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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울 Apr 12. 2024

의욕과 체념 사이를 쉼없이 오간다

헤르만헷세, 꽃가지

 양산 통도사에 홍매화 필 때 가본 적 있다. 한그루의 매화가 전국의 매화 소식을 열어 젖히며 봄의 시작을 알리는 곳, 자장율사를 기리기 위해 심은 자장매화라고 설 지난 다음 소원을 빌면 잘 이뤄진다고들 찾아 간다는 곳, 실은 소원 빌러 오는 사람보다 바주카포 만한 카메라를 메고 시시때때로 변하는 홍매화의 인상을 포착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는 곳이다. 각도나 조도, 시간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매화계의 최고 셀럽이다. 입춘 지나면서 겨울 무채색 사찰에 저리도 요염하고 색스럽고 향기로운 매화가 한 해를 열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저 나무 사진에는 합장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저 꽃잎을 쓰레질하는 스님 사진이 좋다. 흙마당에 정갈한 쓰레질 자국을 내는 빗자루 옆으로 연신 떨어져 달라붙는 가볍고 붉은 꽃이파리들이 장난스럽게 그려진다. 


 '맑은 날과 흐린 날 사이를, 의욕과 체념 사이를 쉼없이 오가'는 마음들을 바람결에 흔들리는 꽃가지에 빗댄 헷세의 '꽃가지'는 홍매화에 썩 어울린다. 한 방에 붉은 꽃잎이 마음에 넘쳐 흐르게 솟구쳤다가, 꽃잎 다 날아가 가만히 가라앉아 평온을 되찾는 봄날 같은 인생을 돌아보며 놀이처럼 즐거웠다고 고백해보는 시다.

매일 '의욕과 체념 사이를' 오간다. 하루도 봄날처럼 흐르고, 인생도 봄날처럼 흐른다.


 절방 안에서 홍매화를 보는 맛으로 창문 프레임을 씌웠다. 언젠가 지리산 자락 천은사에서 하룻밤 묵은 적 있다. 절방 문을 열어 놓고 하루종일 바람결에 흔들리는 풍경을 마주하고 싶다. 공양주 보살님들의 맛난 밥은 덤으로 얻어 먹으며 햇빛에 노릇노릇 꼬들꼬들 한나절씩 마음을 구워 말려 가지런히 좀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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