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2탄 - 물고기를 생각하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얼른 수경으로 얼굴을 가렸다. 지난가을에 멈추었던 수영 초보반에 등록한 것이다. 첫 레슨 날 서둘렀음에도 입장했을 때는 준비운동이 시작되고 난 뒤였다. 모든 레인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체조 선생님 뒤에 출입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뒤로 울룩불룩 나온 모습을 감출 수도 없고 애써 태연한 척 걸었다. 웬걸 마지막 입장자는 입수 계단 밑 맨 앞에 서서 준비운동을 해야 했다. 접시 위에 올라선 기분이었다. 그나마 반팔 반바지에 검은색 옷이어서 눈길을 좀 가렸을까.
"내 꼭 물고기를 닮는 날이 있으리라. 그때는 나도 화려한 수영복을 입을 테다."
도대체 왜 운동 종목에 수영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어쩜 저렇게 창피하게 입고서 운동을 할까 싶었다. 그러나,
"어머나 이런 운동이 있다니!"
처음 완전 무장하고 쌍안경으로 변장하여 물에 들어갔을 때 손가락 사이로 느껴보는 물살은 예술이었다. 밍크코트, 비단의 감촉이 이러하겠나. 손가락 사이로 형체 없이 뭉글뭉글 내가 그리는 대로 빠져나가는 물결의 감촉. 그 물살의 부드러움은 마음을 폭 빠지게 했다. 그 폭 빠짐은 거의 5개월이 넘도록 나의 몸무게를 폭 빠지게 했지만 나를 꼬신 게 분명하다. 제 발로 반년만에 다시 그 물에 발을 담기로 했으니 말이다.
물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다 아는 답은 몸에 힘을 빼는 것이었다. 배영을 잘 한 답시고 열심히 저었다. 코로 들어오는 물을 먹어도 꾹 참고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느 틈에 코치 손이 뒷목을 터치했다.
"힘 빼세요 힘"
반년만에 터득한 요령으로 겨우 팔다리에 뺀 힘이 목에 다 들어가 있었다. 팔다리와 목까지 온몸에 힘을 빼려면 어찌해야 할까. 물을 잘 꼬셔야 한다. 그 부력의 힘을 믿고 물을 꼬셔야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적당한 꼬심이 있는 것처럼 때론 믿어주고 때론 좋아라도 해야 배신을 당해도 덜 억울하다. 수영에도 이런 인생 진리가 숨어 있었다.
대야에 담아 놓은 물, 흘러내리는 샤워기로는 느낄 수 없는 물이 있다.
엄청나게 커다란 세트에 내 키만큼의 물을 가둬놓은 곳, 수십 명이 들어가 휘젓고 다니는 곳, 수영장이다. 그 속의 물은 젤 같고 두부 같다. 그 물은 존중해 주고 살랑살랑 믿고 맡기면 아무리 무거운 몸이라도 둥둥 띄워준다. 감정을 뻗지르거나 헛발질에 리듬을 놓치면 바로 잠수시킨다. 그러기에 수영은 혼자 터득해야 하는 운동 같다. 아무도 못 가르쳐 준다. 그 물살의 부드러움과 그 물결과 호흡하는 밀당을.
생활 속에서의 내 감정도 잘 연주해야 한다. 젤처럼 두부처럼 내 주위 공간의 공기는 늘 내가 주인이다. 물에 손을 넣어 내가 그리는 대로 느끼듯이 내 삶도 내가 주인이 되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내 감정을 꼼꼼히 챙겨 뻗지르지도 헛발질도 하지 않도록 잘 연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