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워를 견디고 공간이동을 한다. 왕복 6차선의 대로에서 최 갓길은 놀라운 데가 있다. 15분가량 일직선을 가야 하는 길이기에 느긋하게 그 길에 섰는데 의외로 빠른 차선이었다. 1, 2차선을 갈아타며 새파란 신경을 세우고 전쟁처럼 달려들어 공간이동을 하던 그때보다 이렇게나 빠른 길일 줄이야. 버스가 가고 서고를 반복하고 다른 차들이 들고 나지만 의외로 차량 수가 적었다. 많은 차들이 1, 2차선에 줄 선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가로수다. 최 갓길 바로 옆에 서 있는 가로수의 변화를 바로 본다. 어쩌면 한 겨울 내내 그 나무들의 가지 끝을 주시하며 다녔는지도 모른다. 최근 그 변화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는데 갈색인지 붉은색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색깔로 싹 눈을 틔울 때는 밉상이었다. 하루이틀 눈을 대고 있는데 그 가로수 끝이 이제 연초록빛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다르다. 보기에는 별 차이 없지만 한 겨울 내내 가지 끝을 하늘로 뻗어내고 있은 것이다. 마치 온몸에 핏줄이 퍼져 있듯 잔 가지는 사방으로 나가 싹을 틔울 준비를 해왔다.
붉은빛을 띠던 그 싹이 연초록으로 변하는 찰나의 순간이 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0.1초라고 했던가. 무언가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음이 홀딱 넘어가는 순간이다. 스펀지가 물을 먹는 순간 물펀지가 된다. 지금 연초록의 잎사귀들이 물을 먹기 시작했다.
또 다른 공간이동 길이 있다. 진주 새벼리 길은 우측에 산자락을 타고 도는 길이다. 겨울 한기를 털어낼 즈음 벼랑 위에는 진달래가 연분홍의 얼굴을 기웃기웃한다. 그러다가 저 멀리 개나리 벚꽃이 잦아들 즈음이면 새벼리 갓길로는 늘어지는 연초록의 이파리가 장관이다. 차창을 내리지 않고는 못 지나간다. 일부러 그 길을 따라갈 때는 혼자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버릇이 나온다. 남들과 큰 차이 없이 가족의 건강과 복을 읊조리고 있다. 부모님을 소환하기도 한다. 일터와 나라터도 들먹일 때가 있다.
점점이 점을 찍다가 꼴딱 해가 떨어지는 지점, 오매불망 추위에 떨고 있는데 뭉실 솟아오르는 일출의 순간. 모든 것은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한 과정이다. 변하지 않는 사람의 습관도 어느 날 문득 한 번의 기회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수년간 책방을 들락거려 보고 도서관을 다니다가 문득 책의 묘미에 빠져드는 순간이 있던 것처럼. 그렇다면 그 찰나의 순간을 찾아가는 시점이 지금일 수 있다. 단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말기. 나의 앎이 모든 것이다라는 착각에 빠지지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