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바람이 쌩쌩 분다. 온종일 햇살을 덮은 구름은 자꾸만 시선을 하늘로 이끈다. 비가 오려나? 눈이 오련가? 몰아치는 바람에 튼실한 나무가 팔다리를 둠칫거리고, 방학을 맞은 운동장은 메마른 은빛 모래만 한가득이다. 전교생이 50여 명도 되지 않는 학교, 아마도 올해 들어 한 번도 밟지 않은 모래가 지천일 것 같다. 산자락 아래쪽은 은행나무가 늘어섰고 도로변 높은 담벼락을 따라서는 새파란 상록수가 무성하다.
"톡톡 탁탁"
사다리를 놓고 올라선 이가 기다란 장대를 들고 나무 꼭대기를 두드리고 있다.
"뭐 하십니까?"
도회지에서만 살아온 과장은 처음 보는 광경이다. 잣을 딴단다. '잣?' 그러고 보니 나무를 두들기자 솔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다. 궁금하여 나무 아래로 다가가니 비켜서라고 난리다. 한 참을 두드리다 내려온 이가 손바닥에 쥔 것을 펴 보이며 뭔가를 보여준다. 꽝 마른 솔방울인데 그 귀퉁이를 뽑아서 으깬다.
"엄마야! 아이고 잣이네! 세상에나! 이게 잣나무예요? 소나무 아니에요?"
그래놓고 대오감읍하듯 이어지는 말.
"침엽수림은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라고 배웠는데 그러니까 이 나무가 그 잣나무인 거네요?"
따와서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사람이나 들여다 보고 신기해하는 사람이나 둘 다 황당해한다. 학교에서 시험에 대비하여 외우기만 했던 그 잣나무를 서른 즈음에야 처음 보았으니 창피함도 잊었다. 잣을 따온 사람은 '하이고 무식하기는!' 속으로 외면서도 짐짓 의젓하게 상세히 보여준다. 지난가을 저쪽 운동장 끝에 노란 은행잎이 떨어졌을 때도 사진 찍고 그리 감탄하면서도 몰랐다. 건너편에 시퍼렇게 서있는 나무 모두가 소나무인줄로만 여겼다.
전나무와 잣나무 모두 소나무과- 소나무목- 소나무속에 속하고 상록침엽 교목이란다. 서양에서는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등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로 많이 쓰이는 게 전나무다.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으로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전북 부안 내소사, 경기 포천 국립수목원이 꼽힌다. 소나무와 전나무도 잘 구분하지 못했지만 잣나무를 처음 보았으니 그 잣이 솔방울같이 도란도란 꽂혀서 여물었을 줄이야.
초등학교 고학년 때던가? 골목 텃밭에서 어느 할머니가 캐는 식물을 보고 친구들이랑 길을 멈추고 들여다봤다.
"어! 모양이 꼭 땅콩 같다!"
땅콩이라고 불러왔으면서 땅에서 캐는 뿌리 열매인 줄 생각지도 못한 거다. 콩깍지에 달린 꽁지가 나무에 연결되어 딴 줄만 알았다. 실제로 보고 알게 되는 일은 나이와는 상관없었던 거다. 삶아주는 땅콩만 먹었고 알맹이만 봐왔으니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그날 그 골목을 그냥 스쳐 지나갔더라면 땅콩은 나무에 열리는 줄 알지 않았을까. 땅콩과의 대면보다 한참이나 늦은 잣과의 대면은 경이롭기까지 했으니.
그 후로는 사각 함지에 수북하게 쌓아서 파는 노란 잣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그 가격이 왜 그렇게 비쌌는지 수정과나 오미자 차에 왜 잣을 겨우 서너 나 띄워주는지 빙그레 웃으면서 이해하게 됐다. 귀한 열매일수록 고이고이 딱딱한 껍질 속에 보존되어 있음이 신통했다. 땅콩도 그렇고 호두나 마카다미아는 얼마나 단단한 보호막 속에 있는가. 자연의 오묘함이다.
도회지 학교에만 있었더라면 잣나무를 볼 기회는 더 늦어졌을 것이다. 산간 마을 벽지 학교에 간 덕에 늦은 나이에라도 보고 배우는 실습을 했으니 그 후로 오랫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잣나무를 본 적 있느냐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침엽수림 중에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가 있었잖아, 그 잣나무가 우리가 먹는 잣을 달고 있다'라고. '꼭 솔방울처럼 생겼는데 넌 봤냐'라고.
인생이 여행이라고 하지 않은가! 알았던 것도 잊어 다시 알게 되고 몰랐던 것도 새로이 알아가는 여행이다. 매 순간 새로 움에 탄복하고 바라볼 수 있음이 젊어지는 비결이라고 하니 주어진 날 동안 무언가 알아가는 여정은 그래서 신선하다. 삶이 힘들고 때로 권태롭더라도 머리를 활짝 여는 기분으로 색다름을 찾아보는 노력이 좋다. 잊었던 미소를 찾을지도 모른다. 이름 없는 풀조차 꽃피는 계절이 오고 있다.
(표지 사진 출처: 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