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헤르만 헤세의 필사시집 '슬퍼하지 말아요, 곧 밤이 옵니다'에 나오는 시다. 나이들어 가는 불안과 실존에 대한 고민과 감정을 담담하게 관조하는 시들이나, 전원적인 배경에서 사물과 인생에 대해 편안하게 써 내려간 시 100편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헤세의 소설 말고 시라고는 '안개 속에서' 밖에 몰랐는데 단숨에 읽고 나서 보니 인용해 적어 두고 싶은 시가 많았다. 시적인 기교나 비유의 현란함 없이 나이듦의 쓸쓸함이나 소년의 순정한 마음, 덧없는 삶의 멜랑꼴리 등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어 무겁거나 어둡지 않았다. 언젠가 죽기 전에 한번은 만나 삶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고 싶은 현자의 목소리가 있다면 이럴 것이다.
소중히 여기던 사물들은 물론 그렇게 얻고자 애썼던 지혜나 미덕마저 사그라지는 노년에, 난로와 와인과 편안한 죽음을 소망하며 그러나 그날이 영 나중에 오기를 바라는 마지막 느낌표가 힘있다.
최고 단계의 항생제를 처방해야 하는데 그 부작용으로 혈액투석을 할 수 있고 중환자실로 가게 될 수 있다고 하는 종합병원에서 영양제 삽입 호스를 스스로 빼며 집으로 돌아가기를 분연히 주장하시던 아버지는 여러 고민과 과정을 겪으며 집으로 퇴원하셨다. 병원에서 달던 그 많은 링거 줄들과 매일 괴롭게 가래를 빼내던 썩션 없이 아버지는 7개월 이상 엄마 곁에서 일상의 떠받듦을 받고 떠나셨다. 자식들이 번갈아 당번을 정해 드나들었지만 간병요양사의 조력을 받아 간병에 주력하신 건 어머니였다. 절대 고독의 시간을 보내다 혼자 떠나신 아버지를 보내고 혼자 남으신 그 때 어머니의 뒷모습이다. '늙어간다는 것'이란 시만큼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