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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이 마중가는 마음

by 사과꽃


만년필을 사용하면서 터득하는 게 있다. 영화나 그림을 보면 뾰족한 펜촉에 잉크를 묻혀가면서 글자를 썼는데, 그 적시던 잉크가 잉크만이 아니었다.



만년필은 쓰기를 멈추고 놓았다가 다시 들면 글자가 써지지 않는다. 여러 차례 빈 획을 긋다가 잉크를 채우려고 열면 가득 들어있는 경우를 보는데, 글을 멈추는 순간 펜촉이 말라서 수시로 물에 적시는 거였다. 펜촉을 적시면 물입자의 친화력에 의해 잉크가 내려오는 거다. 만년필을 얼마 쓰지 않은 순간부터 그 이치를 터득하고 생수물병 뚜껑에 물을 채워둔다. 까맣게 변한 물이지만 콕콕 적시면 잉크를 불러와서 날렵한 펜촉이 가뿐하게 글자를 그리며 달려가게 한다. 물은 잉크를 불러오는 촉매였다.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릴 때도 수건으로 물기를 닦을 때도 같은 이치다. 마른 수건보다 젖은 수건이 물을 더 잘 흡수하고 드라이어의 뜨거운 열기보다 찬 열기가 젖은 머리의 수분을 더 빠르게 날린다. 같은 성질의 친화력이다. 손에 묻을까 저어하던 잉크병이 견딜만하고 쏟을까 염려되는 검정물 뚜껑조차도 이뻐 보이니 필기감을 주는 만년필 덕분이다. 펜촉에 잉크를 불러내는 물의 친화력을 보면서 불러냄, 꼬임(꾐), 유도, 마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어두운 길을 마중 나와 있던 엄마도 생각나고 학원에서 늦는 딸아이를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던 밤도 생각났다. 기다리다 지쳐서 기다릴 수만 없어서 그 기다림의 시간을 줄이려고 나가서 마중하던 밤이 있었다. 넓은 아파트 단지에서 어느 쪽에서 올지 몰라, 그 밤이 나도 무서워서 입구를 나서지도 못하고 동동거리며 기다리던 마음을 딸아이도 훗날에야 알게 될 테다. 마중은 반가운 누군가를 맞으러 가는 것이다. 오는 동안의 고단함을 덜어주고 만남의 반가움을 한 시라도 당기기 위하여 나서는 애씀이다.



누군가가 몸체를 잡고 수없이 긋는 노력을 덜어주는 불러냄, 마중을 펜촉 끝에 묻은 물이 한다. 물이 적셔지는 순간 잉크는 흘러 펜촉의 끝으로 모인다. 하얀 종이를 만난 검은색 시료가 펜촉을 따라 글자로 태어난다. 완벽한 마중을 마무리한 순간이다. 그러고 보니 반가운 이를 마중하는 순간은 주위에 쌓여 있다. 글을 쓰고 독자를 기다리는 순간도 마중이다. 그 마중에 기원하는 마음이 얼마나 절절할지를 알기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최신 글과 구독 작가들의 새 글을 읽는다. 수많은 브런치 작가들을 마중한다.



만년필의 필기감이 좋아서, 하고 싶은 말들이 하도 많아서 오늘도 자판을 두들기기보다 흰 종이에 글을 쓴다. 월요일이 되면 다른 일 모두 제쳐두고 멤버십작가 신청을 하리라 다짐했건만 까만 밤이 되었다. 많은 독자를 마중하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은데 내 글이 제대로 독자를 만날 수 있으려는지 그 마중을 고민한다. 그래도 안다. 멤버십작가 신청을 하리라는 것을. 반가운 이를 마중가는 마음으로 써보리란 것을. 그래도 걱정이다. 물의 친화력 같은 불러냄 꼬임 유도 마중의 능력과 실력이 나에게서 자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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