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이든 달가운 일
아무도 강요하거나 지켜보지 않는데 혼자만의 고집 같은 것이 있다.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칭찬들을 일도 아닌데 그런 기준을 갖는 게 나도 의아할 때가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점심시간은 정해진 시간의 1~2분이라도 전에 들어와야지 1~2분 늦는 게 싫다.
봄부터 시작하여 원고를 보내고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참가하여 글 짓기를 한 대회가 있었다. 제법 큰 상을 준다 했는데 그 시상식에 가지 않았다. 그 보다 더 큰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적인 일에는 얼굴이라도 내밀어야 한다는 혼자만의 고집 때문이다. 일요일이었고 내가 가지 않아도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나는 그곳을 선택했다. 얼굴을 내밀고 관심을 보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적었지만 그러고 싶었다.
발을 땅에 내려놓지 않고 살아왔는가? 아니 그럴 뻔했을까? 주말에 진행되는 행사를 지켜보면서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그 방문은 그래도 심적인 지원은 되었을 거라고 여긴다. 오지 않아도 된다던 직원들이 무척이나 반가워했으니까 말이다.
매 순간이 선택의 귀로 같다. 좀 더 젊던 날에는 선택의 결과에 간혹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 선택이 요구하는 책임은 어느 쪽이든 달가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선택은 양날의 칼이고 동시에 위태로우면서도 스릴 있는 일이다. 선택사항이 아닐 경우가 있다.
내 운전 실력으로는 2시간여 가량 걸리는 곳에서 조만간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제법 오래 운전을 해왔음에도 대범해지지가 않는다. 용기 내서 합석 자리를 알아보았으나 부드러운 거절을 당하고 절친이라 믿었던 사람도 자기 챙기기 바쁜 듯했다. 혼자 갈 수밖에 없다.
구름 낀 날 저 멀리 바닷가 어디에서 한다는 1박 2일의 회의에 그렇게 내 차로 참석한다. 일정상 해가 지고서야 돌아올 것 같다. 당일 참석자로 신청해 놓고 1박을 하지도 않을 거면서 오고 가고의 방편도 마련하지 못했으니 너무 용감한 선택이다.
이참에 내 선택의 스릴을 한번 느껴봐야겠다. 선택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가 위로를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