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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울 Apr 15. 2024

당신이 꼭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메리올리버, 기러기

 김연수의 소설 제목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제목으로 더 유명해진 구절이다. 물론 저 소설은 읽지 않았지만 이 시는 읽을 때마다 와 닿는 구절이 달라진다. 첫구절의 여운도 강해서 그 구절만 갖고도 짐의 무게를 한층 덜어낼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강박으로 아무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종국에는 자신에게 가장 좋지 않은 사람으로 남게 되는 경험을 많이 했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좋은 사람의 기준은 너무나 많고 각기 달라서 없애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염없이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 같지만 쉬지 않고 변해 왔으니 수십 년 안 만났던 친구와 만나서는 내가 나라는 것을 증명하다가 나를 잊어버리고, 서로 다른 층위에 갇혀서 다른 모양의 신뢰와 결속을 기대하다가 당시 주고 받았던 영혼의 방이 죽은 지 오래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고 돌아오는 길에는 좋은 사람으로 비춰진다거나 좋은 사람이기를 요구하는 것의 지옥같은 면을 인정하기로, 각자 다르게 간직하고 변모해 온 과거를 더 이상 착취하지 않기로, 매순간 새로운 삶의 이야기와 세상의 초대에 응하게 되기를 -기러기처럼- 바란다.


 숨은 벽이 바라다 보이는 정상 뒤쪽에는 저 기러기 아닌 까마귀들이 자신이 독수리라고 생각하는 듯 유유히 날고 있다. 넋놓고 바라 보다가 갑자기 숨은 벽으로 방향을 트는 일행을 따라 아찔한 각도 바로 밑 바위까지를 네 발로 기어 갔다가 내리막으로 접어드는 코스를 두 번 간 적이 있다. 고소공포증과 손잡이 없는 바위산 공포증이 심한 데다가 굼뜨고 겁많은 소심쟁이인 내게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바위를 휘감아 올라가는 코스에서는 조력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조난의 위험이 예상될 만큼 아찔한 난코스였다. 

 지금은 무릎이 훅 꺾여 내리막 바윗길에서 넘어진 이후로 산행을 끊었지만, 언젠가 단풍철에 나월봉으로 가는 코너 절벽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울부짖는 나를 버팀목해 주시며 안쪽으로 지나게 해주신 은인분과, 숨은벽길에서 등산스틱으로 의연히 걷어 올려주신 구원자분께는 생명의 빚을 졌다. 인사를 하기 위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람처럼 사라지셨던 분들, 자연 속에는 바위 같은 존재들이 관음보살처럼 나타나 어설프고 모자란 생명들을 최종적인 사라짐에서 구하고는 사라진다. 


 나의 주크박스에 '기러기' 시를 베껴 넣으며 나의 욕구에 구체적으로 반응하게 되기를, '자기를 실현한다고 믿으면서 자발적으로 또 열정적으로 자신을 착취'(한병철)하지 않기를, 타인과의 만남에서는 피상적이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상처를 내놓으며 삶의 무게를 덜어내게 되기를, 자연과 세상의 초대에는 자유롭게 허용적이기를 인용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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