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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울 Apr 11. 2024

 멋대로 사는 할머니가 될 거야

제니 조셉, 경고

 할머니가 되면 생전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보라색 옷에 빨간 모자를 마음 대로 입고 쓰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 거야, 아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게 지금부터 조금씩 연습을 할 거야. 이 귀여운 시는 노년에 대한 환상을 노래하는 극적인 고백시로 2006년 BBC 여론조사에서 일반인 최다 애송시로 뽑혔다고 한다. 


 “무거운 책임감은 내려놓고 그저 놀아요. 내일을 걱정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멋진 하루를 보내세요!”라는 레드 햇 소사이어티의 창설에 영감을 주었다는 시다. 50대에도 장난기 있는 모습으로 재미난 삶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절친한 친구의 5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중고 매장에서 선물로 산 빨간 모자 일화를 기점으로, 수 엘런 쿠퍼는 가족밖에 모르던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끼리 삶을 환기시키는 날을 갖고자 빨간 모자를 쓰는 모임을 이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시를 읽으며 사노요코 할머니가 생각났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재산을 털어 재규어 자동차를 구입하고 명랑하고 솔직하게 자기 표현을 하며 생의 마지막까지 시크하고 용기있게 살아간 기록을 남긴다. 그의 문장에 매료되어 산문집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자식이 뭐라고' '이것 좋아 저것 싫어'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의 기록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담배 따위 끊지 않고 환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죽고 싶어하는 사노요코 할머니는 기죽지 않고 자신다운 삶을 영위한다. 작가 모리 마리를 동경하며 그에게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멋대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하는 사노요코 할머니는 매뉴얼 없는 노년의 삶에 멋진 이정표를 남겼다. 늙음을 미화하지도 엄살하지도 않으면서 닥쳐오는 죽음에는 초연하고 자신의 감정에는 충실하게 사는 모습이 산문집에 담겨 있다. 


 내 노년의 롤모델을 이 시에서 다시 만났다. 엉뚱하고 귀엽게 자기를 지키고 자기 멋대로 독립적인 삶을 만들어 가는 할머니가 죽음이나 관습적인 인식에 쫄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돌보던 사노요코 할머니의 일상과 많은 부분 오버랩되었다. 이런 도발적인 시가 가문 논에 물들어 오듯 뭔가 좋고 신나서 나의 개산책 사진에 보라색 옷과 빨간 모자를 씌워 보았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렇게 애면글면 찾으시던 담배를 그깟 의사샘 말을 신성시하여 끝내 안 드린 것이 한이 된다. 깊이 깊이 한 모금 해갈하시고 원없이 평안히 떠나시게 할 것을... 친구의 시어머님은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셨을 때, "술 가져 와라" 하고 간절히 원하시던 시아버님께 박스 채로 드렸는데 그걸 한껏 드시고는 조용히 눈감으셨다고 한다. 아버지 무덤에 담뱃불 붙여 올려 드리곤 할 때마다 어디선가 뒤통수 후려치며 '에라 이 쫌팽이 놈아' 하고 호통치실 것만 같다. 욕먹어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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