가 나루 여왕님 식사 당번이지!”


내가 출근하지 않는 날을 사장님이 챙겨주지만 오늘을 그럴 경황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역시 나루 밥그릇이 텅 비어 있다.

밥을 줬더니 대번에 표정이 풀어지고 좋아서 가르랑거린다.


노트북을 꺼내고 전원을 켰다. 내 바탕화면에서도 나루가 웃고 있다.


”어……? “


인스타그램에 메시지가 와 있어서 열어보니 김지현 씨였다.


”새로 온 직원은 아이스크림을 잊어버리네요. “


상무님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비서진만 안다. 임원회의가 끝나면 방으로 아이스크림을 가져다 드리곤 했다. 역시 김지현 씨는 상무님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답장을 보냈다.


“도연 씨에게 말해둘게요, 상무님.”


잘 지내시는지, 나는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이란 공간이 회사보다 친근한 공간 같이 느껴져서 내가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을 아꼈다.

나는 생각난 김에 도연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연 씨, 저 예진이에요.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예진 씨, 오래간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네, 잠깐 통화 가능해요.”


“갑자기 상무님 아이스크림이 생각나서 전화드렸어요. 아이스크림 떨어지면 상무님 침울해 지시잖아요. 새로 오신 분이 잘하시겠지만 상무님이 워낙에 말이 없는 분이라서 아직 커밍아웃 안 하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도연 씨가 좀 전해줄 수 있을까요?”


핸드폰 너머로 잠깐 침묵이 흘렀다. 나는 내가 주제넘었나 싶어 약간 후회가 되었다. 그런데 도연 씨는 의외의 이야길 꺼냈다.


”상무님 그만두셨어요. 예진 씨 그만두고 얼마 안 되서였을 거예요. 소문으로는 사회복지시설을 하실 거라는 얘기가 있었어요. 꽤 신빙성 있는 이야기인 게 저의 상사님 사담에서 나온 이야기예요. 농담 같은 분위기였지만요.”


도연 씨는 소문을 잘 안다. 하지만 비서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는 것뿐이고 대부분의 소문은 부사장님에게서 나온다. 만담가에, 남의 이야기 좋아하기로 워낙에 유명한 부사장님은 아는 것은 뭐든지 떠벌여서 역시 낙하산이란 뒷담을 듣곤 한다.


“아, 네, 도연 씨. 고마워요, 알려줘서요.”


도연 씨는 그만 끊어야 한다며 다음에 한 번 만나서 밥이나 먹자고, 연락한다고 그랬다. 나는 그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건성으로 네, 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상무님이 그만두셨다고?


인스타그램 알람이 울린다. 상무님이었다.

메시지를 열어보니


“내 소식을 듣겠군요. “


와 웃는 얼굴 이모티콘이었다.


창 밖에 까치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새로운 소식을 물어다 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다.

메시지창을 열고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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