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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울 Apr 13. 2024

고요를 만들기

웬델베리, 야생의 평화

 한탄강 물윗길을 걷다 보면 태봉교를 지나 은하수교 못미쳐 저 송대소가 있다. 용암이 흘러간 주상절리 수직 절벽 아래 맑고 짙은 초록빛이 그 못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다. 안내판에는 명주실 한 타래가 다 풀려갈 정도로 깊다는 설로 보아 30m정도로 추정된다고 써있다. 해가 나지 않았지만 맑은 날에 보면 초록빛이 더 신비로울 것 같다.


 힘겨운 일상의 번민으로 잠깨어 괴로울 때 고요한 물가로 가 오리나 물새들을 바라보며 야생의 평화를 찾는 시다. 저런 경험의 이미지 컷은 무한정 저장되니 비축해 둔 야생의 기운을 꺼내 복닥거리는 마음을 빗어 내리는 데 쓰면 효과가 그만일 것이다. 야생에서 멍때리며 최대한 충전해 놓는 것이 질척거리는 삶을 보살피는 자원이 된다. 


 세잔은 '고요를 만들기'를 화가의 과제라고 보았다고 한다.

 니체는 '자극에 곧바로 반응하지 않을 능력은 고상한 문화'에 속한다고, 그 능력은 억제하는 본능과 끝맺는 본능을 발전시킨다고 했다고 한다. 

  한병철이 '사물의 소멸'이란 책에서 추근대는 새로운 정보의 접근을 일단 적대적인 고요로 맞이해야 한다고 인용한 글이다. 정보의 전면적인 허용성과 침투 가능성이 고상한 문화를 파괴하고, 우리에게 끝맺는 본능과, 들이닥치는 자극을 향해 아니라고 말하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게 한다고 설파한다. 


 나와 식구들에게 빈번히 나타나는 끝맺지 못하는 산만함이 DNA의 작용이 아니라 정보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침투당한 흔적이라니,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 정보의 홍수 속에 표류되어 정보 자극을 선정, 수렴, 소화하지 못한다면 우왕좌왕 네버엔딩의 수레바퀴에 갇히겠구나 싶다. 그걸 차단하는 휴지로써 고요를 제안한 것 같다. 고요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으니 자주 전기 코드를 뽑고 야생으로 가 고요를 만들어야지. 나를 상실하고 물러나 철저히 약해질 때 고요는 내 목소리를 더욱 잘 듣게해 준다니 말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긍정적인 능력에 반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부정적인 능력이야말로 정신을 고요하고 관조적으로 머무르게 하여 깊은 주의에 이를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이 부정적인 능력이 없으면 파괴적인 과도한 활동에 빠져, 소통 강제와 생산 강제에 끊임없이 지배당한 자신을 생산하고 그로 인한 소음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만큼이나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을 능력이 나를 지키는 힘인 것이다. 

 

 이 시끄러운 공유와 트윗의 세상에서 고요 만들기를 하기 위해서는 홈쇼핑과 컴퓨터를 떠나 자주 야생의 것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그 기억들을 꺼내기 좋은 곳에 저장해 두어야 한다. 한탄강가의 물오리나 북한산 계곡의 청둥오리들은 '슬픔을 걱정하여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네', '그리고 자유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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