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게 열매가 주렁주렁했을 때 우리 집으로 왔으나 만냥금 화분이 언제 왔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적어도 10여 년은 넘었을 것 같다. 처음엔 키가 컸고 천냥금 화분보다 열매가 굵었고 이파리도 두껍고 윤기가 났다. 집에 두면 부자가 된다는 말에 거실 중앙에 두고 퍽이나 애지중지했다.
화초는 서너 해 지나면 분갈이를 해야 하는데 만냥금은 분갈이를 하지 않아도 흙이 많았다. 다만 커다랗던 줄기가 두 개였는데 한 가지만 살아남았다. 거실에서 위치가 바뀌다가 올 초봄에는 창가 쪽으로 옮겨졌다.
올해 들어 새순이 오종종 솟아오르는 게 자주 눈길이 갔는데 꽃순이 올라올지는 몰랐다. 손가락처럼 여러 가닥의 꽃순이 솟아 끝자락마다 하얗게 꽃 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무성한 잎사귀 아래 좌우 사방으로 포도송이 같은 꽃순이 오종종 매달려있었다.
비가 오고 찌푸드한 아침 창을 내다보는데 어제까지도 몰랐던 모습을 발견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 변화가 시작되었단 말인가. 한 일이라고는 때 맞춰서 물을 준 것뿐이다. 푸른 잎사귀 위로 반짝반짝한 새 잎이 자꾸 솟아날 때 신기해서 귀여워했고 고마워도 했지만 더 큰 기대는 못했다.
아픈 곳의 상처가 나날이 새살이 돋는 것처럼 한 대 남아 있던 가지는 오랫동안 준비를 해 왔나 보다. 새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장마가 시작되었을 때 드디어 주인의 눈에 띈 것이다. '천냥금도 아닌 만냥금인데 우리 집에 금맥이 들어오려나?' 미소 끝에 따라오는 기대 꽃이 활짝 피었다.
근자에 주변에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왕래하고 교감하며 지내느냐도 중요함을 느껴왔다. 자기 생활에 함몰되어 타인에게는 제대로 마음 주지 않는 시대임을 절감하던 차였다.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도 우린 얼마나 스치며 흘러가는가.
마음을 기울여 자기 자신처럼 대해줄 때 그 사람은 기룬 사람이 되어 온다는데, 공허하고 텅 빈 마음이라면 정성을 제대로 기울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누군가의 작은 방문이 반가우면 나 역시 그런 방문을 하고 싶지 않던가. 만물은 아주 미미한 순간에 그렇게 쉼 없이 전진하고 변화하고 있음을 보았다. 사람 마음도 그러함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