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철 잃은 동백이 활짝 활짝 흐드러지고 있었다. 건물이 외풍을 막아주는 햇살 바른 곳이었다. 건물 옆의 길을 따라 동백이 심어져 있었는데 모든 동백이 활짝 핀 건 아니었다. 나란히 서 있음에도 건물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차츰 꽃망울이 작아지더니 어느 결에는 꽃잎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아직 겨울임에도 햇살과 기온은 그렇게 중요했다.
먼동이 터오면 장관이던 하늘이 오늘은 햇살 한 자락 비치지 않는다. 또 무엇에 삐진 것일까? 뒤춤에 한 됫박 빗물이나 진눈깨비를 숨겨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무실 올라오는 언덕에서 뒤돌아 올려다본 하늘은 도통 계절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학창 시절 사람들의 활동이 적은 날에는 새벽같이 학교에 나왔던 기억이 난다. 가령 양력 1월 1일 같은 날이다. 모두가 편안한 휴일을 즐길 때 아무도 없는 캠퍼스를 혼자 유유낙낙 걸었다. 텅 빈 독서실에서 공부한다는 폼을 혼자 잡았다. 그러면 왠지 숙제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생각은 세월이 흘러도 계속된 것 같다. 주중에 지쳐도 주말 하루는 어김없이 사무실에 나와야 마음이 편했다. 주중에 놓친 일을 챙기기보다 주중에 놓친 나를 찾는 시간이었는 지도 모른다. 생각이라는 것이 신통하게도 여럿이 어울려 있는 곳에서와 홀로 있는 곳에서의 깊이가 달랐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나오던 때가 그래도 내 인생의 봄이지 않았을까. 숨 가쁘게 바쁘던 날들만큼 여전히 내 인생은 진행형이다. 흘러가는 물살 속에서 때로는 둥둥 때로는 힘차게 저어 가지만 정신을 차려보고자 돌아보는 노력은 내 몫이었다. 그 방법은 책이기도 했고 친구이기도 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와서 앉았던 자리와 내가 밥을 지어먹고 와서 앉는 자리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햇살 드는 길 나뭇가지 끝에 초록 순이 솟고 있었다. 아직 때가 아닌데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온 건지 스스로 밥을 지어먹고 나선 건지. 어쩌면 겨울 끝에 올봄이 궁금하여 조바심에 먼저 삐죽삐죽 구경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온 계절이 동시에 공존함이 눈에 보이는 시절이다. 노파심 노탐 그런 말이 있다. 얼어가는 마음을 녹이고 꽃은 피우지 못할망정 온기와 햇살이 되고 숨쉬기 좋은 향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인생의 봄은 지금 여기라고 온 사람이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