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후반, 처음 대학에 발을 디뎠을 때, 학보사에서 새내기 기자 모집을 하고 있었다. 당장 신청서를 냈다. 이공계열 학생의 드문 지원이었다. 상식 필기시험을 치고 면접을 두 단계 실시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응시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전 학년 장학금을 준다고 했다. 잴 것도 없었다.
넓은 강의실에서 어둑해질 때까지 고등학교 때 본 시험지 같은 종이를 받아 적었다. 그런데 통과였다. 1차 면접에 갔다.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뭔가 주제를 줬다. 먼저 이야기하고 끌어가는 사람이 유리해 보였다. 그래도 나서진 못했다.
두 번째 면접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앉혀 놓고 선배기자들이 질문했다. 같이 면접을 본 친구는 국문과 학생이었다. 아는 것도 많고 말도 잘했다. 선배들의 질문과 그 친구의 답변을 듣고 배우고 나왔다. 결과는 최종 불합격. 다른 건 다 잊었는데 그날 두 번째 주제는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시몬 보봐르 여사가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그 말을 어찌 생각하는지 말해보라'는 거였다.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도 몰랐으니대답은 얼마나 허황되었겠는가.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페미니즘의 선구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보봐르 여사는 1949년에 출간한 책 '제2의 성'에서 여성이 어떻게 사회적 억압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분석했다. 여성의 억압이 사회에서 형성된 것으로 설명한 말이다.페미니스트는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존엄하다고 믿으며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 맥락을 이해하던 중에 이번에는 총여학생회에서 편집기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났다. 역시 장학금을 준단다. 지원동기에 이렇게 적었다. '대학에 총학생회가 있는데 왜 따로 총여학생회가 있는지 화가 났었다. 그런데 왜 있어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여자로 인식되면서 살아가는 동안 동참해보고 싶다'라고. 또 면접을 보러 오라 했다.
정해진 면접에 갔는데 일자를 미루더니 2번 더 연기하고 3번째 날, 편집부장이 와서 모집 자체를 취소한다고 했다. '그런 결정은 최소한 회장이 와서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발표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더니 총여학생회장이 달려왔다. 사과를 받았고 1년간 총여 소식지가 과사에 날아왔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여자라서 소외되는 상황은 많았다. 최 근에는 승진하여 타 대학에 갔을 때다. 부서배치를 받고 후담이 전해졌다. 이름만 보고 남자인 줄 알고 배정했다가 다시 배치했다는 것이다. 저들 모르게 이를 갈았다. 이후 2년여 동안 나름 실력으로 인정받고 요직에서 존재가치를 발했으니 원망은 없다. 사회 변화가 빠르고 실력이 중요해지면서 직장에서의 성차별은 묻히고 있다.
특히 AI가 나오고 챗GPT가 등장하면서 개개인의 능력은 더 중요해진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주소는 성차별의 그늘에서 크게 나아지지는 못했지만 더 무거운 주제를 접한다. 정치색이다. 혹자는 말했다. 저마다 믿는 정치색을 변화시키기 어렵더라고. 유명 작가가 한 말이 있다. 자신은 80, 90이 넘어도 살아있다면 손자 손녀의 손을 잡고 그 내용이 뭐든 진보 쪽에 서겠다고. 진보는 공부해야 가능하다고.
어느 날엔가 읽은 '짱깨주의의 탄생'(김희교. 2022. 보리)을 보면서 내가 TV나 신문 등의 언론에서 보고 들었던 자료가 얼마나 허황될 수 있는지 알게 됐다. 넘쳐나는 정보들이 모두 지식은 아님을 알게 되었고, 제대로 선별하려면 정말 공부해야겠다는 걸 느꼈다. 학창 시절 등록금 지원이 절박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찾고 배웠다. 오랜 기간 괴롭혔던 성차별은 개인의 실력과 능력 앞에서는 큰 장애가 아닌 시대가 되고 있다.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누리는 문화와 문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는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다. 그래서 관심사가 또 흘러간다. 모든 정치가는 나은 삶을 지향한다. 각자의 방향에서 소속 당의 주장을 하는 것이다. 주장의 단계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면 공부다. 정치하는 사람이나 유권자나 자기가 하는 말에 대한 확신, 증명이 가능한지 끊임없이 묻고 공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