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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꽃 Jun 10. 2024

필요하면 부적이라도 쓰라던 말

마을굿(별신제)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 - '巫敎'(최진석) 


승진 시험을 준비하던 때다. 시험을 몇 주 앞둔 날 강사님이 뜬금없는 말씀을 하셨다. 옷도 한 벌 사 입고 신도 사고 부적도 쓰고 싶으면 사서 지녀라 했다. 모두들 우하하 웃었다. 미신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0.2%라도 기운을 모으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 들었다.


 '무교(巫敎)'라는 책을 읽었다. 땅이나 건물을 사고팔 때나 신년 운수를 보러 사람들은 철학관이나 점집을 찾는다. 이 책을 펼치면 누구나 한달음에 읽게 될 것 같다.


정확한 제목은 '巫敎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 신앙'이다. 2009년에 1쇄가 발행되었고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를 지낸 최준식 님이 썼다. '巫'자는 '무당 무'자다. 솔직히 놀라움과 고마움 비슷한 느낌이다. 중국에는 도교가 있고 일본에는 신도가 있는데 두나라는 모두 권력체제 안에서 인정하고 있으며 누구도 미신이니 우상 숭배니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단다.


수년 전 유행하던 드라마가 생각났다. 상위 1%의 부자들이 유일하게 가서 고개를 숙이는 데가 '무속인' 앞이라 했다. 재력으로 그 누구도 무서울 게 없는 사람들이 무속인 앞에서는 여지없이 엎드려 절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풍자겠거니 했는데 책을 읽는 내내 사회 전반에 남은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왠지 마음이 놓이는 이유는 뭔지.




우리의 전통 종교 중의 하나이니 근본 신앙으로 인정해서 무교를 우리 문화 발전에 유용하게 쓰자는 말씀이다. 안향이 들여온 주자학은 동양의 가르침 중에서 배타적인 면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 주자학이 조선왕조의 국시가 되면서 불교마저 저등 한 것으로 내려쳐지고 수천 년을 이어온 고유 신앙은 미신이 되었다고 한다.


여호와- 신부 목사 - 신자가 있으면 부처- 승려 - 신자가 있고 신령 - 무당 - 신자가 있으니 구조는 비슷하다. 그러나 무교는 경전이 없고 조직이 없다. 점을 치거나 부적을 쓰고 치성(비손)을 드리고 치성보다 더 큰 단계가 굿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던 말처럼 이 굿은 그 절차와 단계가 어마어마했다.


별신제는 마을 굿이고 단오제도 풍어제 성격의 별신제란다. 하회 별신굿이나 은산 별신굿은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이런 마을 축제들 중심에 항상 무당이 있었단다. 이 굿은 열두 거리가 연행되는데 각 거리마다 의상을 바꿔 입고 춤을 춘다. 일인 뮤지컬과 비슷하고 젓대(민속대금)와 피리, 해금으로 장단을 맞추었으며 수천 년의 전통 속에서 발전을 거듭해 완성도가 높은 종교 의례가 되었단다.


한국의 무교는 종교발달사적으로 초기에 가까운데 불교나 그리스도교 같은 종교가 나오기 전의 단계라 본다. 만물에 인격이나 신격을 부여해서 신봉하기에 애니미즘적인 신앙에 가깝다고 한다. 한국 무교의 특징으로는 '선악의 개념이 분명하지 않은 점'과 '신령들 사이에 위계적인 질서가 명확하지 않은 점'이라 했다.


중국에는 많은 도교사원이 있고 많은 도사들이 있으며 종교로서 확실한 체제를 갖추고 있단다. 일본의 기층 종교인 신도는 자식이 태어나면 신사에 가서 신고식을 올린단다. 한국 문화의 기층에 흐르는 고유 종교는 무교임에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한국인은 철저하게 미신으로 매도한다고 했다.


남성 중심적인 경향이 강한 주자가 집대성한 주자학의 입장에서 볼 때 여성이 중심 역할을 하는 무교는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였을 것이고 하여 저속하다는 의미에서 '속'자를 붙여 무속이라고 했을 것이라 한다. 조선조에 여성들에게는 이 무교가 절대적인 의지처였을 것이라 하며 어떤 종교 의례에도 여성들이 몽땅 점유해 버린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보는 모습이라 했다.


이 무교에 속한 인구 통계가 어마어마했다. 판소리는 굿판에서 악사들이나 무당들이 노래하던 것이 발전한 것이라 한다. 사물놀이는 농악에서 나온 것이고 농악은 마을굿을 할 때 등장하는 것이다. 살풀이도 굿판에서 나왔다.


무엇보다 마음이 찡했던 부분은 한국인의 신명들인 놀이문화를 소개할 때였다. 바로 '음주가무'다. 한국인들은 자유분방한 성향으로 질서 속의 비 질서를 지향하는데 이게 바로 술과 노래로 나타났다. 굿은 시작부터 끝까지 노래와 춤으로 되어 있어 가무는 신과 교통 하기 위한 종교적인 수단이라고 말했다.


원시 한국의 주요 종교로 무교는 불교와 유교가 들어오면서 기층으로 내려갔단다. 불교, 그리스도교, 모두 신자들에게는 기복신앙이다. 사람들이 이른바 고등종교를 신봉해도 여전히 자신만의 안경을 끼고 주술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데 거개의 사람들은 조직과 권력을 가진 다수가 믿는 신앙을 그냥 받아들인다고 했다. 놀라웠다.


무형문화재로 10개 이상의 마을굿(별신제)이 지정되었고, 이 마을굿(별신제)은 유네스코에 세계적인 구전 무형 걸작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지역의 특수성뿐 아니라 세계적인 보편성을 띤다고 한다. 한 번쯤 읽어보놀라울 '무교'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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