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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조와 덕이 Jul 03. 2024

만냥금 꽃이 피고 있는 순간


빨갛게 열매가 주렁주렁했을 때 우리 집으로 왔으니 만냥금이 언제 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적어도 10여 년은 넘었을 것 같다. 처음엔 키가 컸고 열매가 오래갔고 천냥금보다 잎이 두껍고 윤기가 났으며 열매도 굵었다. 집에 두면 부자가 된다는 말에 거실 중앙에 두고 애지중지했을 것이다.


화초는 서너 해가 지나면 분갈이를 해야 한다. 만냥금은 제법 큰 분이어서 분갈이를 한 기억은 없다. 다만 커다랗던 줄기가 두 개였는데 한 가지가 마르고 한 대가 겨우겨우 지탱해 왔다. 거실에서도 위치가 바꿔다가 올 초봄이지 아마 마른 가지를 자르고 창가 쪽으로 옮겼다.


오목하게 새순이 오종종 솟아오르는 게 자주 눈길이 갔는데 꽃순이 올라올지 누가 알았을까. 손가락처럼 여러 가닥의 꽃순이 자라고 끝자락마다 하얗게 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무성한 잎사귀 아래 좌우 사방으로 포도송이 같은 꽃순이 매달려있는 게 아닌가.


비가 오고 찌푸드한 아침 창을 내다보는데 어제까지도 몰랐던 그 모습에 손뼉을 쳤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 변화가 시작되었단 말인가. 내가 한 일이라고는 때 맞춰서 물을 준 것뿐이다. 푸른 잎사귀 위로 반짝반짝한 새 잎이 자꾸 솟아날 때 신기해하며 귀여워했고 고마워도 했지만 더 큰 기대는 못했다.


아픈 곳의 상처가 나날이 새살이 돋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를 해 왔을까. 새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장마가 시작되었을 때 드디어 주인의 눈에 뜨인 것이다. 천냥금도 아닌데 만냥금인데 우리 집에 금맥이 들어오려나? 미소 끝에 따라오는 기대 꽃이 활짝 피었다.


주변에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도 중요하고 또 얼마나 왕래하고 교감하며 지내느냐도 중요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제각기 자기 생활에 함몰되어 타인에게는 제대로 마음을 주지 않는 시대임을 느껴왔는데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도 얼마나 스치며 지나오는지 실감했다.


마음을 기울여 자기 자신처럼 대해줄 때 그 사람은 기룬 사람이 되어 오듯 공허하고 텅 빈 마음이라면 정성을 제대로 기울이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누군가의 작은 방문이 반가우면 나 역시 그런 방문을 하고 싶지 않던가. 만물은 아주 미미한 순간에 그렇게 쉼 없이 전진하고 변화하고 있음을 사람 마음도 그러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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