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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꽃 Apr 22. 2024

교과서 같은 역사 이야기 책

유시민의 역사 이야기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유시민)


초판이 1994년에 발행되었으니 30여 년 전의 기록이다. 표지 뒷면에 실린 유시민 작가의 얼굴이 엄청 젊다. 제목에서부터 그의 스타일이 보인다. 뭐라고 강요하지 않고 자신만의 분위기로 스스럼없이 말하는 성격이 느껴진다. 그가 그의 머리로 생각한다는 역사 이야기가 궁금하여 아주 오래전에 쓴 글이지만 살짝살짝 틈틈이 넘겨보았다.


언제부터인가 역사 이야기가 재미있어졌다. 너무나 모르고 모름에도 불구하고 읽기를 거부해 왔던 역사 이야기는 이덕일의 '한국통사'를 만나면서 거부감이 날아갔다. 책은 자기가 읽고 싶은 대로 찾아서 읽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으면서 역사책은 늘 편식했었다. 역사도 읽어야 하고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90%를 빼고 그 10% 내에 있더라도, 읽어야 하는, 읽을 수 있는, 원하는 역사책은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에서 정리한 역사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고 알고 있다. 식민사관의 역사가 90%를 차지한다. 한사군의 반도설이나 일본이 한반도에 문화를 전수했다는, 고대 기록 어디에도 없는 임나일본부설을 실은 역사책이 싫었다. 그냥 외면하고 싶었던 역사책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올곧은 역사학자들이 있고 사료를 바탕으로 주장하는 책이 많았는데 말이다.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는 8장까지 나눠져 있다. 1장에서는 믿어서는 안 될 역사, 2장 신화에서 역사로, 3장 과학으로서의 역사, 4장 계급투쟁의 역사, 5장 민족사의 발견, 6장 역사에서의 우연과 필요, 7장 영웅과 대중, 8장 그래도 믿어야 할 역사다. 젊었던 저자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역사 이야기를 하기에 조금 수줍었거나 만인들에게 여지를 조금 주고 싶었을까. 단서를 달았다. '내 머리로 생각하는'이라고.


'국가란 무엇인가'도 썼고 '어떻게 살 것인가'와 '나의 한국현대사'가 그 책 이후에 나왔다. '21년에 나온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지금도 인기가 많고 노장들조차 그가 너무나 말을 잘해서 싫다고 할 정도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8, 90이 되어도 손자 손녀 손을 잡고 진보 쪽에 서겠다고 하던 말이 기억난다. 진보는 공부를 해야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 유시민이 젊은 시절에 아주 쉽고 정갈하게 쓴 역사 이야기가 학창 시절에 정설로 믿었거나 어렴풋이 알았던 일을 사실 설명을 달아가며 이야기한다. 교과서처럼.


첫머리 글이 '역사란 무엇인가'인데 마지막장'역사의 진보란 무엇인가'와 '심판하지 않으면 진보도 없다'는 글이 있었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로 시작하여 '이야기하는 사람'이 '다시 말해 역사가가 자기의 기분이나 희망, 나름의 세계관이나 이해관계에 맞추어 꾸며 냈을 가능성을 배제할 없다'라고 했다. 또 '비판적인 눈으로 역사를 살피기만 하면 역사가들이 날조하거나 창작한 사례를 도처에서 찾을 있다'라고도 했다. 재미를 확 당겼다. 


'묘청과 김부식'에서는 우리가 배운 '묘청의 난'과 달랐다. 단순한 역적의 난이 아니었다. 김부식은 묘청의 난을 진압하고 크게 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렸고 '삼국사기'를 편찬하지만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소홀히 기재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조선 역사상 일천 년래 제1대 사건으로 묘청의 난을 꼽았는데(1925년 동아일보에 발표) 수도를 북벌에 유리한 서경으로 옮기자고 한 것으로 묘청은 칭제북벌론의 주창자였다고 한다. 김부식 일파가 승리함으로써 이후의 조선 역사는 보수적 사대주의적 유교사상에 정복당했음을 이야기한다.


그럼 마지막장의 '역사의 진보란 무엇인가'에 적힌 내용을 보자. '역사의 심판을 기대하는 것은 곧 역사의 진보를 믿는 것이다. 진보가 없는 역사에서는 오직 변화만이 있을 뿐 심판은 없다. 그러면 진보란 무엇인가?' '진보는 추상적인 관념이다.' '진보를 믿는 것은 자기가 당면한 과제를 인식하고 불합리한 사상과 제도를 고쳐 나가는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이런 말도 있다. '문명의 수준과 인간이 지향하는 이념적 목표가 발전하면 과거의 사실이 지닌 의미도 발전하고 그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도 발전한다'라고.


'역사를 만드는 것은 역사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만드는 것이며 오늘의 역사는 오늘을 사는 사회적 인간이 짊어지고 가는 삶의 일부이다.'라고. '역사의 심판도 후세의 역사가가 아니라 인간이 실천을 통해 이룩하는 사회의 변화가 내리는 것이라고, 지난날의 일그러진 역사를 단호하게 심판하지 못하는 민족의 미래에는 진보도 없다.'라고 했다. 얼마나 예리한 판단인가.




책머리에 저자는 평범한 독자나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역사책을 쓰고 싶었노라 했다. 전문 역사가가 쓴 책만이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격려에 용기를 얻었노라, 자신이 보낸 20대에는 독재권력과 싸웠고 민중의 힘과 역사의 진보를 믿고 의지했었기에 역사는 우리 삶의 일부라고, 그래서 역사 이야기를 하고 싶었단다.


더 나은 미래를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무한한 가치를 지닐 것이라고, 과거의 일에 비추어 봄으로써 현재를 더 깊이 이해하고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으며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를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이야기를 더 따라가게 했다.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데 반드시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란다. 역사책을 따라가면서 저자의 말대로 예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게 되고 사실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글들이 여느 소설보다도 더 재미있었다. 금을 캐는 느낌이랄까. 고마움도 그만큼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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