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소년

제3화 권투

by 김하록

"어이! 재호! 옥상으로 온나. 어제는 어쩌다가 럭키 펀치가 터진 모양인데, 오늘은 다를 끼다."

"어제는 내가 흥분했다. 고만해라. 니가 그냥 통 하라니까."

"내가 걸뱅이가? 니가 먹다 남은 거나 주서 먹게? 잔말 말고 퍼뜩 올라 온나."

"그렇게 나랑 싸우고 싶나? 그럼 한 가지만 약속해라. 이번에도 지면 다시는 나한테 시비 걸지 않는다고."

"마 아라따. 니가 이기모 내 다시는 니한테 덤비지 않을게."

"좋다. 가자!"

옥상으로 올라간 한태석은 어제와 달리 제법 신중하게 복싱 스텝을 밟으며 재호에게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리기 시작했다. 재호는 그 모든 걸 슬립과 위빙. 더킹으로 다 피해내고 태석의 오른손 왼손 훅도 숄더롤로 남들이 보기에는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것처럼 보이지만, 정교하게 그다음 공격을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피해 가며 오른손 어퍼컷 한 방으로 이번에도 한태석을 넉아웃 시켜버렸다."

호의 곁에는 마산, 창원, 진해의 중학교 연합 1인자인 한태석이 재호가 희망원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늘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근육질의 크고 다부진 체격에 얼굴의 광대뼈에서 뺨쪽으로 굵은 칼자국이 사선으로 나있어서 왠만한 중학생들은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줌을 지릴 정도의 살벌한 인상을 한 그가 재호의 오른팔을 자처하며 늘 재호를 호위하고 다녔다.


처음 그들이 진해남중학교에서 같은 반에 배정된 순간 그들의 서열정리는 이미 예정된 경우였다.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마산, 창원, 진해 일대를 누비며 서열을 싹 다 정리한 한태석에게 재호는 반드시 굴복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반면에 재호는 초등학교때부터 누구와도 싸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서열의 최정점에서 약한 애들에게 손한번 대는 일 없이 평화롭게 지낸 평화주의자였다.


한태석은 재호의 그런 밝은 성격과 평화지향적인 태도에도 모두가 그를 따르는 것이 내심 못마땅해서 의도적으로 재호에게 거칠게 다가가서 어깨를 부딪혔다. 재호가 정색하며 지금 뭐하는 거냐고 묻자, 태석은 재호를 사납게 노려보며 이를 갈면서 옥상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뭘 꼬나보노? 고마 눈깔고 옥상으로 따라온나. 저기 전마들이 니가 실질적인 통이라 카는데, 오늘 니랑 나 둘 중에 누가 마창진의 진정한 통인지 함 가려보자."

"그냥 니가 통해라. 내가 양보할게."

"뭐라꼬? 지금 니 나 놀리는 기가? 잔말 말고 따라온나. 안그라믄 니 부모도 니 얼굴 못 알아보게 곤죽을 만들어버릴테니까."


한태석은 늘 입버릇처럼 다른 아이들을 갈굴 때 쓰던 말이었으나, 이날은 재호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는 말이었다. 하필 재호의 생일날에 재호가 얼굴도 본적이 없는 부모를 들먹였으니 평소에 장난끼 많고 유머러스한 재호도 그냥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격동되었다.


그렇게 옥상에 올라가자 마자 한태석이 화려한 태권도의 발차기로 재호를 공격했으나 한대도 못 맞추고 재호의 오른손 스트레이트 한방에 그냥 전원 스위치가 꺼진 것처럼 말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재호는 평소와 달리 기절한 한태석에게 분노가 쉬이 가시지 않는지 그대로 파운딩을 내리 꽂았고, 초등학교부터 재호를 따르던 이들이 재호를 간신히 뜯어말리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한태석은 자신이 재호의 스트레이트 한방에 기절한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지 그 다음날 또다시 재호를 도발했다.


"어이! 재호! 옥상으로 온나. 어제는 어쩌다가 럭키 펀치가 터진 모양인데, 오늘은 다를 끼다."

"어제는 내가 흥분했다. 고만해라. 니가 그냥 통 하라니까."

"내가 걸뱅이가? 니가 먹다 남은 거나 주서 먹게? 잔말 말고 퍼뜩 올라 온나."

"그렇게 나랑 싸우고 싶나? 그럼 한 가지만 약속해라. 이번에도 지면 다시는 나한테 시비 걸지 않는다고."

"마 아라따. 니가 이기모 내 다시는 니한테 덤비지 않을게."

"좋다. 가자!"

옥상으로 올라간 한태석은 어제와 달리 제법 신중하게 복싱 스텝을 밟으며 재호에게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리기 시작했다. 재호는 그 모든 걸 슬립과 위빙. 더킹으로 다 피해내고 태석의 오른손 왼손 훅도 숄더롤로 남들이 보기에는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것처럼 보이지만, 정교하게 그다음 공격을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피해 가며 오른손 어퍼컷 한 방으로 이번에도 한태석을 넉아웃 시켜버렸다."


한태석은 공중에서 붕 날아가서 바닥에 쓰러졌으나 이번에는 의식은 잃지 않았다. 재호는 후속타를 날릴 수 있었으나 태석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워주며 물었다.


"이제 고마 인정할끼가?"

"아이다. 아직 멀었다."

"그래? 그럼 오늘은 내가 좀 더 때려도 원망하지 마라."


풋워크와 스텝으로 재호의 스피드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거라 판단한 한태석은 갑자기 재호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척 싱글렉을 잡아서 재호를 넘어뜨린 다음 파운딩을 날리려고 했으나, 재호은 한태석의 머리를 눌러서 빠져나온 다음에. 오히려 더블렉 테이크다운으로 태석이를 넘어뜨린 다음 전광석화의 속도로 태석의 사이드로 이동해 그의 왼팔에 암바를 걸었다. 끝까지 버티다 도저히 참다못해 태석이 재호에게 탭을 미친 듯이 쳤다.


"이제. 인정하나?"

"그래. 내가 졌다. 니가 마창진 통이다."

"아니. 난 그런 거에 관심없다. 그건 니가 계속해라. 단, 뭘 해도 내가 있는 동안에는 시끄럽지 않게 해라. 알았나?"

"알았다."


그렇게 서열이 정리된 이후에 한태석은 재호의 오른팔을 자처하며 수업이 끝나면 재호가 싫다고 하는데도, 재호의 가방을 자신이 짊어지며 끈질기게 재호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어디든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재호야! 진해중학교 근처에 좋은 권투도장이 하나 있는데, 우리 거기 같이 다니지 않을래?"

"뭐 한다꼬? 난 이미 잘한다 아이가."

"그래도 체계적으로 배우면 더 좋잖아?"

"나 돈 없다."

"그건 걱정 마라. 난 가진 게 이 얼굴에 난 칼자국과 돈밖에 없다 아이가."

"싫다. 애들한테 삥 뜯은 돈으로 그러고 싶지 않다."

"삥 뜯은 돈 아이다. 이래 뵈도 내 아부지가 마창진의 건설공사와 개발을 꽉 잡고 있어서 집에 돈이 넘친다 아이가."

"그라모 나한테 좋은 게 뭔데?"

"권투도 배우고, 또 내가 니 묵고 싶은 것도 뭐든지 다 사줄게."

"그라나? 뭐 생각해볼게."

"생각하고 말게 어딨노? 걍 함 가보자. 어!"

태석이 재호의 팔을 잡고 새로 생긴 짱구 복싱 체육관으로 강제로 끌고 가다시피 해서 둘은 체육관 안으로 들어섰다. 문에 풍경을 달아놨는지, 땡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안에서 관장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다 말고 둘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왔노?"

"저기 권투 좀 배워볼라꼬예. 저도 좀 치는데, 이 친구는 진짜 잘친다 아입니꺼."

"그래? 진짜 잘친다 이말이제?"

"예. 억수로 잘칩니다."

"아라따. 이리 와봐라."

권정구 관장은 재호에게 손수 붕대를 감아주고 그의 손에 맞는 글러브를 끼워주었다.

"준섭이 니 링 위로 올라와서 이 친구랑 스파링 함 해봐라."

"아이고! 관장님요! 이래 뵈도 제가 권투 배운지 10년이 넘는데 이제 막 글러브 낀 전마랑 스파링하라고 합니꺼?"

"니 맞고 할래? 그냥 할래?"

"알겠심니더. 바로 올라갈게예. 대신 어떻게 되도 책임 못짐니더."

"그놈 참 말 많네. 니 주둥이로 권투할 끼가?"

준섭이 링 위로 올라오자, 관장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준 후 둘이 스파링을 하도록 시켰다. 파이트! 소리와 함께 준섭이 빠르게 달려들며 재호에게 잽과 스트레이트, 훅을 마구 난사했으나, 재호는 그 모든 공격을 위빙과 더킹 그리고 숄더롤과 스웨이로 다 피해내며 준섭에게 좌우 바디샷 두 대와 명치에 한방 강하게 꽂아 넣자 말 그대로 준섭은 앞으로 고꾸라지듯 주저앉아서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다. 도장 안에는 깊은 정적이 흘렀고, 정관장도 전혀 예상치 못한 그림이라서 일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는 재호를 붙잡고 관장실로 데리고 가더니 매달리다시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니 돈 안 받을 테니까 내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말고 여기 온나. 알았제?"

"그건 제 마음대로 못하고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누구 허락? 부모님이라면 걱정하지 마라."

"아이라예. 희망원 원장님 허락받아야 합니더."

"어 그라나?"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듯이 관장이 재호에게 확신에 차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원장님 허락받아 줄게. 그러니까 매일 나와서 운동해라. 알았제? 니는 마 세계 챔피언감이다 이말이다."

"관장님요. 그럼 저도 공짜입니꺼?"

"오데. 니는 돈 내고 다녀야지. 이 친구 키울려면 돈 많이 든다 아이가."

"좋심니더. 제 친구 키우는데 드는 돈이라 카면 지도 좋심니더. 마 그라이소."

권정구 관장은 희망원을 찾아가서 재호의 뛰어난 운동능력과 셰계챔피언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서 열변을 토해가며 이연옥 원장님에게 설명해서 재호를 밤 10시까지는 귀가시켜줄 것을 조건으로 결국 그녀의 허락을 얻어냈다. 그렇게 재호에게 새로운 인생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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